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May 16. 2024

자기 계발서 중독이 위험한 이유

자기 계발서와 성공 콘텐츠가 만연한 시대, 우리는 왜 좌절할까

20대 시절에는 꿈의 신봉자였다. 원대한 목표,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 극적인 성공, 높은 이상.. 종교처럼 이런 가치에 열광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극적인 변화와 성공이 내 지루한 삶을 바꿔놓을 거라 믿었다. 


삶을 바꾸고 싶단 희망으로 가끔씩 자기 계발서를 집어들곤 했다. 이 책을 읽으면 목표를 향해 정갈하게 나아가고 성실하고 보란찬 삶을, 이룰 수 있겠지?  자기 계발서에 담긴 내용에 따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고 의지를 발휘해 정리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쑥쑥 자라나 성공의 자양분이 된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목표에 이르는 걸림돌이 있었다. 내 게으름과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이었다. 자기 직전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내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 180도 달라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읊곤 했다. 그러나 막상 다음 날이면 아침 10시에도 일어나기 싫어 꾸물거렸다. 


 머릿속도 문제였다. 그날그날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했지만 회피 성향과 몽상가 기질 때문인지 정신이 늘 안드로메다에 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쓸데없는 정보나 동영상을 보는 데 한 나절을 보내고 나면, 목표 지향적 삶이나 성공은 천리 바깥으로 가 있었다. 의욕에 가득 차 다짐하지만 실천은 따라주지 않고 자잘한 좌절감에 휩싸이는 패턴이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인생 성공의 법칙과 비법을 전수해주는 콘텐츠가 늘었다.  책은 물론이고, SNS나 유튜브를 통해 꿈과 목표를 세우고 인생 흥하는 방법을 따르라는 주문이 곳곳에 널려 있다. 


 나 역시 삶의 의욕이 절실할 때, 콘텐츠를 보며 다시 의지를 다진다. 인생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에 에너지가 솟을 때도 있고. 그런데 극단적인 제목을 단 콘텐츠에는 불편해진다. ‘인생 망하지 않는 방법’,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성공한 비법’ ‘당신의 인생을 180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 등등의 제목. 자극적인 문장 속에는 이분법의 세계가 담겨 있다. 성공과 실패, 근사한 인생과 초라한 인생,  전부 혹은 전무(全無). 대체로 두 개의 결과지를 보여주고 두 결과지의 차이가 오는 이유를 선명하게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성공으로 가야 할 명분을 보여준다.


 

 성공의 비법으로 지목되는 건 뭘까. 많은 게 있지만 대체로 ‘개인의 의지와 노력과 적절한 선택’이다. 삶의 성공(잘 생각해 보면 이 ‘성공’의 정의도 굉장히 일원화되어 있다)이라는 목표를 품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품어라.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라. 꿈을 가지고 믿는 만큼 원하는 삶에 닿을 수 있다.      


 좋은 얘기지만, 가끔은 의문이 떠돈다. 우리의 삶을 성공과 실패로 가르는 것이 목표의 부재나 노력, 의지 부족의 문제인 걸까. 





 통제력 착각이라는 것이 있다. 1970년대 하버드대 심리학과의 엘런 랭거(Ellen Langer)가 제시한 개념이다. 우연의 결과를 자신의 행동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착각을 말한다.


 슬롯머신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레버를 세게 당길 경우, 본인이 당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고는 한다. 실제의 결과는 레버를 당기는 힘의 세기와 무관함에도, 우리는 개입하고 힘을 가한 만큼 행운이 올 거라 여긴다.   


랭거는 획기적인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우연의 결과를 자신의 선택으로 인지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실험 참가자를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눈다. 두 그룹 모두 1달러짜리 로또를 한 장씩 구매하나, 구매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A그룹은 로또의  번호를 직접 골랐고, B그룹은 자동으로 선택된 로또를 배정받았다.      


