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마녀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노래방은 노래방이 아니었다.

합정역에서 꽤 들어간 골목에 자리한 그곳은 연예계에 무지한 나도 알 만큼 유명한 소속사 빌딩이었다.

‘SONG 엔터테인먼트’가 그곳 이름이었다.

“설마 이름에 송이 들어간다고 해서 노래방이라 부르는 겁니까?”

빌딩 정문 앞에 서서 내가 물었다.

“그렇지! 어때? 내 센스가?”

“참 대단하네요.”

“진짜 노래방이 아니라서 실망한 거야?”

“그럴 리가요.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여기 사는 마녀는 엔터 쪽 일이라면 나보다 훨씬 정보가 많거든.”

장춘자 계장은 그렇게 말하며 빌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장춘자 계장이 말하는 마녀가 이곳의 대표일 거라 짐작했다.

SONG 엔터테인먼트 대표 송소희는 그야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뛰어난 감과 사업 전략으로 데뷔시키는 그룹마다 대인기를 얻게 만들긴 하지만 거침없는 독설과 무례한 행동으로 툭 하면 구설에 올랐다.

오죽하면 소속 연예인보다 뉴스에 더 많이 등장하는 대표라는 이야기가 떠돌겠는가.

그걸 다 떠나서 내가 알 정도면 진짜 유명한 양반이라는 증거였다.

우리는 빌딩 제일 꼭대기에 있는 대표실 앞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비서가 나오더니 나와 장춘자 계장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에서도 춘자라는 이름은 프리패스로 통했다.

든든한 한편, 장춘자 계장의 영향력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송소희의 대표실은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곳이었다.

거기, 붉은 카펫 위에 놓인 까만색 소파에 송소희 대표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일어났다.

“오랜만이네요, 계장님.”

5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인 송소희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다.

장춘자 계장이 왜 마녀라 부르는지 알 것도 같았다.

“송 대표님. 잘 지냈습니까?”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그럼요.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백 살 넘게 살 것 같아요. 호호.”

송소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투로 이야기했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그어 놓은 듯한 미소를 띤 채.

“저는 아무도 욕해 주는 사람이 없나 봅니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안 좋거든요. 하하.”

장춘자 계장의 말에 송소희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같이 온 분은 파트너?”

“아! 이 친구도 수사관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장춘자 계장이 내게 고갯짓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신기탄이라고 합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송소희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살다 보니 계장님 파트너를 다 만나네요.”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시네요.”

나는 송소희와 악수를 나눴다.

송소희는 나를 한 번 훑어본 후 장춘자 계장에게로 돌아섰다.

“그런데 계장님이 무슨 일로 갑자기 찾아오셨을까?”

“정보가 좀 필요해서요.”

“어머! 우리 계장님이 모르는 정보도 있어요?”

“모른다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온 거죠.”

“칭찬입니까?”

“칭찬이죠.”

“좋아요. 그러면 물어보세요. 알고 있는 건 말씀해 드릴게요.”

송소희는 그 말과 함께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자연스레 우리도 송소희를 마주 보고 앉았다.

“리얼엔터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장춘자 계장이 입을 열자 송소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야. 계장님이 내가 리얼엔터 극혐한다는 걸 잘 알고 계시네요.”

“이쪽 업계에서 리얼엔터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알고 있죠.”

“맞아요. 걔들 순 양아치거든요.”

“그런데 최근 그쪽에서 돈을 좀 돌리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아요. 저도 그 소문 들었어요.”

“그렇게 돈을 돌려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듣자 하니 본사 부회장 라인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본사 부회장이라면 바로 그 인간이다.

이방선.

“이유가 뭘까요?”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리얼엔터 대표가 이방선 부회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거든요.”

송소희는 경멸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방선 부회장의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얼엔터가 돈을 굴렸다?”

“그건 저보다 계장님이 더 잘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을게요.”

“얼마든지.”

“리얼엔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인, 혹시 아십니까?”

“밀접한 관련이라…… 어떤 의미로 묻는 거죠?”

그렇게 되묻는 송소희의 눈빛이 꽤 날카로웠다.

나도 궁금했다.

장춘자 계장의 질문은 어딘가 두루뭉술했기에.

“음…… 알겠습니다. 다시 묻죠. 리얼엔터의 접대를 받는 정치인이 누굽니까?”

접대라고?

예상외의 전개에 나도 모르게 장춘자 계장을 돌아봤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송소희를 보고 있었다.

“자신 있습니까?”

송소희는 웃으며 물었다.

“어떤 자신을 말하는 겁니까?”

“제가 그 정치인이 누군지 이야기하면 상대할 자신이 있느냐는 거죠.”

마녀, 아니 송소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알고 있기에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감이 넘치기에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이건 장춘자 계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용히 마른침을 삼켰다.

두 사람은 지금 머릿속으로 엄청난 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송소희는 장춘자 계장을 떠보고, 장춘자 계장은 송소희를 떠본다.

이건 기세에서 밀리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장춘자 계장은 느긋한 표정으로,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이긴다고 장담할 순 없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습니다.”

