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맹수의 소굴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안테나가 가르쳐 준 곳은 신당동에 있는 낡은 다세대주택이었다.

그곳 101호가 블랙의 핸드폰이 켜진 장소였다.

“보니까 101호는 지하 같은데요?”

나는 건물 외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창문도 없는 완전한 지하인가 봐.”

장춘자 계장 역시 건물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말했다.

“블랙이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면 지원 요청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지만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저었다.

“일 크게 만들 필요없어. 우리 둘이면 충분해.”

“하지만 블랙은 전직 국정원 요원인 데다가 전문 킬러고…….”

“걱정하지 마. 오늘은 아이템을 준비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장춘자 계장이 품에서 꺼낸 건 테이저건이었다.

“아니, 그런 건 또 어디서 났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못 구하는 물건이 없다니까.”

분명했다.

저 테이저건 역시 불법적인 방법으로 얻었다.

이제는 척하면 척이었다.

나는 군소리 하지 않고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무기가 있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101호는 내 예상대로 지하에 있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에는 딱 그 집 하나뿐이었다.

창고 같은 용도로 써야 하는 곳에 101호라는 팻말만 달아놓은 것 같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렸지만 초인종도 찾을 수 없었다.

“두드릴까요?”

나는 장춘자 계장을 향해 물었다.

“잠깐.”

그 말과 함께 장춘자 계장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안 잠겨 있어.”

장춘자 계장이 속삭이듯 말했다.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퍼뜩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일단은 들어가 봐야지.”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지 장춘자 계장은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딱히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해 일단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했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이 문을 벌컥 열었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날선 악취가 훅 날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그 자세 그대로 한 손으로는 핸드폰 조명을 켠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지독하게 어두웠다.

벽을 더듬었지만 전등 스위치 같은 건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이리저리 핸드폰 조명을 비췄다.

새하얀 불빛 아래 지하 공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너무 놀라 숨을 삼켜야 했다.

바닥에는 온통 핏자국이 가득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장에 고치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건 분명 시체였다.

얼핏 봐도 다섯 구가 넘었다.

뇌가 얼얼할 정도의 지독한 악취가 어디서 풍기는지는 분명했다.

“계장님! 이건 신고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이번에는 장춘자 계장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핸드폰을 꺼내들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 핸드폰이 안 터져.”

“네? 블랙이 분명 여기서 핸드폰을 켜서…….”

그때였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닫혀 버렸다.

“젠장!”

장춘자 계장이 재빨리 몸을 돌려 손잡이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순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덫에 걸린 소감이 어때? 귀찮은 놈 둘을 한꺼번에 처리하게 됐으니 나야 정말 편한걸.”

“블랙! 이 문 열어!”

장춘자 계장이 소리쳤다.

블랙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했다.

“내가 화끈한 서비스를 준비했으니 마음껏 즐기라고. 크크크.”

놈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잠시 후 알게 됐다.

어딘가에서 쉬이익, 하는 가스 새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알싸한 냄새가 지하 공간 안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

“엎드려!”

장춘자 계장이 그렇게 외친 것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펑!

폭발음이 들린 직후,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귓가에서 지잉, 하는 이명이 계속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바닥에 부딪힌 어깨는 거칠게 욱신거렸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뻘건 화염이 천장을 뒤덮은 채로 점점 더 맹렬히 타오르는 중이었다.

“괜찮아?”

어느새 다가왔는지 장춘자 계장이 내게 물었다.

타오르는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쩌면 좋죠?”

그렇게 묻는 동안에도 매캐한 공기가 코와 입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허파가 뒤집힐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탈출해야지.”

장춘자 계장 역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방법이…….”

나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한 채 기침을 토해냈다.

불길이 거세지는 것과 비례해 열기도 강해졌다. 연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타서 죽거나 질식해 죽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게 뻔했다.

“일단 문부터 열어보지.”

장춘자 계장의 말에 나는 문으로 다가갔다.

손잡이를 돌려보고 몸으로 밀어도 봤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갇혔는데요.”

절망적이었다.

꽉 막힌 지하 공간이라 불과 연기는 금세 퍼질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채 10여 분도 안 되어 보였다.

“저 손잡이를 부수면 돼! 밖에서 잠근 것 같으니까 손잡이만 부수면 문을 열 수 있을 거야!”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하지만…… 맨손으로 손잡이를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그 순간이었다.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와서 핸드폰 조명을 들고 살필 때 얼핏 눈에 들어온 뭔가가 떠올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잠깐만요!”

그렇게 외친 후 안쪽으로 들어갔다.

연기가 너무 짙어 허리를 잔뜩 숙여야 했다.

“뭐 하는 거야?”

뒤에서 장춘자 계장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무시하고 내가 본 걸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있었다!

매달려서 훨훨 타고 있는 시체 밑으로 손도끼 한 자루가 떨어져 있었다.

