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그대로였다.
최 비서가 들어온 것과 거의 동시에 남녀 두 명 역시 우정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두 명 사이가 매우 어색하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연인이라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졌고, 그냥 아는 사이라기에는 어설프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 비서가 인사를 하자마자 장춘자 계장이 벌떡 일어났다.
“나갑시다.”
“어, 어딜?”
“잔말 말고 따라 나와요.”
나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러자 방금 자리에 앉았던 그 남녀 두 명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허둥지둥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장춘자 계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저 분들께 잘 말씀드리고 와.”
“네.”
나는 대답과 동시에 두 사람 쪽으로 다가갔다.
뒤에서 장춘자 계장이 최 비서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뭐 해요? 다시 앉으시지 않고.”
“아, 아니 무슨…….”
당황한 최 비서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엉거주춤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가시려고 일어난 거죠?”
“네?”
남자가 되물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일어나신 김에 그대로 쭉 나가시면 되겠네요.”
내가 말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가시려던 데 가시라고요.”
남자와 여자를 차례대로 노려봤다.
둘은 프로가 아니었다.
아마 비서실 직원 가운데 두 사람을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그 결과 내가 조금만 인상을 쓰자 둘 다 겁먹은 표정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나는 문까지 닫히는 걸 보고 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최 비서를 마주 본 채로 장춘자 계장 옆에 앉았다.
“두, 두 사람 다 누굽니까?”
최 비서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런 짓을 한 사람치고는 소심하군요.”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그런 짓이라니요?”
“두 건의 살인 교사를 말하는 겁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증거도 없이 불러냈을까요? 일단 죽은 이수현 씨 핸드폰 속에 당신 번호가 있다는 것부터 증거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나와서 벌벌 떨고 있는 것 역시.”
“원하는 게 뭐요?”
최 비서는 포기가 빨랐다.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우리가 누군지는 안 궁금합니까?”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그러자 최 비서는 새삼스레 우리 두 사람을 쓱 훑어봤다.
“궁금하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최 비서는 목소리가 주는 인상과는 조금 달랐다.
어딘지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지금쯤 장춘자 계장은 속으로 좋은 먹잇감을 물었다고 쾌재를 부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우리는 검찰 수사관입니다.”
장춘자 계장의 말에 최 비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찰 수사관이 왜…….”
“당신이 사주해서 죽인 그 비서실 직원이 내 정보원이었어.”
장춘자 계장이 분노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최 비서 얼굴이 대번에 하얗게 질렸다.
“저, 저는 그런 줄 몰랐습니다.”
“그런 줄 몰랐다는 건 무슨 의미야?”
“그게…… 그 친구가 회사 정보를 빼돌리고 있는 줄로만 알고…….”
“형우그룹에서는 사내 정보를 빼돌리면 바로 죽이는 건가? 응?”
최 비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망설이는 것 같으면서도 입은 열지 않았다.
그런 최 비서에게 장춘자 계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윗선의 지시를 받았나?”
이번에도 묵묵부답.
“살인 교사 두 건이 인정되면 적어도 20년은 감방에서 썩어야 할 거야.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그 잘난 회사는 당신이 잡혀들어가자마자 손절할 거고. 그래도 의리를 지킬 건가?”
최 비서는 불안한 눈빛으로 장춘자 계장을 봤다.
장춘자 계장은 기다렸다는 듯 결정타를 날렸다.
“최진수 씨.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하나 있지? 그 아들에게 전과자 아빠가 생기는 게 어떤 의미일 것 같나?”
“그만! 그만 하세요. 뭘 원하시는 겁니까? 다 말하고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최 비서는 끝내 무너졌다.
그런 그를 향해 장춘자 계장이 조용히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해 보시죠.”
“그룹의 내밀한 정보가 유출된다는 정보를 얻은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최 비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위에서부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한 대리가 정보를 빼돌리는 인물이니 적절히 조치하라고.”
“적절한 조치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봤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질문했다.
“네. 그러자 제거하라는 뜻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그걸 지시한 사람은 누굽니까?”
차마 그 이름만은 말하기 어려운지 최 비서는 다시 망설였다.
“한 번 더 묻습니다. 그걸 지시한 사람이 누굽니까?”
“그게…… 이방선 부회장입니다.”
이방선 부회장.
나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이방선은 노회한 아버지 대신에 형우그룹을 이끄는 실세였다.
올해 안으로 아버지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방선이 공식적으로 형우그룹을 물려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또 하나, 그는 재계의 싸움꾼으로 통했다.
워낙에 공격적인 사업 전략을 구사하는 건 물론이고, 실제로도 꽤 거친 언행을 일삼아 종종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바로 그런 자 입에서 살해 교사 지시가 내려왔다.
최 비서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지시였으리라.
