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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Nov 30. 2023

글쓰기 빌런 퇴치법

글쓰기를 방해하는 마음을 물리치는 방법

책 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싫어하게 된 문구가 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란 글귀다. 온라인 서점에 가면 가끔 검색창에 뜬 이 문구가 눈에 띈다.  ‘출간 즉시’와 ‘베스트셀러’라는 어구의 연결이 심히 마음에 거슬리면서, 이 의 진위여부를 의심하고 싶어 진다.  아니 어떤 저자 책이, 어느 출판사 책이 저렇게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야. 혹시 책이 열다섯 부 정도 판매됐는데, 베스트셀러라고 허위 과장, 포장 광고 하는 거 아닐까? SNS고 포털이고 과장된 입소문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대 아닌가.


 솟구친 의심을 견디지 못해 굳이 책 제목을 검색해 본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음모론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책 소개 화면에 뜬 저자의 명성이나 어마어마한 판매지수를 확인하게 된 순간, 의심의 씨앗을 거두게 된다. 바로 납득하고 검색창을 닫는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별수가 없다.   


 남의 책 검색까지 하게 만드는 이 감정의 근원은, 당연하게도 부러움과 질투, 열등감이다. 심지어 아까 본 그 책의 저자가 뛰어난 글 솜씨까지 지녔을 경우에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저렇게 활자 위에서 뛰놀면서 근사한 결과물을 만드는 글쟁이가 그득한 세상인데(심지어 인기도 많음) 나란 인간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갑작스레 붙잡고 있던 원고를  놓고 싶어진다. 내면의 글쓰기 빌런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물론 내부가 아닌 외부에도 글쓰기의 방해 요인은 많다. 초면인 독자의 혹독하고 냉정한 비평, 늘지 않는 내 책 판매지수, 한가할 땐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한날한시 약속한 듯 출판사에서 밀려오는 원고 교정지, 활자와 씨름하는 내 옆에서 신비아파트 애니메이션을 큰 소리로 시청하는 우리 애 -  귀신 나오는 만화라 비명 질러대는 효과음이 시도 때도 없이 들린다- 등등 외부의 방해자를 따지고 들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체로 귀여운 방해요소일 뿐 빌런으로 등극하지 않는다. 내 글쓰기를 멈추게 만드는 건 내면의 빌런이다. ‘범인은 바로 나’인 셈이다.


 내 경우 열등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내면의 빌런이 있는데, 게으름이다. 디지털 시대에 내 집중력은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A4 반 장을 채우는 것에도 끙끙대는 인간이 됐다.

집필할 원고를 붙잡고 있다  갑자기 세상만사가 궁금해진다. 뒤이어 애착인형처럼 스마트폰을 만지고픈 욕구가 솟는다.  딱히 트렌드세터도 아닌데  쓰다가 갑자기 올 겨울 패션 트렌드가 궁금해져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인다거나, 좋아하는 연예인 근황을 샅샅이 캐는 덕후가 되곤 한다. 뜬금없이 통장 잔고가 궁금해져 인터넷 뱅킹 접속 비밀 번호를 두드릴 때도 있다. 학창 시절 시험 앞두고 보는 TV 예능이 최고의 웃음을 선사하듯, 원고 마감 앞두고 보는 유튜브 숏츠가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두려움이 글쓰기 빌런으로 등극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 첫 책을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 출간했다. 투고 당시엔 ‘이 원고에 답해줄 출판사가 있긴 할까?’가 내 머릿속을 지배한 최고의 두려움이었다. 이 두려움 때문에 샘플 원고 A4 10장을 쓰는 데 2~3년 정도가 걸렸다. 원고 투고 준비에만 년이 걸린 셈이다. (아이가 갓 태어나 육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단 게 주요한 원인이기도 했지만)


 투고 성공 후 출간 계약을 해 출간이 될 때까지는 ‘출판사가 출간 계약을 잊지 않고 내 원고를 책으로 내주긴 할 것인가? 혹시 계약이 엎어지는 거 아닐까?’가 주요한 불안감이었고, 첫 책 출간 후 쉽지 않은 책 판매의 현실을 경험한  두 번째 책을 쓸 때부터는 ‘이 원고가 출간되면 대체 누가 구매해서 봐줄 것인가?’가 주요한 두려움으로 등극했다.      


