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한 자아(自我) 도감을 그리는 방법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소년 조선일보였나, 동아일보였나, 집에서 구독하던 어린이 신문의 독자 코너에 시를 지어 보낸 적 있다. (어린이 독자가 보낸 글 중 뛰어난 작품을 실어주는 섹션이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어머니의 된장찌개 냄새’에 감동받았단 운문이었다. 모친의 된장찌개 냄새에 마음 뭉클한 적까지는 없었지만,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유리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진정성 없는 시는 탈락했다.
어릴 때부터 인정욕구나 공명심(功名心) 큰 아이였다. 웅대한 자아나 거대한 욕구가 삶에 도움을 준 적도 있다. 뭘 하든 남보다 1.2배쯤 열심히 했고, 공부나 글짓기에선 그럭저럭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어린이가 마주하는 미세한 좌절의 순간이 내게도 왔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대체 불가능한 지능을 지닌 아이도, 만능재주꾼도, 뛰어난 미인도 아니었다. 스스로가 교실 속 평범한 1인임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인정의 지점까지 비교와 낙담의 시간을 몇 번 거쳤다. 공부에 조금만 소홀하면 성적은 야박하게 미끄러졌다. 교외 백일장에 나가면 나보다 유려한 문장력을 지닌 아이들이 그득하단 걸 확인하고 돌아왔다. 교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시린 낙담의 계절이 돌아왔다. 복도에서 아이들이 반기는 화려한 언변과 온기 가득한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나는 뻣뻣하고 감정 표현에 뚝딱이는 초임 선생이었다. 수업 준비를 밤새워 열성껏 해가도 어느 날은 성공하고, 어떤 날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내 자존감은 속절없이 높낮이를 바꿨다. 타인의 박수소리에 잠시 우쭐했다가도 누군가의 냉정한 말에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곤 했다. 자존감의 온도를 외부 평가에 맞추던 시절, 널뛰기하듯 스스로를 좋아하다 미워하는 날이 반복됐다.
비교의 안갯속 날 뭉뚱그려 평가하고 싶어질 때마다, 좀 더 작고 세밀하고 가벼운 것들을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손에 잡힐 듯 오밀조밀한 생명이 담긴 그림, 화조도를.
화조도(花鳥圖)는 말 그대로 꽃과 새를 중심으로 한 그림을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 꽃과 새뿐 아니라 물고기나 게, 네발 달린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까지, 작은 자연을 담은 그림을 아우르기도 한다.
작고 귀여운 풍경을 담은 그림 전통은 중국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조상을 모시는 적막한 묘당 안, 조상들의 영혼이 지루해질 걸 달래기 위해 그 주위 벽을 꽃과 새로 꾸미는 그림이었다. 실용적인 목적이 존재했던 셈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장식의 성격이 가미되고, 화가의 실력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장르로 사랑받는다.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부터 화조화가 등장한다. 조선 초기부터 궁중에서 본격적으로 유행이 됐고, 후기에는 민간에서 두루 사랑받는 소재로 쓰인다. 그림 속 새는 대개 한쌍으로 등장했고, 이는 부부의 화목, 다복(多福)과 장수 등의 길상적 의미를 가졌다. 그림 속 꽃도 제각기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국화는 고상함, 매화는 추운 겨울에 피는 우아함을 의미하는 식이었다. 새도 마찬가지였다. 참새는 기쁨을(노란 참새를 뜻하는 황작(黃雀)의 '황(黃)'이 기쁨을 뜻하는 환(歡)과 소리가 비슷해, 참새는 화목과 즐거움(환락)을 의미한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 꿩은 암컷인 까투리가 알을 많이 낳아 다산을 뜻하는 상징이 됐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후반에는 화단 전반의 흐름이 진경산수화 풍속화와 더불어 ‘닮음의 미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갔다. 화조도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꽃과 새, 벌레를 관찰하고 섬세한 깃털, 잎맥, 꽃잎의 겹겹이 쌓인 층위까지 세밀히 묘사함으로써 화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 이 정교한 필치와 사실주의는 민간으로 흘러들었다. 민화 화조도에도 자연스럽게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이 미덕으로 자리 잡는다.
