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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15. 2020

SNS 속 타인의 그럴듯한 삶이 부러워질 때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들여다보다 

SNS 속 타인의 행복한 삶을 외면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SNS를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지인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SNS 속 행복에 겨운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삶과 비교되어 우울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육아도 멋지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지금은 외국에 사는 데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극도로 적어 오히려 이 감정이 덜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항상 '내가 가지지 못했지만 남들이 가진 것' 때문에 안달 나고, 우울해했다. 아파트 청약에 한 번에 당첨되어 새 아파트에 살며 몇 억씩 벌었다는 지인이 부러웠다. 나는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는 공부를 너무도 잘해 전공 분야로 승승장구하는 친구도 부러웠다. 물론 최근에도 비슷한 감정이 종종 밀려온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는 내 책의 낮은 판매지수를 확인하며, 비슷한 분야에서 높은 판매지수를 기록하는 책의 작가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마치 내 마음속에 커다란 경쟁 레이스가 있는 느낌이다. 그 레이스에 나와 타인들을 세워놓고 끊임없이 달리기 시키는 느낌. 내가 남들보다 더 빨라야 한다는 느낌, 내가 더 행복해야 한다는 욕구 속에 더 불행해진 적도 있었다.    

 

LIKE(좋아하는 것)과 WANT(원하는 것)은 다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였는데, 'WANT'(원하는 것)와 'LIKE'(좋아하는 것)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할 때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고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이 강의의 핵심 내용이었다.   

 보통 타인들이 갖기를 원하기에 나만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청약에 당첨되어 좋은 브랜드의 새 아파트에 사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부러움을 살만한 일이었기에 나도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룬 지인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나는 이 아파트에 대해 생각하거나 원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 쾌적한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야 당연한 욕구지만 꼭 그 아파트여야 할 이유는 없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기 위해 나는 그것을 '원하기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우, 브랜드 아파트는 내가 원하기는(WANT)는 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지(LIKE)는 않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아도 내가 그것을 생각하고 가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바로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원하는 것이다. 가령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원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가 자꾸 살고 싶어 지고 생각나는 집이 있다면 그 집은 정말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LIKE+WANT)'이라 볼 수 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행복해 보이기에 원하던 것. 이런 것들을 제거해 나가다 보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욕구와 행복에 굳이 나를 맞추고 쓸데없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쁨을 그리다, 마티스의 '생의 기쁨' 

삶의 기쁨(앙리 마티스, 1905~1906년경) @ 출처: 플리커 닷컴

WANT(원하는 것)와 LIKE(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작품이 있었다. 마티스의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이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프랑스의 화가로 야수파의 창시자로 불린다. 야수파는 과감하고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고 대담한 붓질을 선보이는 20세기 유럽의 미술사조였다. 이들의 그림에 쓰이는 색채들은 자연을 그대로 나타나는 색을 그대로 표현한 것들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느껴지는 색채들로 작품을 채우는 것이 야수파의 특징이었다.

 <삶의 기쁨>은 야수파의 거장인 마티스의 작품답게 화려한 색채로 눈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그림 속 벌거벗은 인물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상태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고 있다.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여인은 피리를 불고 있고 그 옆에는 다소 특이한 자세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있다. 저 멀리에는 동그랗게 모여 춤을 추는 사람들도 보인다. 

 이 작품 속에서 불행해 보이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행위를 하며 원초적인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마티스는 "마치 아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평생토록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술철학을 밝힌 바 있다. 사실 그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굴곡을 겪은 화가였다. 화가를 원했으나 아버지가 진로를 반대하였고 살아 있는 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말년에는 암 수술과 관절염 등의 건강문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을 늘 고려했던 작가였다. '삶의 희망과 기쁨'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으로 표현했던 예술가였다. '생의 기쁨'은 그의 이러한 예술철학이 가장 잘 녹아있는 작품 중 하나다. 

 이 그림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즐거우며 무엇을 가져야 행복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가령 나는 중심지에  위치한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 멋진 옷과 가방을 원한다. 이것들을 가지면 남들이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WANT와 LIKE를 거두어내고 보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글쓰기 할 수 있는 시간'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과 신선한 체험''만화방에 앉아 좋아하는 만화를 실컷 보는 것' 등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행위들을 실컷 누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기는 하나 돈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새 브랜드의 아파트, 명품 옷과 가방이 나의 삶에 원초적인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타인과의 비교에 쓸데없이 흔들리지 않는 방법 


우리는 시시각각 타인의 시선과 군더더기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오늘도 SNS 속 다른 이들의 그럴듯한 모습과 기업들의 광고가 우리의 욕망을 부추긴다. 남들이 가진 것을 나만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안달 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욕망을 완전히 떨구어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욕망에 시달릴 때 마티스의 <생의 기쁨>을 다시 본다. 내 삶의 원초적 기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골똘히 고민해본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경쟁 레이스가 일시에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불행하지 않게 지내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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