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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05. 2020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기적

전염병 때문에 많이 걸렸던 그림,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그립고 그립다, 평범한 일상 


불과 3주 전만 해도 일상이 지겨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중동국가에서의 일상이 몹시 따분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단조롭고 지루한 날들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생각하며 한국으로 휴가 갈 날짜가 얼마나 남았나 세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가롭게 하던 때가 그립다. 평범한 일상이 갑작스레 무너졌기 때문이다. 3주 전쯤부터 갑자기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내가 지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한국인의 입국이 금지되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곳에서도 확진자 숫자는 매일 늘어만 간다. 안전 때문에 아이의 학교는 휴교했다. 이 휴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3달 정도가 될 것이라 대부분 예상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교'가 아니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휴교에 가깝다.) 

 

아, 지겹고 권태롭다 느낀 3주 전의 일상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냥 두려움 없이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갈 수 있던 그 일상이 그립다. 집에 주로 있는 나조차도 이런 심정이니, 바이러스 때문에 영업이 힘들거나 생계에 위협을 받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전염병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으니 전염병은 분명 무서운 존재가 맞다. 뿐만 아니라 평범한 하루하루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면에서도 이 바이러스란 놈이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그림, 왜 중세에 핫했을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안드레아 만테냐, 1480년경)


 전염병의 공포가 날뛰는 지금, 떠오르는 한 장의 그림이 있다.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Andrea Mantegna.1431~1506)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1480년경)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온몸에 화살이 박힌 한 남성을 만나게 된다. 이 남성은 로마 제정 시대에 살던 기독교의 성인 성 세바스티아누스다. 그는 원래 황제가 총애하던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당시 박해받던 종교인 기독교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결국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기독교인들을 도와주려다 정체가 발각되어 광장에 묶여 화살을 맞는 형벌을 받게 된다. 수많은 화살이 그를 향해 꽂아 들었다. 죽음은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참혹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일어났다. 세바스티아누스가 생명을 잃지 않고 이렌느라는 기독교인 미망인에게 치료를 받고 살아나게 된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후에도 그는 종교에의 믿음을 지켰다.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 황제에게 '기독교인을 박해하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가 몽둥이로 때려 맞는 형벌을 받게 된다. 결국 그는 로마의 거리에서 순교하였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15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가다. 그는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화살을 맞아 형벌을 받는 장면을 그렸다. 만테냐의 그림에서 군인 출신의 세바스티아누스는 근육질의 균형 있는 몸을 지닌 사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고대의 건축물 기둥에 묶여 있다. 실제 세바스티아누스는 나무에 묶여 화살을 맞는 형벌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만테냐는 고대 그리스와 고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였기에  이러한 배경을 선택했다. (화면의 왼쪽에는 역시 발 모양만 남아 있는 고대 조각상의 일부가 보인다) 세바스티아누스의 앞쪽에 대화하며 지나가는 두 사람이 보인다. 활과 화살촉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형 집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집행인인 것 같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그린 그림이 전염병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중세 시대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의 수호성인이었다.  페스트는 쥐벼룩에 의해 옮는 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에 내몬 것으로 유명한 전염병이다. 원인도 모를 병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상황이었다. 의료기술도 과학도 발달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전염병에 대해 해석을 내려야만 했다.  

 

 '하늘이 내린 벌'. 종교가 아주 중요했던 중세 유럽인들은 페스트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내렸다.  인간의 욕심이나 교회의 부조리 때문에 신이 벌을 내린 것이라 여긴 것이다. 특히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에 걸리는 이유가 죽음의 신이 쏜 화살 때문이라 생각했다.  

페스트(아르놀드 뵈클린, 1898)

 

 이런 생각에 이르자 중세인들의 머릿속에는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떠올랐다. 죽음의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은 기적의  성인 세바스티아누스.  곧 세바스티아누스는 그들에게 전염병을 이겨낼 수 있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페스트가 한창 돌던 14세기는 물론이고 페스트의 공포가 지나간 이후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수호성인의 그림을 성당에 걸어놓고는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은 전염병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평범한 하루하루로 돌아가는 기적을 바라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에 얽힌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페스트의 공포 속에 살던 중세 유럽인들이  21세기의 현대인들과는 한참 다른 존재로 느껴졌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수많은 뉴스와 SNS 속에서 전염병의 원인, 확산경로, 치료법이나 예방법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접한다. 그에 비해 유럽인들은 페스트의 확실한 원인도 몰랐고 확산 경로도 예측할 수 없었다.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이 없던 그 시절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종교에의 믿음 그뿐이었겠지? 이 정도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현재 이 시점에 작품을 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심경으로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바라 보았을지 상상이 간다. 하루라도 더 빨리 두려운 상황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 이런 바람을 가지고 수호성인의 그림을 내걸고 살펴 보았을 것이다. 지금 이 그림을 보는 나도 똑같은 바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다. 엉뚱하게도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자, 14세기 유럽인들의 심정에 공감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가리라. 그 무서운 흑사병도 결국에는 끝났다. 지금 세상을 뒤덮은 이 바이러스도 그리고 힘든 시간들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 속 화살을 맞은 성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세바스티아누스의 '고통'보다는 그가 살아났다는 '기적'에 주목했다. 매일같이 불안함을 전달하는 뉴스들 속에 심란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기적을 바라본다. 하루 빨리 모든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는 기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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