 대체로 이런 두려움과 함께 찾아오는 건 효율성에 대한 물음이다. 200자 원고지로 700장짜리 원고를 쓰려 면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6개월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브런치에 글 한편을 쓰는 것만 해도 (내 경우) 하루 이틀은 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완벽한 자유는 반납했다고 봐도 된다. 마음 편하게 외출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떠는 것에도 먼지 같은 죄책감이 소복소복 쌓인다. 원고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 과연 이렇게 놀고먹으면서(?) 마감을 맞출 수 있을까? 찝찝한 물음이 머릿속을 떠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책이나 글을 썼음에도 성과가 미미할 가능성도 있다. 브런치 글을 썼는데 조회수가 극도로 낮거나, 끙끙 앓으며 책을 써도 중쇄를 찍지 못하면 1쇄 인세(출판사와 기획출간으로 계약을 해 책을 낼 경우, 1쇄의 인세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100만 원에서 300~400만원 대 사이에서 결정된다)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투자(시간이나 노력) 대비 얻는 효과를 따져 보면, 아무리 봐도 이건 영리한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찾아온다.


 완벽주의가 글쓰기의 방해자로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거칠게 보면 글을 쓰는 건 두 단계로 나뉜다. 머릿속으로 글을 구상하는 단계와 걸 활자로 구현하는 단계.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 글은 정교한 짜임새와 근사한 표현으로 가득 찰 줄 알았는데, 정작 활자로 이 생각을 구현하는 시점에는 상상한 만큼의 글이 나오지 않는 사태도 벌어진다.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문제다. 이 어마어마한 격차 때문에 글을 엎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찾아오는 것이다.      






 수많은 내부의 악마를 어떻게 퇴치할까. 해결의 첫걸음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빌런들을 완벽히 퇴치할 수 없고 앞으로도 시시때때로 내 마음에 찾아올 거란 사실을 인정하는 . 글쓰기의 단계마다 게으름, 두려움, 질투와 열등감이 그 모습과 형태를 바꾸어 내 안에 출몰할  받아들이면 마음 편해지는 구석이 있다. 가령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라는 문구를 보고 열등감이 폭발하는 순간마다 ‘열등감까지 많은 이 못난 인간아’라고 스스로를 타박하는 데 에너지를 쓰면, 정작 글 쓸 기력이 바닥나 집필을 멈추는 사태가 벌어진다. ‘열등감이 다시 또 찾아왔구나. 이 놈(?)이 마음속을 떠돌다가 언젠간 떠나가겠지.’ 정도의 말을 뇌까리면 좋다. 내 안의 취약한 녀석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시 활자를 붙잡고 글을 쓸 용기가 생긴다.      


 괴로움의 근원이 되었던 글쓰기가 역설적이게도 괴로움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마음속 빌런들은 제법 괜찮은 글쓰기 재료다. 두려움과 질투, 열등감, 게으름을 활자로 풀어내면 놀랍게도 그 마음 중 일부는 눈 녹듯 사라질 때도 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다) 글로 고백한 내 못난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 가닿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내면의 두려움, 게으름, 열등감 같은 자신의 취약한 구석과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구태의연한 얘기지만 완벽주의는 '완성주의'로 치환하는 게 좋다. 개똥망 같은 글이라도 일단 끝까지 써보고 고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인생이 오점 없이 가지런하고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처럼 글도 그렇다. 오탈자 하나 없이 처음부터 완벽하고 가지런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욕심은 과욕일 뿐이다. 글의 거친 조각을 깎아내고 섬세하게 가다듬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구상하던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글쓰기에 정답은 없어서 때로는 거친 조각이 근사하게 다듬어진 조각상보다 매력적일 때도 있긴 하다)      


 글쓰기 빌런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없단 사실을 인정해야 퇴치가 가능하다. 삶을 뒤흔드는 내 취약하고 못난 구석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마음이 강해지듯. 글쓰기가 불러오는 괴로움은 글쓰기로 물리치는 게 최선의 방도다.        


글쓰기에 대한 작은 TIP

1. 글쓰기의 방해 요인은 늘 찾아온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2. 번뜩이는 영감과 정갈한 마음으로 활자로 술술 쓸 수 있을 거란 환상을 버리면, 의외로 글의 완성이 수월해지기도 한다.

 3. 마음속 두려움, 열등감, 게으름이 극에 달한다면 그걸 소재로 글을 써봐도 괜찮다. 내면의 갈등이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답이 솟아나기도 하니까.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유랑선생입니다.


 어제 저에게 글쓰기 빌런들이 찾아와 밤까지 글을 못 쓰고 있었어요. 원래 다른 주제의 글을 발행하려 쓰고 있었는데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오늘 새벽 3시에 일어나 이 글을 썼는데 다행히 글이 쉽게 나와서 아침에 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에 본업도 그렇고, 11월에 해야 하는 원고 마감도 한꺼번에 밀려와 정신이 좀 없는 상태예요. (그런데 얼마 전 한 편집자분이  ‘작가님을 만난 지 몇 년 되었지만 한 번도 정신머리(?)가 있어 보인 적이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무튼 덕분에 글도 조금 늦게 발행하고, 많이 고치지 못하고 조금 거친 상태로 발행한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다음 글은 12월 7일(목요일)에 발행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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