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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y 02. 2023

작심삼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인생의 넛지 효과


게으른 인간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이따금 생각해 본다. 게으름은 내 평생을 따라다닐 고질병과 같아서,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경우엔 주로 ‘정각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이 게으름의 기점이 된다.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거나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새로운 임무가 떠오를 때마다 나는 시계를 쳐다본다. 가령 시계가 1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다면? 아무래도 지금은 애매한 시간이니, 1시에 시작해야겠어. 게으름을 불러오는 사고의 흐름 첫 단계다. 정작 1시가 되면 시계를 외면하거나 아직 1시니까 5분 정도의 여유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딴짓을 한다. 연예인 기사를 구글링 하거나 유튜브 쇼츠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뭉개다 보면 어느새 1시 8 분 내지 9분쯤이 된다.


 안 되겠어, 시간이 애매해. 차라리 정확하게 1시 30분쯤 시작해야겠다. 또다시 시간을 미루지만 22분 후의 내가 1시 8분 경의 나보다 획기적으로 부지런해졌을 리 없다. 그런 식으로 정각과 30분에 하자는 식으로 마음을 먹다가, 어느덧 시간은 2시가 되고, 3시, 4시가 된다. 하루가 지나가는 건 순식간이다.

  

 시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년, 매달 초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매년 연말이 되면 다짐한다. 1월 1일부터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보자고.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 꾸준히 다이어트를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하거나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규칙적인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실상 따져보면 12월 31일의 나와 1월 1일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작심삼일의 순간은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역시 나는 변하지 않는 인간라는, 실망과 좌절감이 따라오는 건 물론이고.  



거창한 시작보다 틈새 노리기  


 우리는 거대한 계기나 사건, 구획된 시간을 기점으로 스스로가 180도 바뀌고 인생도 대약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사실상 12월 31일과 1월 1일의 경계 같은 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금 같은 거 아닌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있어 명확한 경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경계선 없음'의 틈을 노려보는 건 어떨까. 엄청난 변화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시작 말고 슬쩍 찔러보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경제학에는 넛지(Nudge) 효과라는 게 있다. 넛지란 ‘팔꿈치로 슬쩍 지르다’내지는 ‘환기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강제로 명령하거나 억지로 주입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바꾸고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뜻한다.  


 스톡홀름의 한 지하철역에 설치된 계단이 넛지 효과의 한 예다. 유명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자신들의 친환경 차를 홍보하고 옆에 위치한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계단의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피아노 건반처럼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건강과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 사소한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장치다. 작은 아이디어 덕분에 이곳의 계단의 이용 비율은 66%나 증가했다.  


스톡홀름의 지하철역에 위치한 피아노 계단. 우리나라의 지하철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KJ Voglius_flicker



브라질 상파울루에 설치된 쓰레기통도 비슷한 효과를 불러왔다. 이 쓰레기통은 여느 쓰레기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단에 농구 골대처럼 백보드를 붙여 ‘던지기 명중’을 노렸을 뿐이다. 덕분에 쓰레기 무단 투기가 70%나 줄었다.



백보드가 설치된 쓰레기통. 청소년들에게 나이키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넛지효과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인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가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라는 저서를 통해 언급한 개념이다. 이 효과는 행동 경제학의 전제에 기반을 둔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의 관점을 경제학에 접목해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분야로, 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는 명제에 반기를 들며 시작한다.


오랜 시간 동안 경제학에서는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여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을 기반으로 이론을 풀어 왔다. 합리적인 존재라는 명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바람직한 행동을 늘리는 방법도 간단명료해진다. 긍정적인 행동을 많이 하면 경제적 이익을 주고, 부정적인 행동을 하면 경제적 손해를 입히는 식의 경제적 유인(incentive)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사람은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알고리즘을 통해 뜬 유튜브 동영상 하나에도 인터넷 파도타기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프링글스 통의 뚜껑을 일단 뜯으면  523킬로 칼로리 이상인 감자칩 한 통을 다 먹어치울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합리적인 행동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비합리적인 행동이 우리를 늘 따라다닌다.


