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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Dec 14. 2023

마감 중독자의 글쓰기 요령  

끝까지 쓰기 위한 마음

 

 작년에 『그림의 말들』을 내고 한 유튜브 채널에 나가 인터뷰를 했다(신간을 내고 나면 가끔 이런 걸 하기도 한다). 그때 질문을 하나 받았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면서 어떻게 책을 여럿 출간했냐는 물음. 글쓰기와 관련해 가장 많이 만나는 질문이기도 하다. 책 쓰는 일은 쉽지 않다는 데 어떻게 가능한 것이냐, 일 년에 두 세 권씩 책을 굳이 대량 생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실제 일 년에 두세 권 정도의 책을 내고, 원고 마감도 서 너번 정도 한다. 고백하건대 내 경우 마감 ‘노동’ 정도가 아니라 ‘중독’ 상태에 가깝다. 제 때 원고 마감을 하기 위해 웬만한 일은 다 해 봤다. 올해는 미용실의 열펌 기구 아래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 원고 교정을 했다.  가족 여행 간 호텔 로비에 홀로 앉아 밤중에 글을 손 본 적도 있고. 이동 수단이 글쓰기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강연을 가는 KTX에서 원고를 쓰거나 남편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집필한  기본이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마감 중독 역시 도파민 이상 분출에서 비롯된다. 일단 원고 쓰는 일이 들어오면 온몸에 희열감이 퍼지면서 이 일이 끝내주게(?)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에 흥분 상태가 된다. 출간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까지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마감일이 가까워올수록,  몇 달 전 계약서에 도장 찍었던 나를 저주하며 뒷수습을 하는 식이다.


 타인에게 민폐 끼치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성향도 마감에는 도움이 됐다. 출판사나 편집자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서 되도록 기한을 맞추는 것이다. 가혹한 요령을 쓸 때도 있다. 마감 전날 잠을 아예 안 잔다거나 일부러 수면을 적게 취하 맨바닥에서 자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 지난주에는 출퇴근하면서 마감을 하나 맞추느라고 3시간 이상 수면을 취한 날이 없다) 출판사에 원고 보내기 직전 몇 주 간은 금욕적인 생활도 이어가는 편이다. 외출도 줄이고 친구에게 전화 통화도 삼간다. 다른 일로 힘을 빼거나 감정 소모를 하면 원고 쓰는 데 방해가 되니까.


그러나 중독은 바람직한 상태라고 볼 수 없다. 정신 건강과 몸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의 이 비합리적인 방법과 개고생을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지도 않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아니 원고 마감이 아니더라도 제시간에 글쓰기를 끝내기 위해 좀 더 합리적이고 도움 될 만한 방법을 펼쳐놓는 게 좋겠다.





       

원고를 끝까지 써내기 위한 첫 단계는 ‘쪼개기’다. 시작 전에 무조건 전체 원고를 나누고 쪼개어 수첩에 그날 분량은 써둔다.  만약 석 달에 걸쳐 48 꼭지의 원고를 써야 한다면 전체 원고를 한 주에 쓸 수 있는 양, 이를테면 1주에 4 꼭지는 쓰자고 정해놓는 식이다. 이것을 다시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으로 잘게 쪼개어 본다. 여기까지 보면 내가 상당히 체계적인 인간 같지만 나는 전형적인 P형 사람이다. 디테일한 계획은 애초에 짜지 않는다. 그냥 하루에 쓸 분량만 수첩에 적어놓는다.


 유의 사항도 있다. 하루 집필량을 정할 때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는 것. 갑자기 내가 작가 자아에 빙의해 하루에 7시간씩 원고를 붙들고 앉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생각은 접어둔다. 글 쓰다 화장실도 들락날락거리고, 뜬금없이 유튜브 쇼츠도 2시간쯤 보고, 인스타그램 속 비교 지옥에 빠져서 허우적댈 나를 상상하며 계획을 짜는 게 좋다. 최대한 소박하게, 내 능력치의 한계를 감안해 글쓰기 계획을 잡는다.


 

글쓰기에 ‘거창한 결심’이나 ‘과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것도 포인트다. 출판계의 한 획을 긋는 책을 쓰겠다던가, ‘일생일대의 작품’을 쓰겠다는 다짐 의욕을 안겨주지만, 때로는 과도한 자의식이나 부담감으로 이어진. 기대치가 높은 경우 현실과의 괴리감 속에서 허우적대다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차라리 '한 두 번 망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결심이 활자를 붙잡는 데 도움 되는 경우도 많다.


  집필의 초기 단계에 힘을 빼지 않는다는 것도 원칙이다. 가령 첫 문장에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물론 첫 문장이 근사하면야 좋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식의 통찰력을 보여주면 독자가 감탄할 것이고,  “오늘, 엄마가 죽었다” 식의 첫머리를 적으면 읽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길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우리는 톨스토이도 아니고 카뮈도 아니다. 굳이 그런 대작가가 될 필요도 없고. 애초에 독자가 나에게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첫 문장에서 힘을 잔뜩 빼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다 탈진해서 두 번째 문장부터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워지니까.  


