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치명상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칼 든 상대와 싸울 때 제일 위험한 게 거리를 주는 것이다.

특히 단검은 조금의 틈만 있어도 공격을 할 수 있기에 적과 밀착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자면 첫 스텝을 강하고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다행히 나는 그러는 데 성공했다.

“엇!”

재킷이 당황해서 그런 소리를 냈다.

나는 놈에게 딱 붙어서 칼 든 팔부터 잡았다.

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유도 기술이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한다.

재킷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절대 균형을 잃지 않겠다는 듯 하체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섰다.

물론, 나는 유도 기술을 쓸 마음이 없었다.

이럴 때 제일 예측하기 힘들면서도 파괴적인 공격, 나는 놈에게 그걸 먹여줬다.

박치기.

퍽!

내 단단한 이마가 재킷의 코와 입을 강타했다.

“윽!”

재킷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나는 주저앉아 코를 감싸 쥔 놈에게 말했다.

“어디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너, 아침부터 소고기 먹었구나?”

그랬다.

재킷 앞으로 붙어 선 순간 구운 소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앞뒤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친 새끼.”

재킷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박치기 한방에 정신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재킷이 강인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은 다시 칼을 고쳐 쥐고 내게 겨눴다.

하지만 조금 전에 비해 확실히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 채 놈과 정면으로 보고 섰다.

내 머릿속에서는 놈의 다음 행동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살짝 거리를 두는 듯하다가 재킷이 치고 들어왔을 때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휙!

단검은 허공을 갈랐고, 내 주먹은 정확히 놈의 옆구리에 꽂혔다.

퍽!

“헉.”

재킷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거리를 좁혔다.

재킷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였다.

박치기를 의식한 탓이었다.

내가 노린 건 바로 그 동작이었다.

나는 놈의 머리를 누르면서 동시에 무릎으로 얼굴을 올려 찼다.

이번에는 신음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재킷이 쓰러졌다.

결정타다!

그런 느낌이 왔다.

그 순간이었다.

내 오른쪽 옆구리로 칼날이 파고든 것은.

“뭐…….”

나는 옆구리를 쥐고 뒤를 돌아봤다.

흰색 셔츠가 서 있었다.

셔츠는 단검보다 훨씬 작은,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잭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바로 그게 내 옆구리를 물어뜯는 범인이었다.

“방심하면 안 되지. 흐흐.”

셔츠가 말했다.

젠장.

놈의 말 그대로였다.

다 이겼다고 생각해 순간 방심하고 말았다.

“넌 누구야?”

셔츠가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인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벽을 등지고 섰다.

2대1의 구도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어느새 다시 일어난 재킷도 셔츠와 나란히 서서 나를 노려봤다.

“경찰처럼 보이진 않고, 우리 쪽 인간도 아닌 것 같은데…….”

셔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놈의 머릿속에 검찰 수사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으리라.

나도 굳이 설명해 줄 마음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설명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열세였다.

그것도 완벽히.

잭나이프는 생각보다 깊게 박혔던지 상처가 꽤 쑤셨다.

피도 계속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방금 당한 공격으로 내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두 놈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왜 미행했는지 말하면 편하게 죽여주지.”

셔츠가 말했다.

하지만 재킷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놈은 코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냥 죽여!”

“형우그룹에서 의뢰한 건가?”

내가 던진 질문에 둘 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뭐야?”

그렇게 물은 셔츠는 동료인 재킷을 향해 말했다.

“이 새끼 데리고 가서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번에도 재킷의 의견은 달랐다.

“일단 죽여. 그러고 뒤져보면 뭐든 나오겠지.”

“날 죽이면 너희는 절대 무사하지 못해.”

내 협박은 두 놈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셔츠가 그 말과 함께 성큼 다가왔다.

그때였다.

“거기서 뭐 하는 거요?”

골목 입구에서 들려온 소리에 놈들은 물론이고 나도 고개를 돌렸다.

형광 조끼를 입은 청소부가 멀뚱히 서 있었다.

청소부는 상황 파악을 못 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다 큰 어른이 아침 댓바람부터 싸우면 쓰나.”

“안 돼요!”

내가 소리쳤지만 셔츠가 한발 빨랐다.

놈은 청소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다행히 셔츠의 허리를 붙들고 늘어질 수 있었다.

“놔!”

셔츠가 소리쳤고, 그제야 잭나이프를 발견한 청소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내가 청소부를 향해 외쳤다.

“빨리 경찰 불러요!”

“으악!”

청소부는 비명과 함께 도망쳤다.

그 순간 뒤에서부터 섬뜩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재킷의 단검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등을 지졌다.

나는 쓰러진 채로 셔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악! 이 새끼가.”

셔츠가 달려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놈에게 던졌다.

그중 반쯤 깨진 유리병이 셔츠의 얼굴에 그대로 명중했다.

