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404호 검사실이 울었다

by 최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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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남편과 함께 검사실로 들어왔다. 복도 끝 404호, 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그 좁은 공간으로. 남편은 아내의 팔을 부축하듯 가볍게 잡고 있었고, 여자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발을 질질 끌듯 걸어왔다. 육십 평생을 살아온 사람의 걸음이 그토록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피의자에게 남편이 조사시간 동안 동석할 것이냐고 물었다.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옆에 두고 싶어 한다. 특히 이런 무거운 사건일수록. 피의자는 머뭇거렸다. 입술을 달싹이며 남편을 쳐다보고, 다시 나를 보고, 또다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 속에 수많은 말들이 오갔을 것이다. 용서를, 위로를, 혹은 원망을 구하는 눈빛들이.


곧바로 남편이 밖에서 대기를 하겠다고 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쉬어 있었다. 아마도 지난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이다. 피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동의인지, 포기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이었다.


피의자는 남편이 검사실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용한 흐느낌이 아니었다. 환갑에 가까운 여자가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목 놓아 큰소리로 엉엉하며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아니 어린아이보다 더 절박하게. 검사실 밖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릴 만큼 큰 소리였다. 나는 잠시 당황했다. 수사관 생활을 제법 오래 해왔지만, 이렇게 거침없이 우는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면서도 매번 낯설었다.

혹자들은 '관상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나는 관상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사관 생활을 제법 오래 해왔기에 '정말 나쁜 놈'을 금세 알아보는 능력은 생겼다. 눈빛에서 풍기는 교활함, 말투에 묻어나는 뻔뻔함, 몸짓에 배어있는 폭력성. 그런 것들은 숨기려 해도 어딘가 새어 나온다. 그런데 피의자는 달랐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흔적만이 보였다. 주름은 있었지만 깊지 않았고, 손은 거칠지 않았으며, 옷차림은 수수하지만 단정했다. 피의자는 그리 삶을 팍팍하게 살아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제가 아이들을 데려다 키울게요. 제가 키우면 되잖아요."


피의자의 첫마디였다.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그 말은, 조사실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피의자는 대형 SUV 승용차 운전자였다. 기록을 보니 새 차였다. 출고된 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은.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직진을 하다가 반대차로에서 좌회전신호를 받고 회전하는 소형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충돌 지점은 운전석 쪽이었다. 소형승용차에 타고 있던 30대 여성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고 했다.


반면에 피의자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SUV의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했고, 차체가 견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보고서에는 "가해 차량은 전면부 범퍼와 본네트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탑승자는 무사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한 사람은 살리고 한 사람은 죽게 만든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망자의 남편도 최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불과 여섯 달 전의 일이었다. 출근길에 졸음운전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했다. 사망한 30대 여성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다. 동료 교사의 진술에 따르면, 남편을 잃은 후에도 학교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다고, 아이들에게 엄마는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사자인 나를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사망자 슬하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유치원에 다니는 딸, 돌이 지난 막내아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열 살, 다섯 살, 그리고 겨우 열세 달. 남편이 사망한 후 혼자 아이들 셋을 바쁘게 키우고 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것이다. 아이들은 채 1년이 되지 않는 사이 아빠와 엄마를 모두 교통사고로 잃었다.


나는 잠시 펜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은 너무 맑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세상은 이렇게 무심하게 돌아가는데, 어떤 이들의 삶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피의자는 내가 묻는 질문을 할 때마다 울면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게 해 주세요. 제발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원이 섞여 있었다. 속죄의 방법을 간절히 찾는 사람의, 그 절박한 몸부림이.

피의자에 대하여 이미 경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안이지만 사망사고로 중한 사건이라 검사는 구공판을 하기 위하여 다시 조사를 내게 부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참여계장인 내가 조사하는 동안 검사는 다른 사건의 공소장을 쓴다. 검사라는 직업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 중 하나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고, 매 건마다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다.


검사는 다른 사건의 공소장을 쓰면서도 참여계장이 조사하고 있는 피의자의 말과 행동을 살핀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는지, 정상참작에 필요한 사항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메신저를 통하여 조서에 담겨야 할 내용을 조사자인 참여계장에게 요청한다. 그러면 참여계장은 검사가 요청한 내용을 피의자에게 묻고 피의자가 답변한 내용을 조서에 남기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만들어진 호흡이었다.


한데, 오늘따라 검사는 머리를 책상에 박은 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공소장을 쓰기 위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책상 위의 서류들은 아침 그대로였다. 상부에서 요청한 일거리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조사를 계속했다.

피의자는 다시 울음 섞인 소리를 했다.


"제가 아이들을 잘 돌볼게요. 우리 애들은 모두 커서 다 키웠어요. 잘 키울 수 있습니다.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건 차후의 문제고요. 경찰에서 조사받은 내용 모두 인정하시죠?"

"예, 예. 모두 인정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근데 아이들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정신없이 울어대는 피의자를 달래며 조사를 모두 마친 나는 검사에게 조사를 모두 마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지요? 돌아가시면 됩니다."


검사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낮고 잠겨 있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조사한 내용에 추가할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있었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고 피의자를 돌려보내도 된다고했다.


나는 피의자를 돌려보내고 피의자신문조서를 기록에 편철한 후에 기록을 검사에게 넘겼다. 나는 기록을 검사에게 넘기면서 흘깃 검사의 얼굴을 보았다.


검사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머리를 돌려 자리로 돌아오는데 실무관의 얼굴도 보였다. 실무관 역시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조사하는 내내 어디선가 콧물 흘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검사실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 작은 흐느낌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요즘 이게... 요즘 미세먼지 가루가 너무 날려. 비염이 도져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검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실무관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404호 검사실은 그렇게 조용했다. 가을 햇살만이 비스듬히 들어와 책상 위 서류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 작은 먼지들이 떠다녔다. 꽃가루처럼.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저 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법은 정의를 실현하지만, 정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벌이 누군가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404호 검사실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눈물도 없이. 다만 붉게 충혈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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