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상황실 근무를 서던 어느 날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점차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곧이어 익숙한 소리와 더불어 빨갛고 파란 불빛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경광등 불빛이 유리창에 비추어졌다. 나는 "도망자 하나가 잡혔구나"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경찰 순찰차가 검찰청 상황실 앞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잡혀온 사람의 상태에 따라 조금 분주해질 것이었다.
누구나 휴일만은 여유롭길 바란다. 하지만 검찰수사관의 휴일 근무는 전혀 한가롭지 못하다. 오히려 더 바쁘다고 하는 편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휴일에 근무하는 수사관은 경찰이 신청하는 온갖 영장신청기록을 검토한 후 검사실과 법원을 오가며 처리해야 한다. 또, 불심검문에 잡혀오는 도망자들을 교도소에 보내야 한다. 게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석방이 되는 사람들이 즉시 석방이 될 수 있도록 경찰을 살펴보아야 한다. 경찰에서 곧바로 석방되지 않으면 불범구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청사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이상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검찰청으로 포크레인을 가지고 돌진을 하는 경우, 칼을 휘두르며 청사에 난입하는 경우도 있으니 가히 검찰청은 영화촬영장을 방불케하는 곳이다. 평소라면 40여명의 수사관과 행정관이 각자 맏은 업무에 따라 일을 할 테지만 휴일에는 많은 일을 상황실 근무자 2명이 처리해야 한다. 초임시절에는 휴일 상황실 근무가 걸리면 일주일 전부터 걱정이 앞서곤 했었다. 24시간 뜬눈으로 밤을 세야 했는데 수당은 5천원이었다.
중형 승용차를 개조한 순찰차가 검찰청으로 오는 목적은 대부분 도망자를 잡아서 태우고 오는 경우다. 그들은 벌금 납부를 회피하고 도망 다니다가 검거된 사람, 재판정에 나가지 않아 판사가 직권으로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 체포되는 사람(현재는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수사관이 직접 한다)이다. 영장 신청을 하기 위하여 검찰청을 방문하는 경찰관은 승합차 개조한 경찰차를 타고 온다. 밖을 보던 나는 생경한 복장을 한 피고인에 눈이 갔다.
그는 장터에서 볼 수 있는 품바 공연에 나올법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틀림없이 장터에서 각설이공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사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촉이라는 것이 발달하여 경찰관이 작성한 검거보고서를 보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검거된 상황을 대충 파악하는 능력이 생긴다. 일상생활에서도 촉이 발달하여 상황판단이 남들보다 조금 빠르다.
나는 장터에서 공연을 하던 중 관객과 다툼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소란에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은 다툼을 벌인 관객과 각설이에 대하여 수배조회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설이가 벌금 미납으로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것이다. 결국 검찰청으로 실려왔을 것이고.... 나는 경찰관이 제출하는 검거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에는 내가 추측한 내용 그대로 적혀있었다. 내 추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각설이를 상대로 검거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확인한 후, 신병을 인수하는 절차를 마무리하고 경찰관을 돌려보냈다. 검찰청 상황실에는 각설이 복장을 한 피고인과 나, 그리고 상황실 보조자만 남았다. 경찰차에서 내릴 때 그의 차림에서 이질감을 느꼈다면, 상황실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는 각설이의 모습에서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는 키가 크고 마른 남자였지만 여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앙증맞은 족두리를 쓰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뽀얗게 분이 발라져 있었는데 그 위로 연지와 곤지가 찍혀있었다. 귓볼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금빛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저고리는 무척 짧아 배꼽이 보였고, 하의는 넓게 펴지는 한복이었는데 그 길이가 짧아서 무릎위에서 끝단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각설이가 내야 할 벌금은 50만 원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5만 원씩 공제를 하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해야 한다. 몸값이 높은 사람은 하루에 몇천만 원을 공제하면서 복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 검거된 사람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벌금을 내던지 교도소에 가던지. 각설이는 벌금을 내지 못한다면 매일 5만 원씩 공제를 하며 10일 동안 복역해야 한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교도소에 가야 한다는 안내를 들은 각설이는, 그가 입고 있는 형형색색의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공연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표정연기가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주섬주섬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치마 속, 저고리 겨드랑이, 고무신 등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하나둘 꺼냈다. 각설이는 천 원짜리를 하나둘씩 찾아내어 상황실 바닥에 던졌다. 상황실 보조자는 바닥에 떨어진 돈을 모아 헤아렸다. 46만 2,500원이었다. 말 그대로 각설이의 온몸을 탈탈 털어 나온 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3만 7천500원이 모자랐다. 그 액수를 채우지 못하면 일단 교도소에 들어가 하루를 보내고 밤 12시 1분에 석방이 될 것이다. 상황실 보조자는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각설이에게 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설이는 돈이 더 없다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각설이의 최종진술을 들은 상황실 보조자는 각설이를 교도소로 호송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잠깐만"
순간 나는 잠깐만이라고 외쳤다. 상황실 보조자를 말린 것은 피고인이 아니라 나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나는 지갑을 열어 오만 원짜리를 꺼내어 상황실 보조자에게 주었다.
"모자란 돈은 이걸로 하고 석방하자"
나는 각설이가 납부해야 할 벌금 50만 원 가운데 3만7,500원을 대납해 주었다. 각설이의 처연한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도 아니고, 상황실에서 함께 보낸 그 짧은 시간 사이 각설이에게 정이든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러했다. 모자랐던 벌금 3만 7천500원은 각설이가 지금 공연장으로 돌아가 공연을 하면 충분히 벌고도 남을 액수라고 생각했다(옷속에서 나온 돈을 보았을 때).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는 그에게 모자라는 3만 7천500원을 채우라며 교도소로 보내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를 호송하기 위해서는 총 3명의 인원이 휴일날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를 교도소로 데려갈 3명의 호송반에게 돌아갈 보수는 어림잡아도 10만 원이 넘을 것이다. 전부 국고에서 나오는 돈이다. 물론 직업적으로 나는 법을 집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법은 엄격하고 공정해야 하며,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각설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아내는 잘한 일이라며 나를 띄워주었다. 동료 수사관 중에는 내 의견과 다른 사람도 있다. 그들은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 사비를 들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두 의견 모두 맞다. 법과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재량인 것이다.
여러해 동안 추적을 하여 간신히 검거한 피고인을 교도소에 보내야 하는 망설일 여지가 전혀 없는 형 집행을 한 후에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도 인간적인 배려, 즉 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법의 본질을 훼손하는 말이 될 수 있을 것이지만......
아... 마.... 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잠깐 어린 시절 단오날을 떠올렸던 것 같다. 단오기간 나는 단오가 열리는 장터를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볼것이 그리 많지 않던 당시 단오장에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던 각설이패가 여럿 공연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