그걸 주워 들고 빠르게 문으로 향했다.

“이걸로 해 보죠!”

내가 손도끼를 들어 보이며 말하자 장춘자 계장은 놀란 듯 물었다.

“그건 어디서 났어?”

“블랙이 살인할 때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손도끼를 치켜들고서 문손잡이를 힘껏 내리쳤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을 타고 저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손잡이가 분명 흔들렸다.

“좋아! 그런데 더 서둘러야 할 거야.”

장춘자 계장의 말대로 지금 필요한 건 빠른 탈출이었다.

연기는 이미 자욱하게 퍼져 우리를 둘러쌌고, 천장을 다 태운 불길은 벽으로 번지는 중이었다.

맹렬한 열기는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목덜미를 핥아댔다.

나는 다시 한번 팔에 잔뜩 힘을 주고 손도끼를 휘둘렀다.

쩡!

손잡이가 반쯤 떨어져 나갔다.

“조금만 더!”

장춘자 계장이 외쳤다.

“네!”

손도끼를 고쳐 쥐고 온 힘을 다 짜내 다시 휘둘렀다.

쩡!

성공이었다!

문손잡이가 완전히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나와 장춘자 계장은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 본 후 동시에 문을 힘껏 밀었다.

우리는 넘어지면서 밖으로 탈출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소방차와 구급차, 그리고 경찰차까지 출동한 현장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시커먼 연기와 빨간 불길이 지하를 벗어나 1층까지 솟구치긴 했지만, 다행히 소방관들의 분투로 화재가 번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장춘자 계장과 나는 응급처치를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둘 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그래도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많습니까?”

나는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어떤 경우?”

“죽을 뻔하는 경우요.”

“자주 없어. 걱정하지 마.”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비꼬는 거야?”

“아닙니다.”

“자네가 함정이라 의심했는데도 내가 그냥 들어가자고 해서 지금 화난 거지? 맞지?”

“아니라니까요!”

“봐! 화내고 있잖아.”

장춘자 계장은 그 말을 하며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살아있다는 게 실감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고마워. 자네한테 목숨 하나 빚졌네.”

“나중에 꼭 갚으세요.”

“응. 난 빚지곤 못 살거든. 그러니 블랙한테도 꼭 갚아줘야지.”

그렇게 말하는 장춘자 계장의 얼굴에 설핏 분노가 떠올랐다.

화가 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검찰 수사관이 된 후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증오하게 됐다.

검찰 수사관 연쇄살인마, 블랙.

놈을 꼭 잡고 싶었다.

그날 밤, 장춘자 계장과 나는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체 타는 냄새가 자꾸 떠올라 고기는 먹고 싶지 않았지만, 장춘자 계장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연기를 그렇게 마셨으니까 꼭 돼지고기를 먹어야 해.”

“그런 거 다 속설이랍니다.”

내가 말했다.

“누가 그래?”

“책에서 읽었습니다. 아시죠? 전 절대 안 잊는다는 거.”

“아이고, 부럽네, 부러워. 그래도 돼지고기는 먹어야 해.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도 있잖아. 지방으로 목구멍 닦아 준 뒤에 사우나 가서 깨끗하게 씻는 거야.”

나는 플라시보 효과도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참고 그냥 고기 한 점을 짚었다.

삼겹살은, 언제나 그렇듯 맛있었다.

내 표정에 다 드러났는지 장춘자 계장이 만족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때, 맛있지?”

“네. 맛있네요.”

“여기가 나만 아는 숨은 맛집이거든.”

“계장님은 아는 게 많아서 좋으시겠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장춘자 계장은 이번엔 딴죽을 걸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자네가 부러워. 진심이야.”

“뭐가 부럽습니까?”

“뭐든 다 기억하잖아.”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도 많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난 정말 기억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 기억이 새까맣게 사라졌어. 그래서 자네가 부러워.”

그 말을 하는 장춘자 계장의 표정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나는 더 물으려고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참! 술 안 드십니까? 삼겹살에는 소주가…….”

“안 마셔.”

장춘자 계장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그가 술 마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여러 번 그런 자리가 있었지만 장춘자 계장은 항상 물이나 음료수를 마셨다.

어제도 그랬다.

우정의 사장이 늘 마시던 걸 준다기에 뭔가 했더니 레몬에이드였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너무 궁금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술은 아예 안 드십니까? 지금은 업무 시간도 아닌데.”

“끊었어.”

“대단하시네요. 술 끊기 쉽지 않은데.”

“술에 취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나면 끊게 돼.”

장춘자 계장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불판에서 삼겹살이 먹음직스러운 소리를 내며 구워졌다.

나는 말없이 고기를 뒤집었다.

장춘자 계장에게는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과 영영 모른 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정확히 반씩 섞여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그런 내게 장춘자 계장이 한마디를 했다.

“때가 되면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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