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검경수사권 조정이 되었다. 수사권 조정으로 인하여 검찰과 경찰의 역할 분담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명확해진 업무가운데 '호송'이라는 업무가 있다. 호송업무는 검거된 수배자를 지명수배한 수사기관으로 데려다주는 업무이다. 수사권 조정 전에는 검찰에서 수배를 한 피의자 혹은 피고인일지라도 경찰이 검거하였다면 경찰이 검거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을 수배한 검찰청까지 호송했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이 직접 호송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수배를 한 피의자가 부산에서 검거되었다면 피의자를 검거한 부산경찰서 형사과 수사관이 피의자를 서울중앙지검까지 호송했다. 현재는 부산검찰청 소속 호송팀이 부산경찰서에 가서 피의자를 인수받아 서울중앙지검까지 데려다준다. 호송업무를 위하여 검찰청에서는 약 300명을 추가로 배정받았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언제나 그렇듯이 새롭게 시작되는 업무에는 지원자가 없다. 검거되어 호송되는 사람은 수개월에서 수년을 도망 다니느라 대부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검거된 도망자는 온몸에 오물이 묻은 노숙자일수도 있고, 스스로 도망자 신분임을 잊고 술에 곤죽이 된 상태일수도 있다. 도망자를 호송동안 다양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법리를 기반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조사업무를 하는 수사관들은 호송업무를 꺼린다.
지원자가 없는 까닭으로 3명씩 조를 짜서 순번을 정하여 호송업무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당번인 날 도망자가 검거되면 호송업무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한 달에 두세 번 호송 당번을 서고, 세네 번 정도 상황실 근무를 선다. 주간과 야간으로 조를 나누다 보니 휴일에는 하루 6명이 대기를 하게 되었다.
한데 어느 해인가 명절연휴가 길었다. 하루 6명씩 5일 총 30명이 호송업무를 위한 대기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상황실 근무를 서야 한다. 상황실 근무는 2명이 한 조로 운영이 되는데 주간, 야간 나누어서 하루 4명이 근무를 선다. 결국 휴일 호송근무 와 상황실 근무를 위해서 약 50명이 5일의 온전한 휴일을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경찰이 그동안 호송업무를 감당해 주었음에 감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업무 부담이 늘어났다며 푸념했고, 누군가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현실에 불평, 불만을 쏟아냈다. 결국 다음 명절을 위하여 호송 업무를 전담하는 수사관을 뽑기로 했다.
지원자가 있었을까? 아무도 지원자 하지 않았다. 세상의 이치다. 맑고 깨끗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만 본인이 직접쓰레기를 줍겠다는 사람은 없다. 예감했겠지만 필자가 호송업무에 지원했다. 전담 수사관은 3명이었다. 다른 2명은 강제로 충원이 되었다. 둘은 강등(공직사회에서 강등은 높은 징계유형입니다)을 받은 수사관이었다. 그들은 다른 수사관들이 함께 근무하기를 원하지 않아 호송팀에 올 수밖에 없었다. 결과만 말하면 우리 셋은 2년 동안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가장 재미있게 호송 업무를 해냈다. 너무나도 독특한 두 명의 수사관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할 예정이다.
호송 업무를 맡은 지 1년이 지났을 때 새벽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큰일이 났다는 생각을 했다. 근무를 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그 시간에 전화가 걸려 온 적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관할 경찰서의 유치팀장이었다. 내가 호송팀장이었기에 자주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 경찰유치팀장이 검찰호송팀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새벽에 전화가 온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는 유치장에 있는 사람을 교도소로 호송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급한 목소리, 목이 다 잠긴 상태였다. 멘털이 나가고 혼이 빠졌다가 돌아온 사람의 목소리..... 죽다가 살아난 사람의 목소리였다. 야간 호송은 일반적으로 지양한다. 교통사고의 위험 때문이다. 체포시간이 임박한 피의자 같은 경우에 야간 호송을 실시한다.
그렇지만 나는 야간호송을 지양한다느니, 호송대상자가 검찰에서 직접 호송해야 하는 사람이 맞는지 등 규정을 따지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예 알겠습니다"라고만 대답하고 검찰청으로 출근해서 호송차를 몰아 경찰서로 갔다.
호송차를 몰고 경찰서로 가는 동안 상황 파악을 위해 정보원 K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람을 유치장에 넣기 전에는 언제나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미흡했던 것이다. 유치팀은 피의자가 가지고 있던 라이터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라이터를 가지고 유치장에 들어간 피의자가 유치장 안에 있던 이불과 커튼에 불을 질렀다. K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심장이 철렁했다. 폐쇄된 공간인 유치장에서 불이 나면 유독가스로 인해 모두가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관을 포함하여 유치인 10여 명이 질식하여 떼죽음을 당할 위기였던 것이다. 유치장은 밖에서 열어야 한다 밖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경찰관조차도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다행히 유치팀이 불을 지른 피의자를 제압했고, 불도 진압한 모양이었다. 다만, 까맣게 불에 타버린 유치장에 피의자들을 계속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나에게 호송을 요청한 것이다.
경찰서에 도착하니 유치장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모른 척했다. 내게 연락을 취한 유치팀장은 말 그대로 초주검 상태였다.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피의자 몇 명을 검찰 호송차에 태우고 교도소로 향했다. 다행히 그날의 호송은 안전하게 종료되었다. 호송이 완료된 상황을 공유받은 유치팀장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한마디만 했다.
"힘드셨죠? 가장 힘들 때 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무척 위험한 상황을 잘 이겨내 준 것에 관한, 그리고 내가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에 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언론에서는 마치 검찰과 경찰이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현장을 담당하는 우리들은 이렇듯 앞길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내가 유치팀장에게 감사한 이유는 이렇다. 유치팀장이 나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이 글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애써 피하려고 한다. 인사이동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조금 편한 곳으로 가려고 난리가 난다. 너도 나도 승진하기 좋은 자리를 찾는다. 일은 적게 하고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자리..... 누군가의 안배로 자신을 위해 마련된 자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 가장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