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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Nov 15. 2023

책 쓰기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책 쓰는 마음> 프롤로그




아홉 살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햄버거 가게’ 딸이었다. 부모님은 서울 변두리 동네의 마을 버스정류장 근처, 열다섯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운영 중이었다. ‘딕시랜드’라는, 지금은 사라진 프랜차이즈의 햄버거 집이었다.     


대략 이런 로고를 쓰는 이런 분위기의 가게였음. 오른쪽 사진은 현재 남아 있는 달라스 매장이라 한다 (@오마이뉴스 박장식 님의 사진)


우리 가족을 위한 주택은 따로 없었다.  가게 뒷방에 세간살이를 두고 네 식구가 살았다. 어른들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 주거 형태가 합법이었던 것 같진 않다.  


 하루는 엄마가 우리 자매에게 꽤나 심각한 소식을 전했다. 공공기관에서 조사관들이 나올 거라 했다. 불법 주거가 있는지 살펴본다는 것 같았다. 조사할 사람들이 올 시간에 눈치껏 조용히 있으란 당부도 전했다. 당시의 나는 불법 주거란 단어를 명확히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가게 뒷방에 산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것쯤은, 어렴풋이 이해할 만한 때였다.   


 엄마 말대로 어느 날 조사관들이 가게로 왔다. 방 안에 숨죽이고 앉아 있는 게 지루했다. 곁에 있던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몬테크리스토 백작』 , 소년소녀 문고판 뭐 그런 류의 책이었다.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주변인들의 악의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탈출하고 복수에 성공하는 줄거리. 이미 서른 번쯤 읽어본 책이었다. (원래 같은 책을 수십 차례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죽인 채 활자를 훑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책의 초중반, 주인공 에드몽이 감옥 안에서 스승이자 구원자 파리아 신부와 대화 나누는 부분이었다.


 바깥에서는 어른들의 나지막한 대화가 들렸다. 조사관의 몇 가지 질문에 엄마가 “가게 뒤편엔 누구도 살지 않는다”라고 답하는 듯싶었다. 분위기가 시끄럽진 않아,  책 속 세계로 다시 진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간은 감방에서 숨죽인 채 복수를 다짐하는 에드몽 당테스가 되었고, 다음 얼마 간은 관찰자가 되어 감옥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쫓아다녔다.


 흥미진진한 책 속 세계와 달리 바깥의 시간은 지루하게 굴러가는 듯했다. 조사원들은 비교적 평이한 문답을 거듭하다 별일 없이 돌아갔다. '이제 방에서 나와도 된다'며 엄마가 말을 건넸으나, 나는 여전히 에드몽 당테스의 세계 안에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은 '불법 주거'나 '가난' 같은 단어를 마음에 아로새긴 시간은 아니었다. 책 속 세계 어디쯤을 흘러다닌 날이었다. 활자와 나만이 오롯이 존재한 순간.


 


 돌아보면 삶의 구간과 마디마다 책이 있었다.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든 창작의 산물이든 상관없었다. 가장 비참했던 시기에도, 마음이 얄팍해지거나 가라앉은 순간에도 책을 펼쳐 들곤 했다. 책 속 단어와 문장, 서사를 머릿속으로 만지작거리면 다시 두터워진 마음 만났다.


 미처 활자를 훑을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동네 도서관에라도 달려갔다. 고3 말 입시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임용시험을 망치고 1차 발표를 기다리던 날에도, 외롭다 못해 마음이 서늘해진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래 묵힌 종이 냄새를 맡으며 서가를 거닐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될 수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의 내가 책 속 활자를 훑고 종이 냄새를 맡으며 내가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활자를 엮어 책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제 4년 정도 된 일이다.    


 혼자서 투고하고 첫 책을 내고 원고 집필을 시작한 뒤 그간 총 열두 권의 책을 냈다. -지난달에 집필한 청소년 책이 두 권 더 나와서 이 숫자가 되었다- 어림잡아 일고여덟 군데의 출판사, 열 명 남짓의 편집자와 손발을 맞춰봤다. 앞으로도 두세 군데 더 손발을 맞춰야 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주어진 대로, 닥치는 대로 다 써보자'는 게 내 글쓰기 원칙이었다.

 

이 정도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쓰는 일, 이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을 좋아한다고. 거창한 이야기든 소박한 이야기든 이야기를 원고에 담아 책으로 펼쳐내는 과정을 좋아한다. 이야기의 부스러기를 엮어 자음과 모음을 이어 활자를 펼치고, 그 결과물을 조심스레 다듬고 자르고 붙여 넣는, 그리고 그것이 물성을 가진 책이 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처음 겪는 이들이(예비 저자나 초보 저자들이) 책 쓰기의 모든 순간을 좋아하긴 어렵다.  첫 원고 투고나 집필, 출간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에서 지루함이나 의문, 때로는 당혹스러움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고상해 보이는 이 일이 우아하지만은 않음을 느끼게도 된다. 가끔은 진행되던 일이 엎어지거나 출판사와 이견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쓰는 이 원고가 정말 책이 되어 나올 수 있을까 의심이 솟기도 한다. 마음이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가 금세 가라앉는 일도 벌어진다. 첫 번째 책까지는 ‘내가 책을 쓰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집필이 가능하나, 출판의 현실(!)을 알게 된 두 번째 원고부터는 자부심만으로 일을 진행하는 게 어려워지기도 하고.