 처음부터 디테일에 집착하면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글이 지독히 써지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글씨체를 바꾸면 내 글이 근사해 보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후 글 폰트를 맑은 함초롱바탕체에서 맑은 고딕체로 바꿔볼까 한컴 윤고딕 230이랑 250 중에 뭐가 나을까 따위를 고민하다 대여섯 시간이 흘러 버렸다. 글씨체를 바꾼다고 해서 본 글이 근사해지는 게 아님에도 괜한 디테일의 구멍에 빠진 것이다.


 초고 쓰기 직전에 타인의 근사한 글을 보지 않는 것도 주요한 원칙이다. 평소의 나는 은유 작가님이나 신형철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고, 그분들의 책도 즐겨 읽는 편이다. 그러나  초고를  쓰기 직전에 지나치게 멋진 글은 웬만하면 읽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힘이 응축된 문장을 먼저 훑으면 그게 당연한 기준치가 되어버리니까. 기준치가 높은 게 나쁜 건 아니나, 지레 겁먹고 주눅 드는 게 문제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글이 유독 초라해 보이는 건 덤이고.  다만 초고를 다 쓰고 나서, 글을 다듬고 고쳐야 할 때는 일부러 좋은 에세이나 표현이 근사한 글을 읽는다. 유려한 표현이나 미문(美文)이 들어가 있는 책을 훑으면 자연스레 퇴고를 위한 공부가 된다.



 결과적으로 초고를 쓸 때는 최대한 자유롭고 엉성하게 써본다는 마음 가짐을 쌓게 되었다. 원고 집필을 할 때도 초고 쓰는 데 시간너무 쏟않고 빠르게 쓴다. 이건 내 경험의 결과다. 혼자 첫 책을 쓸 때였다. 총 5개월의 원고 집필 기간이 주어졌다.  명화를 통해 경제를 설명하는, 200자 원고지로 550매 정도 분량의  원고였다. 그러나 명화와 경제 두 분야 모두 활자로 풀어내기에 만만치 않은 분야였다. 


 결국 다섯 달의 집필 기간 중 98% 정도를 초고 쓰는 데 소비했다. 명화가 들어가는 원고는 적절한 그림 파일 찾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이 조차 하지 않은 채 텍스트만 쓰느라 시간이 대부분 지나가버렸다. 문제는 마감 1주를 남겨놓고 퇴고하던 시점에 왔다. 1주 동안 A4 70매 이상의 글을 퇴고하며 명화 그림 파일까지 찾아야 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을 새 가고 허덕이면서 겨우 출판사에 글을 보낼 수 있었다. 


 조금 다른 맥락의 얘기지만 아이를 키우거나 직장 생활로, 글 쓸 여유가 없는 이라면 핸드폰 메모장이나 글 쓰는 어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 한창 육아에 시간을 써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도 출퇴근길 버스에서 생각나는 단상을 잡아 메모장에 집어넣는다. 지식 관련 글을 쓸 때는 신문 기사나 자료를 카톡 '나와의 채팅' 창에 링크해 둔다. (물론 나는 비체계적인 인간이라 관련 자료를 실컷 찾아놓고서는 잊고 다시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노트북을 늘 들고 다니기는 어렵기 때문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잠깐 머무는 커피숍이나 도서관 휴게실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틈새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글쓰기와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에세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릴 독서 리뷰 쓸 때는 주로 글쓰기 어플이나 간단한 메모장, 틈새 시간을 활용한다.



 결국 글을 마감하기 위해선 내 불완전성과 미진한 구석을 받아들이며 첫걸음을 떼는 게 좋다. 부족한 내 상태 그대로 한 문장씩 끄적여 나가는 무식한 용기가, 글쓰기에는 도움이 된다. 


책 쓰기의 작은 팁
 1. 원고를 쓰기 전에 전체 전체 쓸 양을 잘게 쪼개어 집필 계획을 세워놓는 게 좋다. 책 한 권 쓰는 건 장기 프로젝트라 집필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전체를 잘게 쪼개어 그 날 그 날 쓸 분량만 생각하며 진행하면 책 쓰기도 조금 만만해진다

2. 글쓰기의 초기 단계부터 너무 힘을 빼지 말자. 첫 문장이나 초고 쓰는데 시간과 힘을 많이 들이기보다, 거친 상태의 글이라도 빨리 쓰고 퇴고를 두세 번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3. 과한 자의식이나 글쓰기에 대한 기대치를 살짝 내려놓고 글을 써도 괜찮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덜 부담스러워지고 글도 조금 더 담백해진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늘도 새벽에 정신없이 글을 써서 올립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원고 마감이 한바탕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예요.  정신을 좀 더 차리면!! 이웃분들 글도 찾아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다음 글은 12월 21일(목)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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