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5살에 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나이대로라면 90학번이었어야 하지만, 25살에 입학해 95학번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고등학교 수험서와 오 년 동안 씨름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5년 동안 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군대를 다녀와 갑자기 대학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대학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서울에 있는 S 대학을 졸업하는 형의 졸업석에 참석을 하고 나서였다. 특별한 에피소드로 충격을 받은 것도 아닌데 겨울을 보낸 회색깔의 잔디밭 위에서 사각모를 쓰고 사진을 찍는 형을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사각모를 쓰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정리를 하자면 93년 12월 군에서 제대를 하고, 94년 2월 형의 졸업식에 참석을 하고, 94년 3월 수험생활을 시작하여, 95년 봄 대학에 입학을 했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하던 해는 올해 여름날씨만큼이나 더웠다.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제대할 때 지급되는 얼룩무늬 군복바지를 입고 신림동에 있는 학원에 갔다. 군복바지를 입고 학원에 간 것은 군인정신으로 공부를 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그렇게 1년, 난생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봤다.
고등학교시절 내가 아는 영어단어라고는 LOVE가 전부였다. 학력고사 세대였던 내가 수능으로 바뀐 시험에서 S 대학에 갈 정도의 점수를 받은 것은 큰 행운, 아니 충격에 가까웠다. "오 대단한데? 내가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인물이었다니" "나는 수능 체질이었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S 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러 갔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반 친구였던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였다. 황영조 선수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연이어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매일 TV를 장식하고 있었다.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간혹 뉴스를 통하여 그를 볼 때마다 그가 동창이었고,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S대학 접수처에 입학원서를 제출한 나는"이상 없습니다 접수되었습니다"라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한데 접수를 담당하던 직원은 뜬금없이 "강릉명륜고등학교네요. 황영조 선수가 졸업한 고등학교잖아요"라는 말을 했다. 앞서 말했듯 나 역시 황영조 선수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담당자가 입학원서에 적힌 '강릉명륜고등학교'를 알아봐 준 것이 놀랍고도 기뻤다.
나아가 황영조 선수와 동창이었던 인재(?)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기쁘게 "예 맞습니다" 더 나아가 "같은 반이었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입학처 직원은 내 말을 듣더니 조금 딱하다는 인상과 말투로 "하늘과 땅이구만"라고 했다. 상대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가진 혼잣말이었다.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입학처 직원이 '하늘과 땅이구만'이라고 말한 것은 같은 학교를 졸업하였더라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하늘이 된 사람이 있는 반면에 25살에 대학에 들어가 보겠다고 입학원서를 내는 땅 같은 사람도 있다는 조롱 섞인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늦게, 그리고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98년 IMF가 왔기 때문이었다. 입사한 지 3달 지난 선배가 꽤 인지도 있는 회사에서 잘렸다며 과방에 놀러 왔다. 정삭적인 루트를 밟아 대학에 들어와서 취업을 한 선배였다. 그렇다면 나는? IMF상황이 종료된 후 취업상황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내 취직원서 연령란에는 30세가 쓰일 판이었다. 늙다리를 뽑아줄 회사는 없었다. 사기업 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다시 노량진으로 진출(?)하여 검찰 수사관 시험을 준비했다. 1년을 공부해서 2000년 수사관이 되는 시험에 합격했다. 응시 연령제한이 있던 시절 또 막차를 타고 검찰수사관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가 강원도에 있는 검찰청에서 근무할 때 총무계장은 나를 숙소로 초대했다. 토요일 상황실 근무를 서야 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본가로 가는 것을 하루 미루고 숙소에서 머무르고 있던 날이었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술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걸 잘 아는 총무계장이 나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함께 자리에 앉아있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총무계장의 숙소로 들어서자 같은 청에 근무하는 검사가 먼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검사는 S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다.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는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던 그가 술이 들어가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이윽고 검사는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는 S대 법대에 가면 최고로 성공한 것이라 여겼지만, 막상 S 법대에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또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모든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연수원에서 앞을 막고 있는 벽이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검사로 임용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검사로 임용이 된 후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뛰어난 사람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배경이었다. 배경을 가지지 못한 그는 자신이 B급 검사밖에 되지 못하다며 흐느껴 울었다. 물론 다음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청사로 출근했다.
S대 법대에 들어갔을 때의 젊은 그는 분명 모든 걸 헤쳐나가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히 성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 믿음은 검찰청에 들어와 소위 A급으로 분류되는 다른 검사의 뒷배를 보고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에 부서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극복이 되지 않겠냐는 총무계장의 말에 그 검사는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했다. 내가 오랜만에 듣는 문장이었다.
최근 검찰수사관 고위직 인사이동이 있었다. 당연히 화제는 승진이 빠른 수사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수사관(나보다 3달 빨리 들어온)은 나보다 2년이나 늦게 입사한 후배 수사관이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앞으로 5년이나 더 있어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2년 늦은 후배는 액면 그대로 7년을 나보다 앞서가는 상황이었다. 나보다 3개월 빨리 들어온 선배는 올해 시험을 볼것이기에 나보다 5년을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함께 이야기하던 누군가 "하늘과 땅이구만"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30년 전 대학 입학원서를 제출했던 날과 어느 검사가 술에 취해 한탄하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이 세 가지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 내가 가진 경험과 현실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 나 스스로를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으면 누구도 날 칭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황영조 선수처럼 고등학교 때 열심히 살아본 적 없다. 회사에서는 나를 조금 더 나은 자리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얼굴을 비추거나, 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만약 그게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를 만든 이유라면 나는 그 앞에서 겸허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검사조차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반대로 어쩌면 나조차도 누군가에겐 하늘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통념상 최고 엘리트라 여겨지는 검사조차 자신의 처지를 밑바닥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누군가는 모든 것을 막차로라도 해내는 나를 하늘처럼 높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산다.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나의 현재를 평가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과 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하늘에 닿지 못했다고 느낄 때, 그것이 곧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길을 걷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을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