나는 그 순간을 틈타 몸을 굴려 둘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 놈이 바로 쫓아왔다.

골목을 벗어나자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여러 사람 사이를 지나 편의점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서…….”

아르바이트생이 인사를 하려다가 깜짝 놀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

바로 다음 순간 두 놈이 문을 당겼다.

그야말로 미친개 같은 표정으로.

“경찰에 신고 좀 해줘요.”

나는 그렇게 말한 후 털썩 주저앉았다.

문을 흔들던 두 놈이 나를 노려보며 물러났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흰색 천장이 보였다.

몇 번 눈을 감았다가 뜨자 초점이 맞았다.

더불어 내가 병원에 누워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때 나를 더 안심시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행하라고 했더니 액션 영화를 찍었군.”

장춘자 계장이었다.

“계장님.”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은 장춘자 계장을 쳐다봤다.

“옆구리 쪽 상처가 심해. 수술했고, 아쉽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대.”

장춘자 계장의 어이없는 농담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다행히 참을 수 있었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던 겁니까?”

내가 물었다.

“하루. 어제 병원으로 실려 왔으니까.”

“덕분에 푹 잤네요.”

내 말에 장춘자 계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더 자. 내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아뇨. 분해서 이젠 잠이 안 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이나 해봐.”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신문수가 죽었더군. 자네 사건은 밖으로 새는 걸 막았어.”

“그렇군요. 저는 신문수 기자를 미행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펼쳐지게 된 활극에 대해 장춘자 계장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길게 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두 놈이 신문수를 암살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내가 죽기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것 역시 명백했으니까.

“그러니까 자네 생각은 형우그룹 쪽에서 손을 쓴 것 같다는 거지?”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네. 신문수가 통화할 때 이사님이라 부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거기가 배후인 것 같습니다.”

“이사님이라…….”

“짚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이방선 부회장 쪽 사람 중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이사가 한 명 있긴 하지.”

장춘자 계장이 대답했다.

“그게 누굽니까?”

“오근수.”

“오근수…….”

“오근수는 이런 짓을 꾸밀만한 놈이긴 해.”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근수는 원래 주먹 출신이거든.”

“그런데 이사까지 올라갔다고요?”

“예전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 오근수 같은 경우엔 이방선 경호원으로 일하다가 이사가 된 거고.”

“그러면 이방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군요.”

“그렇지. 게다가 하나 더 짚이는 게 있어.”

“뭡니까?”

“내가 신문수 기자 수첩을 입수했거든.”

“네? 그건 어떻게…….”

“영업 비밀이야.”

“진심으로 궁금하네요. 계장님의 영업 비밀.”

“차차 다 알려줄 테니까 기다려. 그것보다 기자 수첩 내용이 궁금하지 않아?”

장춘자 계장은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데도 재주가 있었다.

“궁금합니다.”

“신문수가 이렇게 적어놨더라고. 이방선이 보육원에 갔다.”

“네? 그게 답니까?”

“응.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건 그 문장이 다였어.”

“이방선이 보육원에 갔다……. 무슨 의미죠?”

“그건 나도 모르겠어. 다만 신문수는 이걸 가지고 모종의 거래를 하려 했었나 봐. 욕심을 낸 거지.”

“그러니까, 이방선이 보육원에 갔다는 문장 한 줄로 목숨을 잃은 거네요?”

“그런 셈이지. 퍼즐을 맞춰보면 그래.”

“거기에 보육원 이름 같은 건 안 적혀 있었습니까?”

“없었어.”

“의미를 모르겠네요. 보육원에 갔다는 걸 그 정도로 숨겨야 했을까요?”

“그 보육원이 어떤 곳인지에 따라 다르겠지.”

장춘자 계장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기는 하겠네요.”

“자, 오늘은 여기까지. 자넨 더 쉬어. 어차피 움직이고 싶어도 안 될 거야. 옆구리 쪽 상처가 제법 깊었거든. 치명상이 될 뻔했어.”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혼자 움직이실 겁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이 기회에 나도 숨 좀 돌릴 거야. 그러니까 자네도 맘 편히 쉬면서 회복에 전념해.”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뭐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안 죽었으니 그걸로 된 거야. 난 파트너가 필요하거든. 다시 구할 마음도 없고, 구할 사람도 없어.”

장춘자 계장은 그 말과 함께 돌아섰다.

나는 그 뒤에 대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감사는 국가에 대고 해. 자네 병원비 모두 나랏돈으로 충당하는 거니까. 그럼 간다.”

장춘자 계장이 떠나고 나만 병실에 남았다.

그러고 보니 호사스럽게도 일인실이었다.

이건 나랏돈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장춘자 계장이 병원비 일부를 댄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졸음이 몰려왔다.

아마도 진통제를 맞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다시 잠에 빠져들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하나였다.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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