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만났다.
장춘자 계장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와야 하니 내게도 늦게 출근하라고 지시한 덕분이었다.
나는 모처럼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보내다가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장춘자 계장은 사람 많고 시끄러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만나는 걸 선호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곳일수록 엿듣기도 힘들고, 엿보기도 힘들거든.”
언제나 꼬리가 붙는 걸 조심하는 장춘자 계장에게는 최선의 선택인 셈이었다.
물론 내게도 그랬다.
이제 우리는 파트너니까.
장춘자 계장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나며 엄살 섞인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휴. 상처 치료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하마터면 치료받다가 기절할 뻔했다니까.”
“오늘은 뭘 하면 됩니까?”
나는 착실한 학생처럼 물었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이 핸드폰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누군지 알아보겠지?”
핸드폰에는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는데, 그 인물이 누군지 나는 바로 알아챘다.
“블랙이군요!”
“맞아. 아직 착했을 때의 모습이지.”
“착했을 때라면?”
“놈이 왜 블랙으로 불리는지 궁금하지?”
“그냥 바로 말해주시면 안 됩니까?”
“아니지. 값진 정보를 그렇게 쉽게 줄 순 없지.”
“하아. 네. 궁금합니다. 그러니 제발 알려주세요!”
나는 장난삼아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은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아무래도 유치한 구석이 있는 양반이었다.
“그렇게 사정하니 내가 특별히 자네한테만 말해주지. 블랙은 말이야…….”
장춘자 계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랬다.
블랙의 본명은 전현석.
그가 블랙이라 불리는 이유는 전직 국정원 블랙 요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블랙은 국내의 민감한 정보를 빼돌려 다른 나라에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국정원 요원이라는 특성상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받았고, 결국 실형까지 선고됐는데 블랙은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그때부터 여러 검찰 수사관이 블랙을 잡기 위해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중 셋이 블랙의 손에 의해 죽었다.
그때부터 놈에게 검찰 수사관 연쇄살인마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범정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현재 블랙은 프리랜서 킬러로 활동 중이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 킬러이지 살인청부업자로 먹고사는 셈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장춘자 계장은 자기 의견이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블랙 역시 그림자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을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이수현을 포함해 근래 몇 년 사이 형우그룹과 관련한 수상한 죽음이 몇 건 더 있었어. 그게 블랙의 짓이라는 데 멀쩡한 나머지 손 하나도 걸 수 있지.”
“그러니까, 형우그룹이 그림자 조직과 관련 있으니 블랙 역시 그쪽 소속일 거라는 말씀이죠?”
“맞아. 거기에 더해 난 이런 생각도 해. 블랙은 국정원 요원 시절부터 이미 그림자 조직의 하수인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렇다면 그 조직이 국정원까지 손을 뻗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말했잖아. 그림자 조직은 어디에나 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그러면 혹시 검찰 쪽에도…….”
“당연하지. 내가 지금껏 혼자 움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조직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직까진 정확히 모른다.
장춘자 계장이 대통령 비서실장과 손을 잡고 그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확실히 모른다.
그럼에도 그림자 조직이 매우 위험하고 해악이 되는 존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놈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짓만 봐도 얼마나 악랄한 지 설명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림자 조직의 실체를 모른다는 데 있었다.
모든 걸 다 아는 것만 같은 장춘자 계장도 그걸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가 물었다.
“블랙 뒤를 쫓아보려고.”
“무슨 방법으로…….”
“어젯밤 늦게 최 비서한테 블랙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전화번호를 받았어.”
“아! 그러면 통신 영장을 신청해서 그 번호 발신지로 가보자는 거죠?”
장춘자 계장은 내 물음에 씩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영장 나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내 방법을 써야지. 따라 와. 아니, 자네가 운전해.”
나는 장춘자 계장이 불러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그걸 따라 달렸다.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용산으로 인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산 전자상가였다.
우리는 거의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여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가 봐요?”
장춘자 계장을 따라 전자상가 안으로 들어가며 내가 물었다.
“이제 여기 직접 와서 컴퓨터니, 뭐니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 대신에 온라인으로 판매하니까 이곳 매장은 창고처럼 쓰는 경우가 많아. 나름의 존재 이유를 찾은 셈이지.”
장춘자 계장은 역시 모르는 게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린 왜 여기에 온 겁니까?”
“안테나를 만나러.”
“네?”
안테나가 누군지는 곧 알게 되었다.
그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비대한 몸집의 남자였다.
이미 상당히 탈모가 진행된 머리에는 알루미늄 포일을 구겨 만든 것 같은 삼각형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안테나가 앉아 있는 곳에는 ‘정밀 전파사’라는 작은 간판이 달렸는데 요즘 시대에 전파사가 웬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안테나는 우리가 들어가도 눈길 한번 안 주고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손님 대접이 형편없었다.
“어이. 안테나.”
그는 장춘자 계장이 크게 부르고 나서야 우리 쪽으로 슬쩍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오셨어요.”
“왜 그렇게 저기압이야?”
