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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Jun 23. 2024

편견없는 시선 갖기 원합니다.

검찰수사관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사건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다. 그러나 이 다양성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 그런 감각을 열고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선을 달리하며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다양한 시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저 사건을 처리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소중한 경험이 나에게 다양한 시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지방에서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달리 그날은 술자리 모임이 있어 승용차 대신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피곤했던 나는 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고, 깨어났을 때는 버스가 전혀 낯선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서울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자다 깨서 착각을 한 줄 알고, 5분 동안 침착하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나는 기사에게 다가가 서울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었다. 돌아온 것은 그렇다는 대답 했다.


황망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본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깨달았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앉은자리에서 자세를 낮췄다. 승용차만큼 낮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었다. 승용차로만 오가던 거리였던 탓에, 시야가 높아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낯선 곳이라고 오해해 버린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뇌리에 무언가 번뜩였다.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내가 시선을 달리 한 덕분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피의자나 사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단편적 정보나 한쪽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진실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검찰수사관의 직무는 단순히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법의 정의를 실현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편견에 물들어 있다면? 죄가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오인할 수 있고, 죄가 있는 사람을 눈앞에서 놓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준의 치명적인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공정하게 피의자를 대하고 있는가?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진실을 향하고 있는가?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본질을 잊고 표면적인 사실에만 집중하게 된다. 워낙 거친 사람들을 만나고, 충격적인 장면을 많이 마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건의 진실은 그 표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동시에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이렇게 얻게 된 교훈은 매우 단순하지만 깊이 있다. 우리는 시선을 달리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저 하나의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방향이 더 쉽고 편할 수밖에 없다. 편견은 대부분 맞는 경우가 많고, 틀리더라도 오해였다고 정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편견은 그것이 정답이라 할지라도 정당하지 않고, 틀렸다면 정정할 수도 없다. 아주 잠깐,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자세를 함양해야 하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은 밤, 고속버스 안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판단이 과연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가?


우리의 일상에서도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버스 안에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시각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편견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편견은 처음에는 실수가 되지만, 나중에는 핑계가 된다. 작게 생긴 균열이 커다란 상흔이 되는 사건을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이 봐왔다.


다양한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더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런 나의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깨달음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진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시선을 달리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결국은 진실을 향한 길을 밝혀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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