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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y 26. 2024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참 많다.

상황실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경찰관 1명이 사건 기록을 가지고 상황실로 들어왔다. 구속영장신청 기록이었다. 당직 부책임자는 기록표지에 접수인을 찍은 후 영장신청기록을 검사실에 올려주었다. 30분이 지나자 다른 경찰관 1명이 사건기록 하나를 가지고 상황실로 들어왔다. 그리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변사사건 기록임을 추측했다. 내 예감이 맞았다. 경찰관이 가져온 두 번째 기록은 변사 사건 기록이었다.


나는 경광등이 달린 경찰차의 불빛이 상황실 벽면을 비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차에서 내리는 경찰관의 발걸음을 보곤 한다. 기록을 들고 검찰청 상황실로 들어오는 경찰관의 발검음을 보기 위함이다. 구속영장 혹은 체포영장 같이 신병을 구속하는 영장을 들고 오는 경찰관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이 있다. 수사의 의지가 발검음에 나타난다. 반대로 변사자에 대하여 지휘를 받기 위하여 기록을 가지고 오는 경찰관의 발걸음은 무겁다. 특히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변사자의 기록을 들고 오는 경찰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묻어 있기도 하다.


변사 사건 기록은 자살을 했다거나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후 만들어진다. 검찰청은 주변에 있는 여러 개의 관할 경찰서에서 올라오는 변사사건을 지휘한다. 최종적으로 당직 검사가 결정을 하여야만 다음 절차가 진행이 된다. 검사가 변사사건 기록을 검토하여 범죄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한 후에 장례 절차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검사가 범죄 혐의가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면 검사는 경찰관에게 의심되는 내용을 확인할 것을 지휘한다. 지휘를 받은 경찰관은 지휘한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다. 부검 영장 등을 신청해서 범죄 혐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변사 기록을 상황실 부책임자에게서 넘겨받아서 검토를 했다. 검사가 기록을 검토하기 전에 변사 사건에 범죄 혐의가 있는지 1차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내 일이다. 수백 개의 변사자의 사진을 봐왔다. 기록을 검토하다가 범죄혐의나 의심스러운 내용이 있다면 이를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도 나의 의심에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검사와 함께 검시를 나간다. 변사기록은 슬픔이 배어있다. 그래서 변사 기록을 만지면 기록에 덮여있던 슬픔과 한기가 나를 파고드는 것 같다.


나는 표지를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찬찬히 기록을 살폈다. 유족진술을 읽고, 변사자의 사체 사진을 보고, 경찰관이 변사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나타내는 의견서를 읽었다. 변사자가 아주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진단서도 있었다. 기록에는 장례지도사가 사체를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다. 우측면, 좌측면, 후면, 전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사체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검사와 판단과 결정을 돕는 검찰수사관이 타살의 흔적을 찾기 쉽도록 하는 절차이다.


변사자 몸 어디에도 흉기로 찔린 곳은 없었다. 피멍이 든 곳도 없었다. 사체의 곳곳에는 선홍색의 시반이 나타나 있었다. 선홍색의 시반은 일산화탄소 혹은 독극물에 의하여 사망했을 때 나타난다. 나는 상황실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경찰관이 발견하지 못한 타살의 흔적을 찾는다면 검사에게 보고하고 현장에 나가봐야 한다. 변사자는 27살의 여성이었다. 모든 창문을 테이프로 봉하고 번개탄을 피웠다. 밖에서 강제로 문을 연 흔적이 없다. 혈액검사를 통하여 독극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산화탄소에 의한 자살이다.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유족진술을 읽었다.


일반적으로 변사사건의 기록에는 슬픔, 비통, 참담, 회한, 후회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참기 힘든 단어로 채워져 있다. 나는 유족진술을 읽다가 '엇' 소리를 냈다. 빠르게 읽던 기록에서 나는 [감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에 맞지 않은 단어는 곧바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변사자의 기록에서는 찾기 힘든 단어였다. 유족진술은 변사자의 아버지가 했다. 아버지의 진술은 이랬다.


"우리 애가 4-5년 전에도 자살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니 부검은 하지 말아 주세요. 타살이 아니고 자살이 맞습니다. 당시에는 손목을 그었었는데 긴급출동한 소방대원이 살렸습니다. 치료가 끝이 나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금세 다시 자살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습니다. 한데 몇 년을 더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걔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꽃을 보았나 봐요. 길을 가다 보면 큰길 옆에 황무지처럼 버려져 있는 땅 있잖아요. 어느 때부터인가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들이 그곳에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걔가 꽃을 보더니 마음에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다음부터 어떤 꽃이 심어져 있는지 궁금했나 봐요. 자주 꽃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걔가 몇 년을 더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꽃을 보면서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분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꽃을 심었던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록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진술을 하던 변사자의 아버지는 울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기록을 덮고 검사에게 기록을 올려주었다. 그러고 난 후 한참을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찌 보면 무심히 지날 수도 있는 공공근로자의 꽃을 심는 행위가 어떤 이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자살한 딸아이를 둔 아버지의 입에서 감사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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