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르게 호송팀을 꾸려 법정으로 갔다. 법정 옆에 마련된 유치장 안에는 구속된 피고인 3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재판 진행 중에 영장이 발부되거나 종국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영장이 발부된 사람들이다. 모두 교도소에 가야 할 운명이다.
판사는 피해 회복은 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뺀질거리는 피고인을 재판 진행 중에 구속할 수 있다. 구속을 시킨 상태에서 앞으로의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또, 선고를 하는 날 실형을 선고하면서 피고인을 구속할 수도 있다. 이를 법정구속이라 한다. 실형을 선고하면서 영장을 발부하지 않아 구속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항소심 준비를 밖에서 준비하라는 취지다.
많은 사람들은 경찰 혹은 검찰에서만 구속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언제든지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정리를 하면 재판을 하다가도 영장을 발부할 수도 있고, 선고를 하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도 있고, 발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셋은 유치장 안에 앉아 있다가 무섭게 생긴 벨트 수갑을 들고 있는 수사관이 들어오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세명에 대한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벨트 수갑을 채워 자리에 다시 앉혔다. 그리고 영장에 집행일시와 집행장소를 적었다. 끝으로 나의 소속관서와 관직에 남양주검찰청 검찰수사관으로 적고 서명날인하는 곳에 내 이름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내가 서류 작업을 하는 동안 40대 남자 한 명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고, 양복을 잘 차려입은 50대 남자 한 명은 핸드폰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30대 남자 한 명은 핸드폰을 거의 입에 물다시피 하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상대방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상대방은 엄마인 듯했다.
"이동 중에는 핸드폰 사용 할 수없습니다. 이제 핸드폰 모두 꺼주세요"
사람의 신병을 구속하는 일은 지난 20년 넘게 늘 해오던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었다. 법정구속 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법정에서 교도소로 가는 30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왜 법정구속이 되었는지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이 법정구속 된 이유는 모두 남 탓이었다. 엄마, 남편, 아내가 합의금을 준비해 오지 않아서 구속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지 않고 남 때문에 교도소에 간다는 생각을 한다. 개중에는 침묵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흔적을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하여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실형이 선고됐는지,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해야 될 건지 생각해 보면 좋을 텐데 대부분 돈을 많이 내는 변호사를 선임했어야 이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를 한다.
변호사 비용을 피해자에게 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를 허락한 시간조차도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교도소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성 멘트를 날리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금을 빌려주지 않아서 교도소에 갔으니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변호사에게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토로한다.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셋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던 40대 남자는 '좆같은 법'이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 벽을 발로 찼다. 그는 다시 엘리베이터 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는, 발뒤꿈치로 엘리베이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법정에서 구속이 되었는지 생각을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재판 진행 중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엘리베이터 부서지면 앞으로 교도소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수리해 줘야 합니다."
나는 녀석이 정말 억울한 것이 있는지 영장에 있는 범죄사실을 확인했다. 전혀 억울할 일이 없었다. 사기죄를 지은 것은 거의 5년 전이었다.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서 8,000만 원을 사기 쳤다. 큰 사업을 하는데 진행비가 필요하다며 여자를 속였다. 사업은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날로 8,000만 원을 먹었다. 5년 전 사건이니 매달 백만 원씩만 갚았더라도 충분히 갚을 만한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돈을 갚지 않고 있다가 구속이 되고 난 후에 법이 좆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법이 좆같다" "법이 개법이다"라고 말하는 피의자 혹은 피고인을 많이 봐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오래전 민원실에 근무할 때 거의 세 달을 민원실을 찾아와 업무를 방해하던 민원인이 생각난다.
민원인은 40대 남자였다. 그는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법이 좆같다고 욕을 했고, 불기소 이유고지서를 발급받으면서도 법이 좆같다고 욕을 했다. 그가 민원실에서 하는 말이라고는 법이 좆같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간혹 가다가 민원실 책상을 발로 차기도 하고 민원실 바닥에 침을 뱉기도 했다.
그는 민원실에 앉아 민원인을 응대하는 수사관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이 말할 때에는 무조건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해주기를 바랐다. 결국 자신이 고소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법이 좆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그는 고소장을 들고 와 나에게 접수를 하면서 또 법이 좁다는 말을 했다. 나는 드디어 그에게 할 말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법이 좆같다고요"
"그래"
"지금 세 달째 여기를 방문해서 법이 좆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맞나요?"
"그래 내가 그랬다 어쩔 건데?"
"음 선생님은 제 얘기를 조금 들으셔야 되겠네요. 선생님 지금 계속 법이 좆같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법이 선생님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뭔 개소리야?"
"들어보세요. 저는 공무원법, 검찰청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난 세 달 동안 민원실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법이 좆같다는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공무원법에는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을 대하는 법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그래요. 그런데 선생님이 좆같다고 말하는 그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공무원법, 검찰청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요? 선생님은 저한테 두들겨 맞습니다. 저는 법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선생님을 때리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선생님 저보다 덩치도 작습니다. 선생님 주소검색해서 어디 사는지 알아낸 후에 몰래 선생님 집에 찾아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만두지 않는 거죠. 법에 선생님 사는 주소 함부로 검색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서 그동안 모욕적인 말 들어가면서도 가만있었던 겁니다. 저는 운동을 많이 했어요 제 팔 한번 만져 보세요. 법은 좋은 거예요. 법을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요. 선생님은 지금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법은 그런 거예요. 함부로 법이 좆같다고 말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어요?"
"......."
"지금 이 시간 밖에 나가서 아무 곳에나 들어가셔서 바닥에 침을 뱉어보세요. 또 발로 가게에 있는 물건을 차 보세요. 그리고 음식 맛이 좆같다고 이야기해 보세요. 가게 주인이 3개월 동안 그렇게 행동하는 선생님 가만 둘까요? 아마 가게 주인한테 선생님 멱살 잡히고 구석진 곳에 가서 두들겨 맞을 겁니다.
"......"
민원인은 울상이 되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법이 없으면 힘이 제일 센 사람이 왕입니다. 선생님은 서열에 들지도 못해요. 맨날 맞으면서 잔심부름해야 합니다. 법이 선생님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데도 법이 좆같다고 계속 말씀하실 건가요? 앞으로 법이 좆같다고 말하지 마세요"
민원인은 제출하도록 하려던 고소장을 가지고 나간 후 다시는 검찰청 민원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발을 구르던 피고인은 엘리베이터 수리비를 물어주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교도소까지 갔다. 법이 좆같다는 말을 한번 더 말했다면 나에게 법이 피고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