“증거는 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없습니다. 사내 전화로 지시를 받았고, 그건 녹음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제가 남긴 기록은 있습니다. 지시를 받을 때마다 전 메모를 꼭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그 기록,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잘 숨겨두세요. 그러고 오늘 우릴 만난 거, 이방선 부회장에게 다 보고하세요.”
“네? 계, 계장님?”
나는 놀라서 장춘자 계장을 돌아봤다.
당황한 건 최 비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숨기는 게 아니고 보고하라고요?”
“네. 그래야 당신이 삽니다. 개죽음당할 순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최 비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방선은 최 비서가 꼬리를 잡힌 것부터 문제 삼을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목숨도 목숨이지만 당장에 쫓겨나지 않을까 그걸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당신이 블랙이라는 자에게 직접 지시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다시 물었다.
“블랙이 누굽니까?”
최 비서가 되물었다.
“당신이 이수현 살해를 의뢰한 사람. 누군지도 모르고 의뢰한 겁니까?”
“저는 단지 위에서 주는 번호를 가지고 연락했을 뿐입니다.”
“음…… 자칫 잘못 행동하면 블랙이 이번에는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 그건 안 됩니다. 제발 막아주세요!”
최 비서는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방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어떻게요?”
“검찰 수사관에게 정보원으로 일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하지만 반대로 검찰 쪽 정보를 빼내서 보고하겠다고.”
“그 정도로는 이방선 부회장이 믿지 않을 텐데요.”
최 비서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걸 가져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장춘자 계장이 내민 것은 명함이었다. 내게도 건넸던 바로 그 명함.
“계장님. 이렇게 쉽게 정보를 노출해도 괜찮을까요?”
보다 못해 내가 물었다.
장춘자 계장은 전에 없던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게 불안했다.
“이방선 그 양반, 이 정도는 가지고 가야 믿을 거야.”
장춘자 계장이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럼 저는 앞으로 뭘 하면 됩니까?”
최 비서가 물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내 정보원이 되는 겁니다. 영화에서 많이 봤죠? 이중 첩자라고.”
“하지만 들키기라도 하면…….”
“내가 제안한 걸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한 선택일 겁니다.”
최 비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집을 부릴 만큼 미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죠.”
장춘자 계장은 ‘부탁’이라는 단어에 힘을 줬다.
그게 곧 상대방에게는 강요로 들린다는 걸 잘 아는 듯했다.
“뭡니까?”
“죽은 그 직원 가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세요. 그건 그쪽 권한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테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 비서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문으로 향하는 최 비서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우리 계획대로 움직여 줄까요?”
“그럴 거야. 우리 앞에선 어수룩한 척 연기해도 머리는 아주 비상하게 굴릴 줄 아는 인간일 테니까. 형우그룹 비서실엔 아무나 못 들어가거든.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저울질했을 거고, 결국 내 제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야.”
장춘자 계장은 장담하듯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했다.
그야말로 길고 긴 하루였다.
그만큼 피곤했고, 그만큼 삭신이 쑤셨으며, 그만큼 두렵기도 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걸쇠까지 채운 뒤에야 나는 한숨 돌렸다.
누군가가 침입한 후로 나는 매일 비밀번호를 바꿨다.
자물쇠도 두 개나 더 달았다.
내가 그 사실을 보고하자 장춘자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범정 수사관다워졌네. 앞으론 그런 게 일상이 될 거야.”
수시로 주위를 살피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삶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다만 킬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리라는 건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러고 보니 블랙이 왜 검찰 수사관 연쇄살인마라고 불리는지 아직 그 이유를 몰랐다.
장춘자 계장은 왠지 그 주제를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신에 그는 헤어지기 전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며 내게 말했다.
꽤 진지한 표정으로.
“당분간은 형우그룹을 집중적으로 팔 거야. 아무래도 그쪽이 그림자 조직과 연관 있는 것 같거든. 그러니 몸조심해.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해.”
범정은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어서까지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 수사관은 그 선을 잘 지키지만 장춘자 계장은 아니다.
그는 아무리 경고음이 울려도 절대 차선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설령 충돌하는 한이 있더라도…….
장춘자 계장은 무서운 게 없는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움직이게 하는 걸까?
나는 장춘자 계장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가족 없이 혼자 산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의 신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일부러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장춘자 계장 역시 시시콜콜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충동적으로 장춘자 계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계장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이런 일 하는 거.
답장은 거의 바로 날아왔다.
- 자넨 무섭나?
- 솔직히 조금은요.
- 지극히 정상이니까 걱정하지 마. 무서워해야 자기를 지킬 수 있거든.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 계장님은 자기 말고 지키고 싶은 사람 없습니까?
이번에는 한참 후에 답장이 왔다.
- 죽은 자는 말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