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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n 28. 2022

내향형인 당신에게  

 혼자 있기를 택하는 날 데리고 사는 방법

외골수

    

어린 시절 나는 외골수 기질이 다분한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워낙 바빠 홀로 있는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타고난 성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노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도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대다수였다. 하나뿐인 언니는 나와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었다. 동네 아이들의 중심에 서서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는 했다.


엄마는 이따금 염려의 눈빛을 담아 나를 바라봤다. 괜한 걱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래에게 말을 먼저 걸만큼 대담성을 지닌 스타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이 함께 놀자고 말을 건넬 만큼 매력적인 아이도 아니었으니. 내향적인데다 나만의 세계에 몰두하곤 했던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시간만큼 책의 세계로 숨어드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기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집으로 직행하던 나였다. 집에 달려가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대다수였다. 특히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 때마다 혼자 있는 날보고 엄마가 가끔 “어째서 친구들한테 연락을 해보지 않냐”고 조용히 물었다. 내놓을 만한 답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어린 나도 내심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이 다른 친구들의 세계와 반 뼘쯤 떨어져 있다는 걸. 친구들이 관심사로 내어놓는 이야기에 나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내 관심사가 친구들의 대화거리와 융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래 무리 한가운데에서 대화를 나누는 아이보다는 변두리 어디쯤을 맴도는 아이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학급의 중심 무리에 섞여 환하게 웃거나, 방과 후 매일같이 모여 노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다행히 중학교 시절부터는 만화책을 벗 삼으면서 친구들과 대화할 거리도 많아졌고, 성인이 된 이후 결이 맞는 이들을 다수 만나기도 했다. 외골수 기질을 잘 숨기기도 해서 그럭저럭 무리에 섞여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없으면 반쯤 미쳐버리는 성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정한 주기로 혼자 외출해 밥을 먹거나 영화관이나 미술관을 가지 않으면 일상 자체를 견디지 못했다. 그날 홀로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예기치 못한 약속이나 원하지 않는 모임이 잡히면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이런 내 기질이 어떤 이들에게는 ‘벽을 세우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들과 멀어지고, 나 스스로를 외로움으로 밀어 넣는 순간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이런 내 성향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왜 늘 외로움을 자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까? 다음에 그러지 말자 결심해도 결정적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나 홀로’를 택하고는 했다.


 5년간 해외에 머물다 한국에 돌아온 작년에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라 이런 내 성향을 완전히 버리고 싶었다. 귀국하면 외롭지 않게 지낼 거라 다짐했었다. 소중한 이들을 자주 만나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열심히 나눌 거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에 돌아와서도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코로나 사태가 만드는 불가피한 상황은 둘째 치고, 가끔은 내 행동이나 선택의 패턴이 혼자인 상황을 자꾸 만들었다. 브런치 글이나 정해진 원고 하나를 끝내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수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동네 커피숖에 앉아 3~4시간 이상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약속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결국에는 홀로 있는 시간을 우선순위로 택하곤 했다.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맘먹으면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조금씩 가질 수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를 택하는 이 본능은 뭘까 싶었다. 아이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엄마가 약속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도 부족한 게 초등 1학년 학부모 시기라는데(심지어 아이도 어릴 때의 날 닮아 외골수 기질을 조금 갖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혼자 또다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가끔은 외로움과 불안함이 뒤섞인 감정이 맴돌았다.

     


뒷모습에 드러난 고독의 민낯,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세계      


덴마크의 상징주의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는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해, 열다섯 살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졸업 후 덴마크의 자연주의 화가인 크로외어의 아틀리에에서 공부했던 시절도 있었다.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자화상(1895)

 

1885년 여동생 안나를 그린 <어린 소녀의 초상>을 그리며 공식 활동을 했다.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이었던 그는 대체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좁은 범위의 사람과 교류하며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걸 좋아하던 화가였다.


 함메르쇼이는 1891년 동료 화가 피터 일스테드의 동생 이다 일스테드라는 여성과 결혼했고, 1898년부터 코펜하겐의 Strandgade 30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한다. 이곳에서 실내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데 주력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불과한 아파트라는 공간이 그에게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Interior with a mirror((Vilhelm Hammershøi, 1907)


Interior with young man reading((Vilhelm Hammershøi, 1989)


인상주의풍의 야외 풍경화가 유럽의 주요 흐름이던 시기였기에, 함메르쇼이의 이러한 선택은 다소 낯선 것이었다. 물론 환경적 요인도 숨어 있었다. 해가 짧은 북유럽에서는 햇살이 비추는 야외 풍경보다 고요한 실내 장면을 묘사하는 장르가 더 적절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 아래 섬세하게 펼쳐지는 실내 풍경이 이 덴마크 출신 화가가 그려낸 세계의 특징이었다. 다소 차갑고 가라앉은 듯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품은 평화로움과 신비함을 담고 있다. 고요한 정적의 순간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흡족한 눈으로 바라볼 만한 작품들이다.