장춘자 계장이 묻자, 안테나는 한숨부터 푹 쉬었다.
“오늘 또 팀원 중 한 명이 탈퇴했어요. 배신했다고요!”
안테나는 버티는 게 용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계속 투덜거렸다.
“비겁하다니까, 하여튼. 힘을 모아서 같이 투쟁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궁금함을 참다못해 장춘자 계장에게 조용히 물었다.
“뭐 하는 분입니까?”
“안테나는…….”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파 공격 반대 모임의 회장 안테나라고 합니다.”
안테나가 느닷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여전히 앉아서.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검찰 수사관 신기탄이라고 합니다.”
“수사관님은 최근에 부쩍 두통에 시달리거나 한 적 없나요?”
안테나가 물었다.
“저는…… 그러고 보니 잠을 잘못 자서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그게 다 정부의 전파 공격 때문입니다!”
“네?”
다짜고짜 소리를 높이는 안테나를 향해 나는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전파 공격이니 뭐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너무나 진지한 안테나의 태도에 압도되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도와달라는 의미로 장춘자 계장을 쳐다봤지만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고만 있었다.
“전파 공격을 막으려면 현재로선 이 모자를 쓰는 방법뿐입니다. 이게 전파를 막어주거든요.”
안테나는 자기가 머리에 쓰고 있는 괴상한 알루미늄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테나는 비난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흥. 역시 정부 쪽 사람이라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자, 됐어. 우리 걱정은 그만하고, 이거나 한번 알아봐 줘.”
드디어 장춘자 계장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안테나가 장춘자 계장을 보며 물었다.
“뭔데요?”
“번호를 하나 따왔는데 위치추적 좀 부탁해.”
장춘자 계장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건 명백한 불법이었다.
“계장님!”
장춘자 계장은 내가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안테나를 향해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내밀었다.
“핸드폰이 켜져 있으면 지금 위치를, 아니면 마지막에 잡힌 위치를 찾아봐 줘.”
“알겠어요.”
안테나는 익숙한 일인 듯 군말 없이 메모지를 받았다.
“계장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영장도 없이 이러는 걸 위에서 알면 큰일 나잖습니까!”
나는 장춘자 계장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저쪽에선 온갖 불법이란 불법은 다 저지르면서 다니는데 우린 절차 따지고, 원칙 따지고 하니까 매번 놓치는 거야. 알겠어?”
장춘자 계장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지금껏 장춘자 계장과 일해 오면서 그가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며 수사하고 정보를 모은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이미 적응도 했다.
다만 이번 건은 좀 달랐다.
이런 식으로 수사하면 설령 블랙을 잡았다 한들 법적으로 문제 될 게 뻔했다.
게다가 안테나라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 인간에게 이런 일을 맡긴다는 것도 불안했다.
알루미늄 포일로 만든 삼각형 모자를 쓴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거대한 몸집의 남자를 보고 있다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 안테나는 이쪽 분야에서 최고니까.”
장춘자 계장은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말했다.
“저는 해커예요, 화이트 해커.”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안테나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처음엔 여기저기 안 가리고 해킹을 해대서 골치 아팠는데 날 만난 후로 개과천선했지. 하하.”
장춘자 계장과 안테나의 인연은 꽤 깊은 것 같았다.
“전 마음 먹으면 펜타콘도 털 수 있어요. 국정원도 제 손바닥 안이죠. 그래서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전파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놈의 전파 무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새삼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벽에는 온갖 포스터와 문구가 붙어 있었다.
UFO는 존재한다, 전파 공격 OUT, 정부는 외계인과의 교신 내용을 공개하라, 우리는 감시 받고 있다…….
“끝났어요.”
안테나가 말했다.
그야말로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놀라서 바라보는 사이 안테나는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 장춘자 계장에게 건넸다.
“좋아. 수고했어.”
장춘자 계장의 말에 안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은 방금 켜졌어요. 그래서 더 찾기 쉬웠어요.”
“알았어. 사례는 늘 하던 대로 하지.”
“네.”
안테나는 짧게 대답한 후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볼일이 끝났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건 장춘자 계장도 마찬가지인 듯 인사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사례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물었다.
“전파 공격 반대 모임 후원 계좌에 내가 돈을 넣어줘. 이러면 절대 꼬리 잡힐 일은 없지.”
“나름 용의주도하네요.”
“안테나는 천재라니까.”
“근데 왜 뜬금없는 소리를…….”
“천재의 생각을 우리 같은 범인이 어떻게 알겠어? 안테나는 전파 공격 말고도 온갖 음모론을 다 믿거든. 물론 그중에는 진실인 것도 있지.”
“그림자 조직처럼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지. 평범한 사람은 음지에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있다면 음모론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림자 조직은 버젓이 존재하거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게 언제부터입니까?”
“그건 차차 설명해 줄 테니 지금은 여기로 가자고.”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하며 안테나가 준 메모지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상세한 주소는 물론이고 몇 호인지까지 다 적혀 있었다.
“와! 대단하기는 하네요.”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러면서 안테나와의 만남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