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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Jul 12. 2024

어느 택시기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다. 특히 특수사건을 담당하는 수사관의 일상은 누구보다도 바쁘고 고되다. 반복되는 압수수색, 계좌추적, 조서작성은 가히 철인 3종 경기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까닭으로 수사관들에게는 밤 10시가 넘으면 사용이 가능한 택시 카드가 지급된다.


대중교통이 없는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기진맥진 진이 빠진 수사관이 사비로 택시를 타는 것을 지켜본 관리자들이 만들어준 제도이다. 오호 그렇게 좋은 물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택시카드의 사용방법과 절차는 철저하게 관리된다.


어찌 보면 퇴근 후 집까지 편하게 택시를 타고 가라는 배려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택시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시간까지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수사관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서글픔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차후 수사관이 한 해에 얼마나 과로에 죽어나가는지에 대한 글을 올릴 테지만 검찰수사관은 쉬운 직업이 아니다.   


나 역시 거의 1년 가까이 특수 사건의 주임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택시 카드를 지급받아 새벽퇴근을 이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찾아내어 이제는 대기업 오너들이 비자금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대기업 오너들이 조성하는 비자금에 대하여 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나는 살인죄보다 더 엄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현찰로 마련된 비자금은 나라를 좀먹는 고위공직자에게 들어간다. 결국 뇌물을 받아먹은 그들은 나라에 큰 해가 되는 결정을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당시 나는 매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도 밤늦은 시간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는 수십 대의 택시가 늘어서 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진풍경이지만, 피로와 스트레스에 찌들어 검찰청 현관을 나오는 수사관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다.


나는 그날도 택시를 호출하고 현관으로 나가 내가 부른 택시의 번호를 찾았다. 택시에 타자마자 머리를 뒤로 기댔다. 바로 그때 택시 기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당시 수 많은 압수수색에 참여한 내 모습이 자주 뉴스에 나오곤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장난 삼아 처벌받아야 하는 대기업 오너보다 네가 더 유명하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택시기사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라 생각했다.


“수사관님 안녕하세요, 수사관님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제가 수사관님을 세 번째 모셔다 드리는 겁니다. 문래동 가시죠?”

"아 그러세요? 문래동 맞습니다"


한데 tv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택시기사의 택시를 세 번째 타는 것이라는 안내였다. 나는 고개를 세우고 백미러를 통하여 기사와 눈을 맞췄다.


올림픽대로에 택시를 올린 기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조금 전 인천공항에서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시청 앞 호텔에 내려준 후, 곧바로 검찰청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것도 과속을 하면서 말이다. 그는 검찰수사관을 태우기 위해 달려왔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자신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늦게까지 일하는 수사관을 안전하게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매일 그런 일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검찰청 콜이 시작되는 10시가 되면 서둘러 검찰청 콜을 대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는 그의 말에 가슴이 떨렸다. 지금 생각하면 울컥 했던 것 같다.


기사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군가의 배려로 지난 1년 편안하게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내게 말을 걸어준 택시기사 뿐만 아니라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내가 탔던 다른 택시기사도 어느정도 검찰수사관의 노고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사실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일이 힘들 때, 이런 일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 것이며 내게 뭐가 남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을 참 자주 했었다. 그런 부정적 생각이 택시 기사의 선한 영향력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몇 분이었다.


사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수사관으로서의 내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택시 기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내 자세는 완전히 경청 상태로 바뀌었다. 택시 기사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수사관님 택시기사를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맞아요 택시 기사는 부자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 내 위치에서 내가 할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택시 기사로 한 달에 버는 돈이 25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처음 택시 기사를 시작했을 때, 1년 동안 열심히 일한 후 퇴직금을 받아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만 하려던 택시 기사 일이 어느덧 30년 차라는 것이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아 정상 가족을 꾸려 살아가게 되었단다.


딱 1년만 하고 때려치우려고 했던 택시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받았다. 수사관을 하면 큰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가치들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지 실감했다. 택시 기사는 자신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늦게까지 일하는 수사관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작은 노력이 모여 우리의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삶을 살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주제 같다. 돈, 명예, 권력이 다른 사람을 향해 발사되는 총이 아닌지, 이런 것들이 나의 목표가 되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내가 만난 택시 기사의 말을 떠올려 보았으면 싶다. 택시 기사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공무원, 그중에 수사관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 부자가 아니라도 혹은 권력자가 아니라도 이 세상이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진정한 보람은 그런 것에서부터 오는 것 같다. 내가 수사관으로서 느끼는 보람도 이와 같다.


결국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달려 있다. 수사관으로서 내 사명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택시 기사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가는 것에서 자신의 사명을 찾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야말로 우리의 사회가, 그리고 나 자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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