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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Aug 14. 2024

어느 검찰수사관의 가장 보람되었던 일

성공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하고 2달 하고 반이 지났다. 방송출연 후 삶의 변화가 있다면 우선 구내식당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 몰래 특이한 반찬을 주신다는 것(^^)과 현재 근무하는 검찰청 근처에 사시는 분이 아내의 인터뷰를 보시고 성경 [시편] 필사본을 주고 가셔서 난생처음 성경 필사를 한다는 것이다. 필사가 이리 어려운 줄이야..... 다른 방송사 두세 곳 출연 섭외가 들어오긴 했지만 본업인 수사관 업무에  영향을 줄 것 같아 고사를 했다.

근처 사시는 분이 두고 가신 성경 [시편] 필사본

[유퀴즈온더블럭]의 섭외를 받고 나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인지 물어볼 것 같아 준비를 했다. 연쇄 살인마 유영철 피해자 가족을 도운 일일까? 아주 유명한 대기업 회장님의 팔짱을 끼고 교도소에 수감한 일일까? 답변을 준비하다가 아주 오래전 원주 귀래면에 있는 '사랑의 집' 장 00 목사를 수사할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해 두었다. 다행인지 기습적인 질문은 없었다.  


다만, 공교롭게도 내가 [유퀴즈온더블럭]을 방송 녹화를 하고 나서 김석훈 님이 녹화를 진행했는데 김석훈 님은 2012년 6월 '궁금한 이야기Y'에서 원주 귀래면 사랑의 집 장 00 목사 사건을 다루었고, 당시 나는 위 사건의 수사팀원이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특정인에 대한 방송을 진행한 사람과 특정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사람이 12년 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장 목사 이야기는 [궁금한 이야기Y]와 [꼬리에 꼬리는 무는 그날 이야기(최근)]에 소개된 바 있다. 24년차 수사관의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방송에서 하지 못한그 뒷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수사가 시작이 되자 ‘사랑의 집’에 남아있던 네 명의 장애인은 전국으로 흩어져 보호기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한 명은 말기 암 환자였다. 그들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정체성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서류상 그들의 존재는 사라진 상태였고, 4명 모두 자신이 누군지 몰랐다. 말 그대로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예를 들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자신이 누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공소가 제기된 이후 진행될 형사재판에서 피해자로서, 나아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제대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수사팀은 이들에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어 주어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살아가게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이름과 주민등록을 부여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그것도 신속하게.....   


주민등록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문을 채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네 명의 장애인들은 전국 각지 보호 시설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나는 그들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문을 채취해야 했다. 지문을 채취할 도구를 챙긴 나는 길고 긴 여정을 떠났다. 쉬이 지문을 채취하여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틀리기를 기대하면서 급히 차를 몰았다.


처음엔 가까운 지역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했지만, 곧 멀리 있는 그들을 찾아 내달려야 했다. 연속된 운전과 쉽지 않은 지문채취로 가히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거의 40시간을 꼬박 운전과 지문채취 업무를 했다. 휴식은 잠시 차 안에서 눈을 붙이는 것으로 갈음했다. 피곤함은 쌓여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사회로부터 버려져 왔던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를 갖게 하고 싶었다.


지문채취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들은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이었다. 지문 채취지의 정확한 위치에 지문을 찍으려는 순간 손이 꼬여서 엉뚱한 곳에 지문이 찍혔다. 열손가락 모두를 찍어야 했다. 가져갔던 수십 장의 지문채취 용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몸과 생각이 따로 노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라 자신도 모르게 막판에 손이 돌아가고 손가락이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지문을 찍는 것보다 울음을 참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겨우 3명의 지문을 채취했다.


마침내 마지막 목적지인 전라남도 광주에 도착했다. 광주에 있는 마지막 장애인의 지문을 채취해야 했는데, 그는 이전에 내가 만난 장애인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장애를 앓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심지어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나아가 손가락도 이리저리 비틀려 있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으려 할 때마다 그의 손은 허공에서 흔들렸고, 간신히 손가락을 맞잡는다고 해도 지문은 이미 닳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지문 채취 종이에 눌러보아도 또렷한 무늬는커녕 제대로 된 흔적조차 남기기 어려웠다. 여러 번의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순간의 감정은 허탈함도 피곤함도 아니었다. 그의 손을 몇 시간 동안 맞잡고 있으면서 나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지문 하나 없이 다 닳아버린 손은 그가 겪은 고통과 학대의 증거였다.  


결국, 나는 광주경찰서의 과학수사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첨단 장비와 숙련된 수사관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지문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문을 채취하면서, 나는 단순한 수사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사무적인 절차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법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인정하는 과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4명에게서 받은 지문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4명의 지문을 모두 받아낸 이후부터는 비교적 쉬웠다. 그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생성하고, 법적 절차에 맞춰 승인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만드는 과정은 40시간을 운전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닌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말기 암 환자였던 여자분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을 보니 내가 손을 잡아 지문을 찍던 분이 맞다. 잇몸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었다. 그분에게 이 세상은 천국이었을까? 아니면 지옥이었을까? 고통스럽게 살던 그날을 기억이나 할까?


내게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런치를 통해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말았다. 이처럼 브런치의 효용은 대단하다. 그리고 난생처음 성경필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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