 이런 면에서 행동경제학과 넛지효과는 인간의 합리성에 제한을 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나 어느 정도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있고 주장한다. 우리 내면에 비합리적인 똥멍청이가 한두 명쯤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넛지 효과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내 안의 비합리성 인정하기 


 스스로에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거나 명령을 내려도 도무지 실행력이 높아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나를 억지로 통제하고 다스리려 무리한 시도를 하기보다  부드러운 개입, 작은 장치를 심어놓는 것. 어쩌면 그런 것이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치트키일 수도 있다.


넛지효과까진 아니더라도, 나 역시 슬쩍 시작하는 방법으로 효과를 본 적이 있다. 대학 4학년을 앞둔 겨울 방학 때였다. 당시 시점에서 1년 후 정도면 임용시험을 봐야 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신입생이 학교 도서관 근처에만 가도, 4학년 선배들이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며 놀러 가라고 말하는 시기였다. “신입생 때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 도서관 오지 말고 대학의 낭만(?)을 즐겨도 괜찮다"는 게 주요한 논리였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옛날 분위기다- 일단 그런 분위기 속에서 3년 간 공부를 가열차게 한 적 없는 상태였다. 본격적인 임용 공부를 앞두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머릿속이 아득했다.  


 이때 나보다 대 여섯 살 많던 대학원생 선배가 조언을 건넸다. 겨울 방학 동안에는 책상에 무조건 앉아 있으라는 간단한 조언이었다.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라면을 먹든 만화책을 보든 부담 없이 그냥 앉아 있는 연습을 하라는 거였다. 반신반의하며 그 조언을 따랐다. 그해 겨울방학 내내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앉아서 도서관 책도 빌려 읽고 만화책도 주야장천 읽고 그림도 그렸다. 열렬한 공부쟁이나 임용고시생으로 변신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교육학 책을 읽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부담 없이 앉아 있던 시간은 확실한 효과를 가져왔다. 겨우내 쌓은 경험 덕에 앉아 있는 일에 익숙해졌고, 그 힘으로 임용고시 준비 기간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시작 지점부터 강박적으로 굴며 공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윽박질렀다면, 그 한 해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Esbjorn Doing His Homework(Carl Larsson) @wikiart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변화는 '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점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거대한 의지보다 작은 환경이나 장치에 미세하게 바뀌는 게 우리의 행동임을 기억해 두면 좋다. 핸드폰을 그만 만지작거리고 내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스마트폰 그만 들여다보자, 이 게으름뱅이야!”라고 자학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그마한 금고를 하나 사서 그 안에 스마트폰을 감금해 놓는 게 도움이 된다.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면, 슬쩍 찔러보듯 가장 가까운 거리의 공터에서 간단한 맨손 체조라도 시작하는 게 낫다. 목표는 점차 높여가면 되니까.


 작심삼일은 작심(作心)을 하며 마음을 믿는 순간부터 유리처럼 깨질 가능성을 품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노력을 통해 스스로가 합리적인 존재, 완벽한 존재로 변신할 거라 착각하지 말자. 인간은 그렇게 훌륭한 변신의 귀재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의 내면 안에는 대개 게으름뱅이와 겁쟁이, 관성이나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바보가 사이좋게 들어앉아 있다. 어쩌면 그걸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삶이 조금씩 변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시간이 부족해서 오랜만에 <아무거나 3분 교양> 매거진에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오후에 해결할 일이 있어서 글도 아침에 발행해요. 이웃분들 글에도 천천히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5월 1일 자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역시나 시작하지 못했네요. ㅎㅎ;; 어차피 5월 1일이라는 숫자 자체에 큰 의미는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조금씩 시작하고, 시도를 거듭해 보면 되니까요.


다음 글은 5월 16일(화) 저녁에 발행하겠습니다. 어쩌면 그때 글쓰기에 대한 글을 발행할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시간 부족으로...)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편안하고 즐겁게 한 달 시작하시길 빌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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