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문을 열고 엉거주춤 상체만 뺀 채로 그 자리에 굳었다.
“왜 그래?”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지금 막 뭔가가 생각났습니다.”
“그럼 빨리 다시 앉아!”
“네.”
나는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설명해 봐.”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 여자와 치와와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아! 죄송합니다. 저한테 말을 걸어온 사람 셋이 있었습니다. 전 대화 중이었는데, 파티장 안쪽에서 허둥지둥 나오는 누군가를 봤습니다. 아니, 봤다는 표현보다는 그걸 제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차림새는? 생긴 건 어땠지?”
“잠깐만요.”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 사람 이미지가 점점 선명하게 떠올랐다.
“파티 참석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 셔츠에 검은색 바지와 조끼를 입었어요. 그렇다는 건…….”
“호텔 직원이군!”
“네! 맞습니다.”
“좋아. 직접 가서 보면 얼굴 알아볼 수 있겠지?”
장춘자 계장이 다시 물었다.
“네. 확실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장춘자 계장은 거기서 바로 호텔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우리 기대처럼 사건이 금세 해결되지는 않았다.
“어쩌죠? 그날 파티는 꽤 규모가 커서 전부 아르바이트생을 썼거든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 모두 사진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그날 하루만 일했던 거라.”
호텔 지배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준 중간 업체가 있을 거 아닙니까? 거기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장춘자 계장의 말에 지배인은 바로 반응했다.
“아! 그거라면 있습니다. 이런 행사 있을 때마다 거래하는 곳이거든요.”
잠시 후 지배인은 명함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명함에는 ‘우수인력’이라 적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명함을 받아 든 우리는 호텔에서 나왔다.
“전화를 해 보실 겁니까, 아니면 찾아가 보실 겁니까?”
내가 물었다.
“찾아가야지. 수사관은 발로 뛰는 족속이니까.”
“적극 공감합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안전띠를 맸다.
장춘자 계장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 솜씨 덕분에 1시간 거리를 20분이나 단축해서 도착했다.
그 40분 동안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우수인력 사무실은 수유에 있었다.
허름한 상가 건물 3층 전체를 쓰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주차를 하자마자 3층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로 오셨죠?”
넓은 사무실에는 직원이 한 명밖에 없었다. 여자였다.
“저희는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장춘자 계장이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검찰에서 나왔다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딱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표정은 굳는다.
오히려 나쁜 놈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거, 검찰에서 왜요?”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혹시 여기에서 모집한 아르바이트생들 연락처를 보관하고 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그럼요. 다 보관합니다. 근데 무슨 일로…….”
“며칠 전 호텔 파티 행사에 지원 나갔던 아르바이트생들 연락처가 다 필요합니다.”
“보여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이게 개인정보라 무슨 이유인지 말씀해 주시면…….”
맞는 말이었다. 여자는 긴장한 상황에서도 매뉴얼 대로 잘 행동하고 있었다.
사실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보여달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여자를 잘 설득할까 고민했다.
그때였다.
“그중에 살인자가 있거든요.”
장춘자 계장이 대뜸 그렇게 말했다.
“네? 사, 살인자요?”
여자 목소리가 아까에 비해 몇 배는 더 떨렸다.
“네. 연락처를 보여주시지 않으면 그 살인자가 다른 범행을 저질렀을 때…….”
“보여드릴게요! 보여드린다고요!”
여자는 대번에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장춘자 계장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건 뭐 대놓고 협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런 협박이 워낙에 잘 먹히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금방 프린트한 따끈따끈한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주소까지 적혀 있었다.
장춘자 계장은 그걸 확인하다가 여자에게 다시 물었다.
“이 중에서 내부 서빙을 담당한 사람만 가려낼 수 있습니까?”
“네. 있어요. 보통 그런 행사에서 내부 담당은 유경험자에게 맡기거든요. 거기 이름 옆에 체크로 표시된 사람이 내부 담당이었어요.”
표시가 된 사람은 딱 열 명이었다.
열 명 중에 범인이 있다는 뜻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게요. 이 열 명 중에 연락 안 되는 친구는 없습니까?”
“이, 있어요. 딱 한 명. 세 번째 줄에 이수현이라고 있을 거예요. 그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아 지금 아르바이트비를 못 넣고 있어요.”
“이상한 일이네요.”
장춘자 계장이 중얼거렸다.
“네. 이상한 일이죠. 절차상 통화로 꼭 알바비 지급받을 은행을 물어봐야 하는데 전화가 아예 안 되니…….”
“알겠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장춘자 계장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도 따라서 숙인 뒤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냄새가 나지?”
장춘자 계장이 내게 물었다.
“그러네요. 한 번 찾아가 보실 거죠?”
“물론이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이동했다.
이수현의 집도 역시 수유에 있었다.
유흥가를 지나서 신축 빌라가 늘어선 구역에 이수현은 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룸인 것 같았다.
SUV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 골목 아래 차를 세우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이수현이 범인일까요?”