  나 역시 그랬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고 혼자서 쓴 책이 나온 몇 년 간은 지속적으로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출판사나 독자의 평가에 따라, 판매부수에 휘둘리는 일이 잦았다. 일희일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백건대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비관주의자인 나는 괴상한 상상에도 자주 빠졌다. 투고 전에는 내 원고의 쓸모를 알아봐 주는 출판사가 있을까 고민했다. 계약이 된 후에도 불안에 가득 찬 질문을 거듭 던졌다. 출판사가 원고 계약을 파기하지는 않을까? 편집자한테 메일을 시도 때도 없이 보내면 안 되나? 

 

 지나치게 초보 수준의 의문이라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하는 의문이 쌓여 혼자 끙끙댈 때도 있었다.  출판사는 왜 계약서에 간인을 찍지 않는 거지? 책 쓰기 블로그에서는 출간 계약서에 간인을 찍는다던데. 혹시 가짜 계약서 아니야? (이 질문은 결국 ‘출판사가 내 원고를 잊어버리고 책으로 안 내주면 어떻게 하지?’라는 의문으로 이어지곤 했다.) 


 초고를 넘겨 교정 과정으로 넘어 가도, 출간 이후에도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편집자가 내 교정본은 대체 언제 보내주는 거지? 출간이 되긴 했는데 편집자나 출판사 마케팅 팀이 내 책 나온 걸 잊어버린 게 아닐까? 의문이 꼬리를 틀고 이어졌다. 해외에 있어 주변에 책 낸 사람의 조언을 듣기 어려운 상황에서, 답 나오지 않는 의문을 붙잡은 채 홀로 고민한 시간이 대다수였다. (질문 던지는 걸 지독하게 못하는 스타일이라 고민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측면이 크긴 하다)



 그러나 시간의 힘은 놀라운 면이 있다. 소소한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의문이 많이 해소되었고, 끙끙대는 시간도 제법 줄었다. 집필 기간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책을 쓸 때에는 6~7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열두 권의 책을 낸 현재의 나는 이야기를 엮어 초고를 집필하는 데 3개월가량의 시간을 소요한다. 초고를 쓰고 2번 정도 더 고친 뒤 편집자에게 보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책을 쓰며 답 나오지 않던 사소한 의문에도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쓰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노하우도 쌓였고. 덕분에 이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4년 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써왔으니, 꾸준히 글 쓰는 그 마음가짐과 요령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듯싶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책을 쓰는 일로 구원받을 수 있을까. '책 쓰기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는 광고가 난무한 시대에, 나도 yes라 답할 수 있을까. 


 고백건대 그렇진 않다. 한두 가지 사물이나 행위로 삶의 구원이 온다고 섣불리 답하기엔, 인생이 만만하고 단순한 게 아님을 아는 나이가 되어 버렸으니까.  집필을 끝내고 출간과 영광의 결과를 누리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대부분 흘러가고 흩어진다. 설렘과 실망, 희망과 좌절의 시기를 보낸 뒤에도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붙잡고 쓸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쓰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책을 통해 구원받는다' 정도의 답은 건네고 싶다. 노트북 속 흰 여백을 채워 넣는 순간을 좋아한다면, 활자와 나만 오롯이 존재하는 순간을 즐긴다면, 그 순간만큼은 구원받을 수 있다. 아홉 살 무렵의 내가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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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 유랑선생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복직을 해서 직장 생활에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지난달에 집필한 청소년 책도 두 권 더 출간되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원고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어서, 별 수 없이 매일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어요. 반강제로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셈인데, 덕분에 출퇴근 버스 안 차창에 기대서 매일같이 졸고 있습니다.


아무튼 말씀드렸던 대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고 해요. 이번 주는 사정이 있어 수요일에 글을 올리지만 다음 주부터는 목요일에 글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책 쓰는 일’의 소소한 요령과 노하우,  ‘책 짓는 마음’에 대해서 써보려고 해요.


책을 내기 위해 처음 원고 투고를 하거나 집필을 하게 되면, 예비저자나 초보저자는 아주 작은 것에도 궁금증이 생길 수 있어요. 이런 분들께 도움이 되어 드릴 만한 내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책 쓰기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거나 인생이 확 바뀌었다'는 얘기를 쓰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고 '책 쓰기든 글쓰기든 죄다 부질없다'는 허무한 얘기도 쓰고 싶지 않고요. 그냥 책 쓰기나 글 쓰기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이나 노하우를 드리고 싶어요.  


 그렇지만 글 이야기나 책 이야기만 떠들고 싶지는 않아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처럼 삶에 대한 이야기, 위로될 만한 이야기도 조금 버무려 넣는 에세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글은 꽤 진지하지만 앞으로 연재할 글은 좀 가벼운 톤으로도 써보고도 싶습니다. 목차는 짜놓았지만,  제목이나 주제는 그 주의 사정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도 있습니다.     


 고백을 드리자면,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쓸 때에는 휴직 중이라 글 쓰고 발행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복직한 뒤라 규칙적으로 글 쓰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제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발행하는 데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꽤 많이 품고 있기도 해서, 걱정이 더욱 크고요.(이 공간에는 정갈한 글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정말 커요. 퇴고를 정말 많이 하고 올리기도 하고요).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예전처럼 규칙적으로 연재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솟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재는 부담을 많이 벗고 일단 글을 올리는 데 의의를 두려 합니다.     


다음 주 글은 11월 23일(목)에 발행하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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