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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Feb 25. 2020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우울할 때

빈센트 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이 내게 말을 걸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 이제 인정한다. 아이를 낳고 낯선 나라에 와서 사는 동안 나는 내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외국생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타지에서 나는 만국 공통어라는 영어를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운전을 못하니 내가 원하는 것을 제 때 사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졌다. 요리는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아이가 늘 함께였기에 낯선 곳에서 민폐녀가 될까 더욱 움츠러들었다.


 한국에서의 내가 이 곳에서와 다르게 모든 면에서 유능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의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었고, 학창 시절이나 직장에서부터 나를 알았고 인정해주는 인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반면 이곳에서의 나는 '나'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존재할 뿐이었다. 심지어 잘하는 것도 없었다. 나라는 존재가 너무 작아지고 작아지다 곧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이 낯선 타지에 와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인정 욕구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울 길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외국생활을 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으니 내 능력을 인정받거나 칭찬을 들을 만한 기회도 전혀 없었다. -물론 직장생활에서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해,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돌았다.




인생의 꽃길을 걷지 못한 화가, 반 고흐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미칠 것 같을 때, 빈센트 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1889)을 찾아본다. 초등학생까지도 이름을 안다는 그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해바라기>(1888), <별이 빛나는 밤>(1889) 등의 멋진 작품들을 남긴 후기 인상주의의 거장이다.


 고흐는 불운한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의 우리는 그를 위대한 화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고흐는 살아생전 내내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그는 젊은 날 화랑에서 일하다가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림을 보는 시각 차이 때문에 손님들과 자주 말다툼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에도 그는 꽃길을 걷지 못했다. 그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던 화가 안톤 모베와 절교하기도 했고 미술학교에서 퇴학당하기도 했다. 그림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은 당시의 고흐에게는 무리였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900여 점의 완성품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 1편뿐이었다. 그만큼 당시 고흐의 작품세계를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정신적 지지자가 되어주었던 동생 테오 정도가 유일하게 고흐를 인정하는 이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외로웠던 고흐는 동료 화가였던 폴 고갱과 뜻이 맞아 프랑스의 소도시 아를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이 고흐의 인생에 있어 최악의 사건들을 불러오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고흐와 고갱은 처음에는 그런대로 원만하게 잘 지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부딪히기 시작했다. 둘은 그림을 그리는 견해가 완전히 달랐고 성격도 맞지 않았다. 고흐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가진 반면, 고갱은 그림의 대상이 되는 장면을 기억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그려내기를 원했다. 의견이 달랐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악의 파트너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그려주기도 했다. 한 번은 고갱이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라는 제목으로 고흐의 모습을 그렸다. 고흐가 보기에는 이 그림 속 자신은 흐릿한 눈을 하고 미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 때문에 고갱과 말다툼을 하던 고흐는 분노에 차서 술잔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폴 고갱 Paul Gauguin, 1888)

오랫동안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고흐의 외로움과 불안함이 극도로 치달았다.  특히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료라 생각했던 고갱에게서마저 조롱받고 있다고 생각한 고흐는 마침내 미쳐버렸다.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그는 1888년 12월 어느 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리게 된다.

 

 



우울한 나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리다, <귀가 잘린 자화상> 

<귀가 잘린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89)

<귀가 잘린 자화상>은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정신병원에 있다가 퇴원한 고흐가 자신을 그린 그림이다. 귀가 잘린 자화상은 두 점이 있는데 이 그림은 그중 한 점이다. 그는 살아생전 수많은 자화상을 그렸지만 특히 이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왼쪽 귀를 잘라낸 상태로(고흐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그렸기에 이 그림에서는 오른쪽 귀가 잘린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붕대를 감고 있다.


 그는 화가 생활을 시작한 시절부터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거장 렘브란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델을 초빙하여 그림을 그릴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는 자화상을 잘 그리기 위해 좋은 거울을 샀다고 동생 테오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하기도 했다.


고흐는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자화상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우울하고 슬픈 자신의 모습이라도 가감 없이 스스로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려진 지 불과 1년 후인 1890년  그는 결국 정신병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의 가치와 세계를 지키는 것은 결국 '나'다   


 <귀가 잘린 자화상>을 보면 결국 미쳐버린 고흐의 불운하고 비극적인 인생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원을 드나든 그 순간에도 '그림을 그리는 나'를 지키기 위해 끝내 붓을 들었던 그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

 자화상 속 그의 눈동자는 다소 힘을 잃었고 음울해 보이지만, 그림을 보는 이들을 비교적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마치 '나는 어떤 순간에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눈빛 같다. 실제 정신병원에서 물감을 먹을 정도로 미쳐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는 늘 화가였다.


 실제 고흐의 대표작들 중 다수가 그의 정신병 발작 이후 탄생했다. 귀를 자른 사건 이후 생 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별이 빛나는 밤>, <누런 밀밭의 사이프러스 나무>나 그의 주치의를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 등이 이런 작품들이다. 정신병에 시달리면서도 그림을 그리던 그 시기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한 때가 되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미쳐가는 삶이었지만 고흐는 끝까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어떤 순간에도 나의 가치와 세계를 지키는 것은 '나'다. 그림을 보는 내가 고흐처럼 위대한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상관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자신을 더욱 초라하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들 때, '나는 내가 지키자'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주변에서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면 내가 더욱 쓸모 있고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글을 쓰든 좋아하는 책을 집중하여 읽든 맛있는 것을 찾아 먹든, 나를 기쁘게 하고 바로 세워줄 무엇인가를 하고 계획할 때 나는 나다워진다. 누구에게 인정받아서 멋진 내가 아니라도 좋다. 그냥 내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고 좋아하는 것을 제공해주며, 나를 귀하게 대접해주면 된다. 스스로를 가감 없이 응시하고 나다운 것을 자꾸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내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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