“호오. 그 정도면 상당한 자신감인데요?”

“대표님도 그런 자신감이 있기에 리얼엔터와 싸우는 거 아닙니까?”

송소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장춘자 계장을 물끄러미 봤다. 그러고는 곧 입을 열었다.

“좋아요. 리얼엔터와 우리 사이까지 알고 계시니 말씀드리죠. 대신에 한 가지 약속해 주시죠.”

“얼마든지.”

“리얼엔터를 완전히 무너뜨려 주세요. 아니, 무너뜨릴 수 있는 정보를 주세요.”

“네. 약속 지키겠습니다.”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말씀드리죠. 그 정치인, 윤동우 의원이에요.”

장춘자 계장과 나는 벤치에 앉아 한동안 말없이 하늘만 올려다봤다.

먼저 입을 연 건 장춘자 계장이었다.

“이 빌딩 뒷마당, 여기 참 조용하고 좋지?”

“네. 그러네요.”

“내가 아주 가끔 여기 오는데 그때마다 한참 앉았다가 가거든.”

“윤동우 의원,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기습적인 내 질문에도 장춘자 계장은 딴소리만 했다.

“사람이 하늘도 올려다보고 살아야 하거든. 그래야 속이 좀 트여.”

“계장님. 지금 이렇게 한가한 이야기나 나눌 때가…….”

“근데 말이야, 하늘은 올려다보는 거로 만족해야지 거기에 올라가려 하면 꼭 탈이 나거든. 그걸 모르는 인간이 많아.”

“그게 무슨…….”

“특히 정치인 중에 그런 인간이 수두룩하지. 맨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아등바등하는 인간. 그래서 난 정치하는 인간을 멀리해. 옆에 있다간 같이 떨어지기 십상이거든.”

나는 새삼 장춘자 계장을 바라봤다.

이 남자는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분명 정치인에 관한 것도 있으리라.

장춘자 계장의 손에 자기 정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정치인은 아마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이다.

회유하거나, 제거하거나.

두 가지 선택 속에서도 장춘자 계장은 회유당하지도 않았고, 제거당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래서 윤동우는 어떻게 하실 거냐니까요?”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형우그룹의 비자금이 불법 정치 자금이 되어 윤동우에게 들어간 건 확실해. 그러면 확실한 결론이 하나 더 생기지. 뭔지 알겠나?”

“네. 윤동우 역시 그림자 조직의 일원이라는 거죠.”

“오! 제법인데? 맞았어. 자,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자고.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이자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젊은 국회의원이 음지의 세력과 손을 잡고 있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알겠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엄청나게 골치 아픈 상황이란 거야.”

“그 정도인가요?”

“대통령이 제일 신뢰하는 의원이 바로 윤동우야. 그러고 대통령은 그림자 조직을 와해하려고 마음먹었지. 즉, 대통령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게 된 상황인 거지.”

“차라리 잘된 일 아닙니까? 이 기회에 윤동우까지 엮어서 보고하면 다 정리되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지만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저었다.

“윤동우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내가 유일하게 지금껏 약점을 잡지 못한 사람이 딱 둘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윤동우야.”

“그러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겁니까?”

“그래. 더 확실한 정보를 잡아야 해. 그러기 위해선 윤동우의 주변부부터 차근차근 무너뜨려야 하고.”

“일이 많겠네요.”

“많지.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닐 거야. 난 아직 그림자 조직의 대가리가 누군지도 모르니까.”

“제가 돕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내 말에 장춘자 계장이 씩 웃었다.

그 미소가 꽤 멋져 보였다.

우리의 우선 목표는 형우그룹이 되었다.

장춘자 계장은 거길 흔들면 그림자 조직이 튀어나올 거라 예상했다.

“땅속을 헤집어야 두더지가 기어 나오는 법이거든.”

장춘자 계장은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줄기 불안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과연 우리 둘만의 힘으로 그 거대한 조직과 맞서 싸울 수 있을까?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히려 정신은 말똥했다.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

그때였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바로 그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메시지 알림이었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들었다.

발신번호표시제한으로 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나는 불길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메시지를 클릭했다.

거기에는 아무런 내용 없이 동영상 하나만 첨부돼 있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동영상을 클릭했다.

화면 한가득 장춘자 계장의 얼굴이 떴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찍히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장춘자 계장의 얼굴이 피투성이라는 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도 잔뜩 충혈돼 빨갰고, 수염도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그는 흥분한 표정과 목소리로 외쳤다.

“이 새끼야! 네가 감히 날 배신해?”

상대방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장춘자 계장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네 인생은 끝났어!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감옥에서 평생 썩을 각오 해!”

나도 모르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사이 동영상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장춘자 계장이 뭔가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게 뭔지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야구방망이였다.

그는 그걸 휘두르기 전 마지막으로 외쳤다.

“널 내 파트너로 삼은 게 실수였어!”

장춘자 계장은 야구방망이를 치켜 들었고, 동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멍하니 앉아 핸드폰만 내려다봤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 진실을 알게 된 소감이 어때?

정체 모를 누군가는 조롱하듯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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