 그 후에 두 그룹에 옆 사무실 동료가 로또를 꼭 사고 싶어 하는 데 로또가 매진됐다. 당신이 가진 로또를 팔 생각이 있는가. 판매한다면 얼마에 파는 것이 좋겠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자신이 직접 번호를 고른 A그룹의 사람 중 38%의 사람들은 절대 로또를 팔지 않겠다 답했다. 반면 무작위로 로또를 받은 B그룹에서는 19%의 사람만이 로또를 팔지 않겠다고 답했다. 로또를 팔 경우에도 비슷했다. A그룹은 본인이 1달러에 산 로또를 무려 8.9달러에 팔겠다고 이야기했다. B그룹이 1.9달러에 팔겠다고 한 것과 대조적인 결과였다.


   로또 번호를 직접 선택한 그룹이 당첨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느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A그룹의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다. 확률적으로 직접 번호를 골랐든, 무작위로 배정받았든, 로또의 당첨 확률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당히 낮다) 그럼에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우연의 결과를 자신의 행동이나 선택 때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통제력 착각이 도박 중독을 불러오기도 한다 @PIXHERE

 



 실험을 통해 또 다른 진실도 깨달을 수 있다. 행운이나 성공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과 의지로 100%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일에는 우연과 운이라는 게 적용한다. 현실의 성공은 더욱 그렇다. 다층적이고 복잡한 변수가 작용한다. 사회의 구조란 놈도 있고 시대의 특성도, 성공에 유리한 개인의 기질이란 것도 존재하니까.


 성공의 방정식을 단정 짓는 콘텐츠가 위험해지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이런 콘텐츠는 운이나 환경 등의 다양한 변수를 배제하고, 개인의 통제력 강화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본보기로 삼는 건 성공한 이들의 삶이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통제해 어떻게 성공했는지 - 가령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거나 책을 1000권쯤 읽어야 한다거나 등등의- 알려준다. 그 비법을 복제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는다. 이런 책을 한 두 권 읽는 건 나쁘지 않지만 반복해 읽다 보면 내 삶을 100% 통제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책을 읽는 것으로 자기 계발을 하고 있다는 착각도 따라온다. 





 나의 실패를 환경 탓, 사회 탓으로 돌리란 말을 내뱉는 건 아니다. 패배주의와 좌절을 젖어들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모든 게 귀결된다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실패를 마주했을 때 그 모든 걸 내 의지 부족과 잘못된 선택 탓으로 돌리면 자책감이 솟고, 더 큰 좌절의 악순환에 빠진다.   

 

 때로는 통제력 착각이 불평등한 세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통제력에만 중점을 두면, 나의 성공을 과대평가하고, 타인의 실패에 엄격해지기 쉬우니까. 세상사에는 우연도 있고 우연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개인의 공과 과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착각하게 된다. 실패한 이들,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질책하는 일도 생긴다.     


 '꿈'과 '내면의 욕망'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인간의 욕망은 마음속에 샘솟는 바람으로, 대체로 끝이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을 이루고 나면 우리의 감정은 다음 단계의 욕망으로 갈 것을 추동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욕망의 트레드 밀 위를 끝없이 달리는 건 순식간이다. 목표와 현실 간 괴리로 인해 번아웃이나 불만족감에 휩싸일 수도 있고. '욕망의 실현'이 '꿈'의 동의어인지 한 번씩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성공에 대한 의욕도, 삶을 바꾸고자 하는 변화 의지도, 자기 통제감도 때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가끔은 되뇌는 게 좋지 않을까. 인생에는 잘 되는 일도 있지만 의지와 적절한 선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걸, 운과 우연과 타이밍이 결정짓는 결과지도 있다는 걸,  인생의 결과 값에도 0점과 100점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걸.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통제력 착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기 통제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저도 제 게으름과 의지력 부족으로 아쉬운 결과를 맞이한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통제감이나 자기 조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얼마나 힘든지 (최근 몇년 간의 경험상) 잘 알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꽤 많단 사실도 이따금 떠올려야 하더라고요. 물론 꿈은 있으면야 좋고, 개인의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역시 과하면 마음의 괴로움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꿈과 이상을 품는 데에도, 의지와 노력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에도 중용과 조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다음 글은 5월 23일(목)에 올리려고 합니다. 2~3주 후쯤에는 원고 마감이 한 번 더 와서 글 발행을 한 주 정도 쉴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웃분들 글 찾아가 읽는 것도 약간은 늦을 수 있다는 것도 미리 말씀을 드려요.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