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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Dec 07. 2023

얼마나 대단한 글쓰기를 한다고

'글 쓸 자격'에 대한 의구심이 찾아올 때    

첫 원고투고를 하기 전, 최측근에게 내 이름이 박힌 책을 갖고 싶단 얘길 조심스레 꺼냈다. (원고 투고 전, 내 책을 내고 싶단 소망을 털어놓은 건 단 한 명뿐이었다)


가벼운 핀잔이 돌아왔다. 영어도 잘 못하면서... 해외 사는 데 외국어 공부나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이치에 어긋난 조언은 아니었다. 5년 전 그때, 해외에서 아이를 기르며 주부로서 생활하던 중이었으니, 일상을 누리고 아이를 교육기관에 맡기려면 간단한 영어라도 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난 외국어 구사에 서툴렀다. 그의 말대로 하루 종일 ‘필수 회화 영어 문장 500’을 외우거나  영화 노팅힐이나 미드 '프렌즈' 대사를 달달 외우며 영어 쉐도잉을 하루 종일 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좋아하던 영화 노팅힐도 영어 공부의 도구로 쓰자니 지루했다. 영어회화 공부도 시작하고 때려치우기를 백 번 정도 반복했고) 틀린  없는 조언이었다.


 그럼에도 억울한 마음이 솟았다. 일단 ‘책을 내겠다’ 거나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세상 쓸모없는 일, 허황된 일로 여겨지기 쉽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 가치나 대가가 따라붙지 않은 행위는 대다수 ‘쓸모없는 일’ 취급을 받기 쉬우니까. 특히  글쓰기의 경우, ‘고상해 보이지만 효용성 떨어지는 일’, ‘시간 많고 인생 여유로운 사람이 하는 일’로 규정되는 일이 잦다.  



그리고 그 ‘쓸모없는 일’로 규정된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선 주변의 섣부른 딴지나 조언, 잔소리를 끊임없이 듣게 된다. 내가 유경험자라 잘 안다. 글 쓰고 책 쓰는 일 시작하면서 주변인들에게 들은 글쓰기 조언만 해도 대략 157개 정도 된다.(구체적으로 세어본 건 아님) 출판업계와 전혀 관련 없거나 글쓰기나 독서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의 조언도 이어졌다. 돈 안 되는 걸 왜 하냐 정도의 질문이야 많이 들어 익숙하다.. ‘웹소설을 써봐라, 돈이 된다더라’. ‘야한 소설을 써서 팔아 봐라(응?)’. ‘영어로 된 청소년 책을 번역해서 한국에서 출간해라(난 번역가가 아니고 외국어도 잘 못하는데?)’ ‘다른 종류의 책을 쓰는 게 더 돈이 될 텐데!’ 등등 조언의 종류는 다양했다.  친절과 선의로 건넨 조언들이었지만 가끔은 선을 넘나들었다.


 가벼운 모멸감 정도는 견뎌야 하는 상황도 온다.  ‘네가 무슨 글을 쓴다고.’  메시지를 담은 말이나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시선밑바탕에는 '공식적으로 글 쓰는 일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란  생각이 깔려 다.


 무신경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대략 157개 되는 조언을, 귀로 듣긴 했으나 마음으로 쓸어 담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내 머릿속에도 의심이란 놈이 찾아왔다. 나에게 글 쓸 자격 같은 게 있는 걸까? 노트북에 이상한 걸 끼적여 출판사에 보내면, 좀 괴상한 행위로 보이려나. 무도 알아주지 않는 허황된 일을 벌이려는 건가.


마음 한편으로는 이상한 반발심과 오기도 솟았다. 순종형 인간으로 보이는 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반동분자를 하나 키우고 있다. 의심과 의문을 던지는 게 취미인. 그 반동분자가 건네는 말이 들렸다. 뭐, 남이 뭐라건 글 쓸 자격은 내가 갖추면 되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자격을 갖추려면 시간과 도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던 나는 당시 시간 빈곤자였다. 나만의 시간이 없으면 미쳐버릴 듯 포효하는 나지만, 당시엔 두 살짜리 아이를 기르는 터라 자유시간이 전무했다. 하루 종일 밥 안 먹는 아이 따라다니면서 흘린 걸 줍는 것만 해도 하루가 속절없이 가던 시기였다. 노트북을 자유롭게 펼치고 원하는 글을 쓰는 게 당시 거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잠깐의 자유라도 더 얻으려면 시간 거래(!)가 필요했다. 남편이 홀로 지인과의 모임에 나가거나 자유시간을 즐길 때마다 제안을 건넸다. 나에게도 두 세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을 달라고. 덕분에 1~2주에 두 세 시간 정도의 여유는 얻을 수 있었다. 운 좋게 자유가 주어지면 집 앞 코스타 커피로 달려가 샘플원고를 썼다 (이 지지부진한 속도와 악조건 때문에 샘플원고를 완성하고 원고투고를 하는 데 2년 정도가 걸렸다). 평소에는 노트북을 펼치긴 커녕 펜을 들고 종이에 제대로 끼적일 틈도 없어서, 출간 기획서 초안을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갈겨쓴 날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뒤, 약간의 시간 여유가 더 생겼다. 이제 나만을 위한 글쓰기 도구인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중에 가진 내 돈을 털어 노트북을 구매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지 수년 째였기에 돈은 아껴야 했다. 무겁고 성능 나빠도 저렴한 컴퓨터가 필요했다.