 그는 단순히 실내 장식을 그린 것 뿐 아니라 아내 이다의 뒷모습을 캔버스에 함께 담아냈다. 간결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실내에 단정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차분히 자리한 모습. 여성은 무언가를 읽고 있거나, 글을 쓰거나, 사색에 잠겨 있는 걸로 보인다. 화가의 작품 세계에서는 비슷한 분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창밖의 소란한 풍경이나 작은 물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고요함. 경건하고 신비로울 정도의 고요한 분위기를 보다 보면,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작품 세계가 떠오르기도 한다.


함메르쇼이의 Ida reading a letter(좌)와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우)



감상자가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여성의 뒷모습뿐이다. 왜 하필 뒷모습일까.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는  <뒷모습(VUES DE DOS)>이라는 산문집에서 “뒷모습이 진실"이라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현대문학)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Interior from Strandgade with sunlight on the floor((Vilhelm Hammershøi, 1901)



Interior with young woman from behind ((Vilhelm Hammershøi, 1904)

 

 투르니에의 이야기를 밑바탕 삼으면, 함메르쇼이의 그림 속 뒷모습도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누구나 혼자 있을 때에만 드러내는 민낯이 있다.  홀로 사색에 빠지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에만 다가오는 나의 진실. 소란한 풍경에서 잠시 옆으로 비켜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야 깨달을 수 있는 내 모습이 있다.


The rest ((Vilhelm Hammershøi, 1905)


  그리고 그 시간이 일정량 이상 필요한 이들이 있다. 어쩌면 함메르쇼이 역시 그 정적의 시간이, 뒷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 남들보다 더 많이 필요한 이였던 것 아닐까. 실제 화가가 극도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아주 틀린 상상은 아닐 것 같다.  



내향형인 사람들의 세계


         

함메르쇼이의 그림은 고독과 민낯의 시간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고독의 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그림은 작고 고요한 위안을 안겨준다. 함메르쇼이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 깨달았다. 내 뒷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이 남보다 더 많이 필요한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걸.  


며칠 전까지 나는 ‘내 외골수 성향은 어째서 도통 바꿀 수 없는 걸까?’ ‘내향형인 나 때문에 아이까지 외롭게 지내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홀로 걸어 다니고, 홀로 영화를 보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는, 그 시간 없이는 견디질 못하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종내는 아웃사이더가 되거나 변두리에 앉게 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따금 아이에게 그 모습이 투영되어 불안해지는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홀로 앉아 생각하고 책을 읽고, 글 쓰는 시간을 가지지 않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만 자리한 나를 상상해보니, 그건 애초에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가서 몇 시간씩 누군가와 함께 떠들어도, 나는 금세 지쳐서 회의감에 휩싸일 것이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한평생 데리고 살려면 일정량의 외로움은 감수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우쭐할 필요도, 부끄러울 필요도 없이 '원래 그런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성을 품고 태어난다. 누군가와 만남을 가진다고 해서 그 고유성이 반드시 훼손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융화하려 노력하거나, 멀어지지 않으려 애를 쓸수록 (특히 우리나라 같이 획일성을 강요하는 문화에서는) 그 고유성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혼자 있게 된 이들은 내 고유한 모습을 마주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핸드폰을 움직이며 분주한 척하거나 내향형인 자신을 바꾸려 애쓰는 대신, 나에게 질문을 던져도 좋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보고, 싫어하는 걸 구분하고, 고유한 나를 찾아보는 과정을 거칠 때, 그 순간마다 커나가는 면의 힘이 존재하니까.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사교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성향을 지닌 이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펼치는 건 아니다. 모든 기질은 장단점을 품고 있으니까. 다만 내향적인 성향에도, 외골수인 성격에도 장점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혼자 있는 시간만큼, 그 시간을 보내는 만큼 타인이라는 거울 없이 내 민낯을 바라볼 수 있다. 주변의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 어딘가에 묻지 않아도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내향형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장점 아닐까.


무리 한 가운데에서 활짝 웃는 누군가가 부럽거나, 홀로 있는 내가 잠시 처량해 보이는 순간이 온다면, 잊지 말자. 당신은 남들과 조금 다른 종류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걸.  



다음 글은 7월 12일(화)에 발행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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