“자네가 직접 확인해 주면 되지.”
“만약 집에 없으면요? 이미 거액을 받고 떴을 수도 있잖아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이수현의 원룸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모자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나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며 한기가 일었다.
그놈이었다!
매서운 눈매를 가진 그 인간.
“저기요.”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그를 불러 세웠다.
“왜 그래?”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계장님. 빨리 가보세요. 이수현 아마 무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장춘자 계장은 바로 눈치챘다.
“조심해!”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달려 올라갔다.
그제야 모자 쓴 남자가 내게로 몸을 돌렸다.
확실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눈빛을 가진 놈!
“너지? 너 정체가 뭐야?”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에 놈은 씩 웃었다.
그러고는 품에서 손잡이를 짧게 자른 회칼을 꺼내 들었다.
“명줄이 질기다 싶었는데 여기서 끝나겠군.”
놈이 말했다.
잔뜩 쉰,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왜 날 노리는 거지?”
내가 물었다.
“원래 너 같은 건 목표물도 아니었어. 착각하지 마. 저 능구렁이랑 붙어먹으니까 목표물이 된 거지.”
저 능구렁이는 아마 장춘자 계장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놈은 우리 둘 모두에게 용건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 사주를 받았지?”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아?”
“혹시나 해서.”
“여기서 죽어.”
놈은 그 말과 함께 내게로 달려 올라왔다.
간결하고 재빠른 몸동작이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주먹에 꼈다.
놈이 칼을 휘둘렀다.
첫 번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놈은 생각보다 팔이 길었고, 그 탓에 좀처럼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내가 배운 기술은 모두 근접했을 때 빛을 발하는 것들이었다.
놈이 다시 칼을 휘둘렀다.
한 번, 한 번이 다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확실하게 급소만 노리는 공격.
나는 그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그렇게 도망치다간 코너에 몰린다고. 크크.”
놈이 말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나는 어느새 벽을 등지고 있었다.
더는 도망갈 공간이 없었다.
“죽어!”
놈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내가 수갑을 던졌다.
말했던가?
완전기억력 덕분에 투구폼 역시 완벽히 흉내 낼 수 있다고.
그리고 무언갈 던지는 건 자세만 비슷하다면 꽤 위력적인 효과를 낸다고.
빠르게 날아간 수갑은 놈의 얼굴을 때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윽!”
놈이 얼굴을 감싸 쥐며 몸을 웅크렸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점프를 해 놈을 걷어찼다.
나보다 체구가 작은놈은 그 한 번의 공격에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면서 회칼도 떨어뜨렸다.
바닥에 뒹구는 회칼을 저 멀리 차버린 후 놈에게 다가갔다.
“순순히 손을 내밀면…….”
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예상했다.
놈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달려들어 멱살을 쥐었다.
그러고는 냅다 업어치기를 했다.
물론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마지막에는 힘을 좀 뺐다.
쿵!
그럼에도 놈은 충분히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놈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말해. 너 정체가 뭐고, 목적이 뭐야?”
“블랙.”
“뭐?”
“사람들은 날 블랙이라 부르지. 크크.”
블랙은 서늘하게 웃었다.
그 순간 섬뜩한 기운이 날아들었고, 나는 뒤로 성큼 물러났다.
“아!”
충분히 거리를 뒀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블랙이 빨랐다.
블랙은 어디서 꺼냈는지 단도를 들고 있었고, 그 칼이 스치고 지나간 내 배에서는 피가 스며 나왔다.
“사실 난 이게 더 편하거든.”
블랙은 그렇게 말하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왔다.
나는 피하려고 하다가 발이 엉키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블랙 역시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놈이 단도를 내리꽂았다.
나는 피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내 앞을 장춘자 계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의 단도가 장춘자 계장의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
“계장님!”
놀란 내가 소리친 것과 장춘자 계장이 오른손 주먹으로 블랙의 턱을 날려버린 건 거의 동시였다.
블랙은 저만치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용케 정신을 잃지 않고 비틀거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장춘자 계장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보여? 빨리 119 불러!”
장춘자 계장은 소리를 질렀다. 적어도 그 정도 힘은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신고한 후 장춘자 계장에게 다가갔다.
그 사이 장춘자 계장은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막고 있었다.
“줘봐요. 제가 누를게요.”
내가 말하며 손수건을 받았다.
“아프니까 살살해!”
“알았어요. 그런데 이수현은요?”
내가 묻자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어.”
“골치 아프게 됐네요.”
“난 골치도 아프고 손도 아프다!”
장춘자 계장의 외침을 듣기라도 했는지 멀리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놈은 전문 킬러예요. 자길 블랙이라고 했어요.”
“블랙?”
장춘자 계장의 표정이 변했다.
“아는 놈입니까?”
“알지. 이름으로만 들었는데 직접 마주친 건 처음이야. 놈의 다른 별명이 뭔지 알아?”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뭡니까?”
“검찰 수사관 연쇄살인마.”
“네?”
굳은 표정의 장춘자 계장을 보며 나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