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행의 법칙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네? 휴가…… 라고요?”

장춘자 계장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자기 휴가 소식을 전했다.

“응. 그러니까 오늘은 자네 혼자 다녀 봐.”

“바쁜 일이라도 있으세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어. 그냥 좀 하루 쉴까 해서.”

장춘자 계장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푹 쉬세요. 그런데요, 계장님. 전 오늘 뭘 하면 될까요?”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범정에 오기 전에는 잡아야 할 미집자가 널리고 널렸으니 뭘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바빴다.

물론 범정에 속한 지금이 훨씬 바쁘긴 했지만, 그건 장춘자 계장을 따라다녔을 때의 이야기였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 돌아다니게 된다면 곤란한 게 사실이었다.

“아! 그럴 줄 알고 자네가 할 일을 준비해 뒀지.”

장춘자 계장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뭡니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내일일보의 신문수 기자라고 있어. 이 인간이 형우그룹과 붙어먹는 놈인데, 오늘 신문수 기자를 미행해 봐. 그러면서 뭘 하고 누굴 만나는지 다 기록, 아니 기록은 필요 없고 지켜만 봐. 자네는 그게 기록이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신문수 기자 사진을 보낼 테니까 그거 참고해. 한 가지 명심할 건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거야. 이 인간이 생긴 건 곰인데 하는 짓은 완전히 너구리거든. 조심해. 알았지?”

“네!”

그렇게 해서 나는 민간인, 그것도 기자를 미행하는 엄청난 일을 떠맡게 됐다.

신문수 기자는 인상이 강했다.

우락부락한 얼굴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 그리고 짙은 눈썹만 놓고 보자면 기자인지 조폭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물론, 덩치도 컸다.

덕분에 미행하다가 놓칠 일은 없어 보였다.

나는 내일일보 사옥 앞에서 신문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척하며 틈틈이 사옥 입구를 지켜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행은 서툴지 몰라도 잠복이라면 자신 있었다.

미집자 한 명을 잡으려고 사흘 동안 차 안에서 지냈던 적도 있었으니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저기…….”

갑자기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네?”

나는 지나치게 수수한 복장의 여자를 보고 바로 알아챘다.

아니나 다를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복이 많으세요.”

“괜찮습니다. 관심 없어요.”

나는 정중히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끈질겼다.

어쩌면 내가 자리를 뜨지 않는 걸 긍정의 표시로 받아들인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조상 덕을 못 보고 계시네요. 그게 안타까워요. 혹시 요즘 크고 작은 사고가 잦다거나 아니면 혼자선 감당 못 할 일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너무 딱 맞추는 바람에 속으론 흠칫 놀랐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요. 저 아주 잘 지냅니다. 그러니 그냥 가주세요.”

“조상님께 제사만 잘 드리면 막혔던 운이 다 풀릴 거예요. 하시는 일이…… 공무원, 맞죠?”

뭐야?

어떻게 알았어?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여자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맞구나. 그럴 줄 알았어요. 공무원인데 진급은 안 되고, 위에선 어렵고 골치 아픈 일만 시키니 얼마나 답답하세요. 제가 그 맘 잘 압니다.”

알긴 뭘 알아!

제발 그냥 좀 가줘요!

“저 진급 욕심도 없고, 하는 일도 아주 쉬운 거예요. 그러니…….”

그때였다.

신문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큰 덩치를 자랑하듯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잠깐 저와 함께 가실까요? 제사는 금방 끝나거든요.”

여자는 아예 내 앞을 막아섰다.

“괜찮습니다! 저 지금 바쁘니까 비켜주세요.”

나는 여자를 간신히 뿌리치고 신문수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신문수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따라가다가 나도 지하철역 안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큰 덩치가 보이지 않았다.

연기처럼 사라진 것 같았다.

당황한 나는 역사 안을 재빨리 훑었다.

역사는 꽤 붐볐지만 다른 이보다 한 뼘 이상 큰 신문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혹시?

나는 잰걸음으로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내가 막 화장실 입구로 들어선 순간, 하필이면 안에서 나오던 신문수와 닿을 듯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놀라 주춤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먼저 사과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괜히 손만 한 번 씻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저만치 앞에서 개찰구로 들어가는 신문수가 보였다.

강남 방향 2호선이었다.

천장에 달린 전광판을 확인했다.

지하철이 들어오려면 3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1분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자 마침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신문수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는 핸드폰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틈을 타 나는 신문수와 같은 칸에 타는 데 성공했다.

2호선 지하철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신문수는 출구에 기대 핸드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간간이 신문수를 살폈다.