정교하고 세밀한 필치로 그린 화조도를 살펴본다. 발 밑의 작은 존재에 현미경 들이대듯, 화가는 새의 눈동자나 잎의 얇은 맥과 겹겹이 쌓인 꽃잎을 관찰했을 것이다. 탐색의 결과로 세밀한 ‘데이터’를 쌓고, 이를 화폭에 담았을 테다. 이 예리한 관찰 덕분에 작디작은 자연도 세상에 하나뿐인 정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생명체로 거듭난다.
남들이 '그저 그런 꽃과 풀'이라 지나쳤을 존재도 화가의 시선에 포착되는 순간 고유한 잎을 가진 대체 불가능한 주인공이 됐다. 결국 무엇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가 가진 수만 가지의 데이터를 세밀히 읽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때 “난 안 돼”라는 거칠고 뭉특한 결론에 도달한다. 남들과의 비교는 입체적인 나란 존재를 숫자로 치환하고 순위로 줄 세우는 투박한 행위다. 그럴 때 찾아오는 초라함은, 내가 누구인지 나도 잘 모른다는 반증 아닐까.
어쩌면 자존감은 ‘난 괜찮은 사람’이라 뭉뚱그려 최면 걸 때 쌓이는 게 아니라, 나를 잘게 쪼개어 관찰할 때 축적되는 것일 수 있다. 나에 대한 정교한 데이터가 부족할 때 마음 중심이 속절없이 흔들리게 마련이므로. 결국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초라함을 이기는 건 ‘더 큰 성공'이나 '비교’가 아니라 더 정밀한 자기 관찰 아닐까.
앞서 말했듯 나는 무수한 비교와 좌절의 계절을 거쳤다. 그러나 그 시간을 거치며 날 위한 정교한 데이터도 얻었다. 오후 2시의 활기보다 새벽 2시의 적막을 사랑하고, 떠들썩한 사교의 장보다 홀로 미술관에 가거나 밥 먹는 일에 숨통이 트이는 사람이 나란 사실을 알았다. 시(詩) 짓기보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쾌감을 느끼고, 멋들어진 레스토랑보다 만화 카페에 들를 때 더 큰 위안을 얻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남보다 높이 뛰려는 수직 상승의 욕구보다 삶의 외연을 넓히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내가 차가운 기운에 피는 매화인지, 늦가을 개화하는 국화인지, 그 꽃피는 계절을 명료하게 알게 되니 조급함이나 좌절감도 조금은 사그라졌다.
외부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릴 땐, 다시 현미경을 붙들고 날 들여다본다. 내가 언제 숨구멍이 트이는지, 어떤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상처받는지, 나의 고유한 무늬와 꽃잎의 모양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데이터를 기록해 보는 것이다. 정교하고 세밀한 관찰기를 촘촘히 쌓을수록 타인의 기준이나 세상의 평균치가 내 안으로 들어올 틈은 줄어든다.
대문사진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방문해 그림을 그린 영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의 East gate Pyongyang(1925)이란 작품입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민화 아닌 그림으로 시작을 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자존감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이 주제도 명화 에세이나 사회서에서 여러번 다룬 적 있지만, 늘 끊이지 않는 고민이죠. 앞서 적었듯 저는 인정욕구도 꽤 크고 애살도 있는 성격이라 외부 평가에 마음 흔들린 적이 많습니다. (다행히 '능력'에 대한 인정욕구만 큰 편이고 '선(善)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픈 인정욕구'는 선천적으로 크지 않아요. ㅎㅎ 그런 욕구까지 컸으면 정말 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글쓰기도 결국 결과물이 외부에 읽히고 평가받는 작업이라, 하다 보면 마음 널뛰기를 할 때가 옵니다.
하지만 살면서 좌절도 하고, 비교도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면서 '난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인간이다'라는 결괏값을 어느 정도 얻었고, 그 덕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글 쓰면서 '내게 수직 상승의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 내 흥밋거리랑 호기심 채우고 스스로를 발산할 때 제일 행복한 사람이구나.'란 사실도 알게 됐구요. 어쩌면 자기 객관화, 내 그릇의 모양과 주제를 잘 아는 일(일종의 주제 파악이랄까요)이 사는 데 중요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데이터나 성공궤도는 근본적으로 내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외부 평가에 흔들리거나 낮은 자존감 때문에 고민인 분들이 계신다면 '난 잘난 인간이야' '난 못난 인간이야' '남들은 날 어떻게 평가할까?' 등등으로 뭉특하게 스스로를 보는 것보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순간에 내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어떤 때 유독 행복한지 세밀하게 관찰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어요.
찾아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 다음 주에 발행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