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는 남편과 함께 검사실로 들어왔다. 나는 피의자에게 남편이 조사시간 동안 동석할 것이냐고 물었다. 피의자는 머뭇거렸다. 곧바로 남편은 밖에서 대기를 하겠다고 했다. 피의자는 남편이 검사실을 나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환갑에 가까운 여자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목놓아 큰소리로 엉엉하며 우는 것이 마음 쓰였다. 혹자들은 '관상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나는 관상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사관 생활을 제법 오래 해왔기에 '정말 나쁜 놈'을 금세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피의자는 그리 삶을 팍팍하게 살아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제가 아이들을 데려다 키울게요 제가 키우면 되잖아요"
피의자는 대형 SUV 승용차 운전자다.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직진을 하다가 좌회전하는 소형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소형승용차에 타고 있던 30대 여성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반면에 피의자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사망자의 남편도 최근에 교통사고로 사망을 했다. 사망한 30대 여성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다.
조사자인 나를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사망자 슬하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유치원에 다니는 딸, 돌이 지난 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혼자 아이들 셋을 바쁘게 키우고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것이다. 아이들은 채 1년이 되지 않는 사이 아빠와 엄마를 모두 교통사고로잃었다. 피의자는 내가 묻는 질문을 할 때마다 울면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게 해 주세요"
피의자에 대하여 이미 경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안이지만 사망사고로 중한 사건 인지라 검사는 구공판을 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조사를 내게 부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여계장이 조사하는 동안 검사는 다른 사건의 공소장을 쓴다. 검사라는 직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 중에 하나다. 다른 사건의 공소장을 쓰면서 참여계장이 조사하고 있는 피의자의 말과 생동을 살핀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는지, 정상참작에 필요한 사항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신저를 통하여 조서에 담겨야 할 내용을 조사자인 참여계장에게 요청한다. 그러면 참여계장은 검사가 요청한 내용을 피의자에게 묻고 피의자가 답변한 내용을 조서에 남기는 것이다. 한데, 오늘따라 검사는 머리를 책상에 박은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상부에서 요청한 일거리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조사를 계속했다. 피의자는 다시 울음 섞인 소리를 했다.
"제가 아이들을 잘 돌볼게요. 우리 아이들은 모두커서 잘 키울 수 있습니다"
"그건 차후의 문제고요. 경찰에서 조사받은 내용 모두 인정하시죠?"
"예 모두 인정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정신없이 울어대는 피의자를 달래며 조사를 모두 마친 나는 검사에게 조사를 모두 마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머리를 들지 않고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지요? 돌아가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조사한 내용에 추가할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있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고 피의자를 돌려보낸 것이었다.
나는 피의자를 돌려보내고 피의자신문조서를 기록에 편철한 후에 기록을 검사에게 넘겼다. 나는 기록을 검사에게 넘기면서 검사의 얼굴을 보았다. 검사의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나는 머리를 돌려 자리로 돌아오면서 실무관의 얼굴도 보았다. 실무관 역시 눈이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조사하는 내내 어디선가 콧물 흘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나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혼잣말로 "아 요즘 이게 요즘 꽃가루가 너무 날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