그가 어디 내릴 지는 대충 감을 잡았다.

아마 강남역일 것이다.

거기에 형우그룹 본사가 있으니까.

물론 내 예상이 틀릴 수도 있고, 그 사이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신문수를 유심히 살피는 걸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여보세요?”

신문수가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강남역에 거의 다 와 갈 때쯤이었다.

그는 누가 듣건 상관하지 않고 꽤 큰 소리로 통화를 이어갔다.

“아이고. 이사님도 참.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절대 실수 안 한다니까요.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한우 좋죠! 그러면 거기로 가겠습니다. 네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하.”

아무래도 신문수는 한우를 먹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나도 거기에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혼란스러웠다.

혼자서, 그것도 한우를 파는 고깃집에 간다고?

내게는 그게 미행보다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한동안 고민하고 있을 때 지하철이 강남역에 섰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렸다.

신문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나는 신문수를 따라 내리며 자연스레 거리를 뒀다.

“여보세요? 형님!”

이번에는 신문수가 전화를 건 것 같았다.

거리가 제법 있었지만 목소리가 하도 커서 통화 내용은 똑똑히 들렸다.

“아니, 내가 또 안부 물으려고 전화했지. 요즘 어떻게 지내요? 나? 나야 뭐,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취재하고 기사 쓰느라 바쁘지. 하하. 언제 한 번 뭉칩시다. 난 언제든 콜! 알았어요. 끊을게요.”

신문수는 통화를 끝내면서 5번 출구 쪽으로 향했다.

5번 출구는 신분당선 라인에 있었다.

거긴 또 2호선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회사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유유자적 걷는 사람은 신문수뿐이었다.

나도 덩달아 천천히 걷게 됐다.

예상치 못 한 변수가 생긴 건 신문수가 5번 출구를 통해 지하철역을 막 빠져나갔을 때였다.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먼저 지상으로 향한 신문수 옆으로 남자 두 명이 붙어 선 것이다.

그러고는 신문수를 앞뒤로 에워쌌다.

뭐지?

신문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알아챘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를 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에스컬레이터를 달려 올라갔다.

그때였다.

“아저씨. 왜 그래요?”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갔다.

신문수가 인도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억!”

쓰러진 신문수에게 다가가던 청년이 피를 보고 기겁해서 뒷걸음질 쳤다.

칼이다!

칼에 찔렸다!

순간 그 사실을 눈치챈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 신문수를 향해 붙어 섰던 남자 둘이 저만치 멀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남자 둘과 신문수를 번갈아 봤다.

신문수는 힘없이 축 늘어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순간 갈등했다.

내 임무는 신문수 미행이었지만 지금은 목표물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무슨 이유로 현직 신문기자에게 칼침을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지 그 뒤를 따라가 봐야 한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남자 둘의 뒤를 따랐다.

신문수가 쓰러진 곳에서 날 선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남자 두 명은 복잡한 인도로 들어서더니 각자 떨어져서 걸었다.

마치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한 명은 남색 재킷을 걸쳤고, 다른 한 명은 흰색 셔츠만 입고 있었다.

둘은 방금 누군가를 칼로 찌른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게 움직였다.

둘 다 프로다.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침에, 그것도 강남 한복판 인도에서 누군가를 찌르고 저토록 차분하게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도망친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였다.

할 일을 마치고 귀환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거리를 둔 채 건널목 하나를 지난 후 서로 다른 길로 움직였다.

재킷 입은 남자가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든 것이다.

나는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남자 둘을 놓고 고르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결국 재킷을 선택했다.

나도 남색 재킷 입은 남자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재킷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 골목을 천천히 지나다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아주 좁은 골목이었다.

재킷을 따라 그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싸한 느낌에 멈춰 섰다.

그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재킷이 쓱 돌아섰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미행이 서툴군.”

“배워나가는 중이야.”

내가 대답했다.

“어쩌지? 더 배울 수 없을 텐데.”

재킷은 그 말과 함께 품에서 칼을 꺼냈다.

날이 제대로 서 있는 군용 도검이었다.

“신문수는 왜 죽였지?”

내 질문에 재킷은 피식 웃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지금은 질문 할 타이밍이 아니야.”

“그건 내가 결정해. 다시 묻는다. 왜 죽였지? 누가 시킨 건가?”

“죽기 직전에 알려줄게.”

재킷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블랙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칼잡이끼리는 동작이 비슷할 거라고 예상하면서.

휙!

첫 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긋는 동작이었다.

나는 그 첫 번째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재킷의 동작은 블랙과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도 승산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재킷의 품으로 과감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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