그 결과 2.8 kg가량의 무게에 속도는 지독하게 느리지만, 어쨌든 한글 프로그램은 돌아가는 전자기기가 내게로 왔다.  물론 이 구매행위에도 잔소리는 들어야 했다. ‘네가 지금 무슨 일을 한다고 노트북이 따로 필요하냐’는 맥락의 가벼운 핀잔이었다. 그러나 일단 내 돈으로 산 것이었고 나는 언젠가 원고 투고를 해서 내 책을 내겠다는 확고한 다짐이 있었기에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간과한 점이 있었다. 노트북 외에도 도구가 하나 더 필요했다. 책상. 당시 우리 집에는 책상이 없었다.(아이가 어릴 때라 성인 책상은 집에 불필요했다) 낮에는 거실 식탁 위에서, 또는 상을 펼쳐둔 채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밤에는 불가능했다. 아이와 남편이 거실 옆 안방에서 잘 때였다. 등을 환하게 켜 둔 채 시끄러운 타자소리를 낼 수 없으니 난감했다. 다행히 아이 장난감 방의 구석에  리빙 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노트북을 놓은 채 글을 썼다. 플라스틱  박스이긴 했지만 제법 튼튼했다.


처음에는 왼쪽에 있는 리빙 박스 위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썼지만 이사를 간 뒤에는 작은 빌트인 화장대(?)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시간과 도구를 어렵사리 구했음에도 이따금 마음속 오기는 사그라지고, 다시 의구심이 찾아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대단한 글을 쓰거나 효용성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당시 자아존중감이 한껏 쪼그라든 상태였다)  시간과 비용을 쏟는 게 말이 되나. 이 일의 쓸모와 효용에 대해 나 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의문은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그런데, 그럼에도 좋았다. 옷박스와 노트북을 앞에  둔 채 킬킬대거나 눈물지으며 한 글자를 지우고 덧댈 때마다 오는 희열이 있었다. 글을 타이핑하며 느끼는 리듬감이나 손맛(?)도 제법 괜찮았다. 순간만큼은 머릿속에 떠다니던 글 쓸 자격이나 효용 가치 따위의 단어가 사라졌다.






해외생활 후반에 사용했던 글쓰기 전용 책상. 내 줄기 찬 글쓰기 의욕에 놀란 남편이 구매해 줬다.

 

  책을 열 권  남짓 냈고 저자 강연도 가끔씩 다니는 지금, 주변인 누구도 내게 ‘글 쓸 자격’을 따져 묻진 않는다. 자본주의의 영향력 덕분인지, 내가 인세나 강연료로 일정한 수익을 얻게 된 걸 안 뒤엔 (관련업에 종사하는 이들 외엔) 섣부른 글쓰기 조언을 얹는 사람도 없고.


그러나 가끔은 다시 의구심이 찾아온다.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너 대체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쓴다고 이 난리냐. 너한테 글을 쓸 자격이 확실히 있는 거니.


 글쓰기를 이어가는 한 주기적으로 찾아 올 이 질문에, 나는 길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활자와 나만 존재하는 시간엔, 구태여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으니까.         


글쓰기의 작은 tip  

- 돈 안 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주변에 들켰다면 당신은 어디에서든 질문과 딴지,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잘 모르거나 관련업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하는 조언이라면 대략 70%는 흘려들어도 괜찮다.

 - 책을 출간하거나 글쓰기로 수익을 얻거나 뭐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나면 글쓰기에 대한  주변의 잔소리를 그나마 덜 듣는다. (안 듣는다는 건 아님) 내 생각엔 출간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다.  

- 글쓰기나 책 쓰기의 자격증은 누가 종이에 인쇄해 건네주는 게 아니다. 쓰는 일을 지속하고, 활자와 씨름하며 좋은 글을 쓸 노력을 해야 비로소 얻는 게 아닐까.


P.s.

  제가 내일까지 청소년책 원고 하나가 마감이에요. 시간 여유가 부족해 글이 거칠어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이웃분들 글 찾아가는 것도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다음엔 좀 더 책쓰기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어 드릴만한 글을 써보고 싶네요 :) 다음 글은 12월 14일(목)에 발행됩니다.


출간소식이나  명화카드, 독서 후기는 주로 이 공간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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