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도사열전

by 최길성
모든 걸 아는 남자(브런치 축소).png


“부회장 사모는 남편이 바람피우는 거엔 아예 신경도 안 써요. 이젠 아예 포기한 거 같더라고. 뭐, 자기도 맞바람을 피우고 있으니까. 흐흐.”

윤 도사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 아줌마는 다른 고민은 없는 거야?”

장춘자 계장이 다시 물었다.

“에이, 고민 없으면 날 찾아오지도 않죠! 그 사모가 그러는데 자기 남편이 정치인한테 줄을 섰는데,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나중에 헛물만 켜는 게 아닌가 그걸 걱정하더라고요. 사모 말로는 정치인이 썩은 동아줄이 아닌 건 분명한데 그래서 더 불안한가 보더라고.”

“그 정치인 이름이…….”

장춘자 계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끝을 흐리자 윤 도사도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윤동우 의원.”

윤동우!

같은 이름이 또 나왔다.

이쯤 되면 형우그룹이 윤동우를 민다고 확신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불법 정치 자금까지 꽂아주는 것이겠지.

“윤동우 의원이라……. 어제 뉴스에서 그러더군. 내일 당장 대선을 치르면 당선이 가장 유력한 인물이 바로 윤동우라고.”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그래서 더 걱정하더군요. 미래의 대통령감을 밀고 있긴 한데 그 사람한테 빨대 꽂아 둔 인간이 한둘이겠느냐면서. 한 마디로 자기 남편을 못 믿는 거죠. 흐흐.”

“자네가 보기엔 어때? 윤동우가 대권을 쥘 것 같은가?”

“어허, 어디 보자. 제가 아직 도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2년 뒤에 누가 용상에 오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윤동우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왕이 될 수도,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상을 타고났다고.”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라는 거네.”

“그렇죠. 역시 바로 알아들으시네, 형님은.”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슬그머니 물었다.

“그런 게 정말로 보이는 겁니까? 아니면…….”

“사기냐고 묻고 싶은 거죠? 흐흐.”

윤 도사는 내 마음을 완전히 읽고 되물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수사관님. 최근에 크게 액땜했죠? 옆구리 쪽에 날붙이가 보이거든.”

윤 도사의 그 말에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어떻게 그걸 아세요?”

나는 그러면서 장춘자 계장을 돌아봤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난 한마디도 안 했어.”

“우리 형님이 파트너 데리고 온 이유를 알겠네. 몸이 성치 않으면 형님 따라다니기 힘들 테니까 제가 좀 봐 드릴게.”

윤 도사는 그 말과 함께 일어났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어, 어디로?”

나는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따라가 봐. 자네한테 손해 될 건 없을 테니까. 난 간만에 맑은 공기나 좀 마시고 오지.”

장춘자 계장 역시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윤 도사를 따라 옆 방으로 이동했다.

그 방은 어둡고, 습하고, 따뜻했다. 특히 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자, 위에 셔츠 벗고 여기 한 번 엎드려 보세요.”

윤 도사가 말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윤 도사 말을 따랐다.

맨몸으로 뜨끈한 바닥에 엎드리니 저절로 “끙”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윤 도사는 내 등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아이고, 다친 것도 다친 건데 기가 전체적으로 뒤틀렸네. 원래 잠도 잘못 자고 그러죠?”

“네. 불면증이 좀 있습니다.”

“지금부터 쉽게 말해 기 치료를 할 겁니다. 아픈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눈 감고 편히 쉰다는 생각으로 누워 계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네.”

나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이제 와서 이것저것 묻는 것도 이상했고, 윤 도사가 적어도 내게 나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 도사 말대로 엎드린 채 눈을 감았다.

윤 도사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등 구석구석을 지그시 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그 부위가 시원해졌다.

마치 동전 파스라도 붙인 것처럼.

곧 내 몸은 열기로 가득 찼다.

배도 뜨끈하고, 등도 따뜻하니 금세 잠이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몇 시간이고 잘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다.

그야말로 푹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게다가 몸도 한결 가벼웠다.

칼에 찔린 옆구리만이 아니라 목이나 등, 허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는데 그런 데가 모두 풀린 것 같았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조심스레 일어나 앉았다.

때마침 문이 열리며 장춘자 계장이 들어왔다.

“좀 어때? 괜찮아?”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제가 몇 시간이나 잔 거죠?”

나는 그것부터 물었다.

“몇 시간? 30분 정도 지났어. 하하.”

“네? 그것밖에 안 됐다고요?”

장춘자 계장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봤다.

정말이었다. 딱 30분이 흘러 있었다.

“그 정도로 개운해?”

장춘자 계장의 물음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10시간 이상 한 번도 안 깨고 푹 잔 것 같아요.”

“그게 윤 도사의 진짜 능력이지.”

“신기하네요. 기 치료라고 하던데.”

“내가 말했지? 그야말로 도사라고.”

“저는 그냥 사기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기꾼은 맞아.”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사기 전과도 있어. 옛날에 미집자로 도망 다니던 걸 내가 잡으면서 인연을 맺었지.”

“그러면 축지법이니 천리안이니 다 거짓말이라는 거죠?”

“그렇지.”

“근데 제가 다친 사실도 알고, 윤동우 관상 운운도 했잖아요. 그건 뭡니까?”

“그건 또 진짜야.”

“네?”

나는 몇 번째 되묻기만 하고 있었다.

“자네가 지닌 완전기억력도 특수한 능력인 것처럼 그런 걸 타고나는 사람이 있지. 윤 도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야.”

장춘자 계장이 말했다.

“그런데 왜 사기를 쳐서 전과까지 생겼습니까?”

“그땐 자기 능력을 과신해서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려 했거든. 그땐 윤 도사로 불리지도 않았어. 지금은 분수를 알고 딱 그 능력만큼만 돈을 벌고 있지. 윤 도사로 신분 세탁 잘하고. 하하.”

“그러면서 계장님께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고?”

내가 물었다.

장춘자 계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윤 도사를 믿는 정재계 인사들이 꽤 되거든. 윤 도사는 아주 쏠쏠한 정보원이야.”

“아무튼 덕분에 전 아주 개운해졌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씀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일어났다.

그러자 장춘자 계장이 말렸다.

“윤 도사 바빠. 다시 손님 받고 있어. 우린 조용히 떠나면 돼.”

“그래도…….”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러니 인사는 그때 해도 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들어왔던 그 뒷문을 이용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아마 어마어마한 돈을 벌 것이다.

그러니 사찰처럼 보이는 건물도 여러 채 짓고 안내하는 사람도 채용했겠지.

그런 윤 도사가, 내 눈에는 지금도 충분히 교주 같아 보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장춘자 계장에게 물었다.

“계장님은 정보원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이거였다.

“어허. 그런 건 마누라한테도 비밀로 해야 하는 거야.”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러고 보니 정보가 제일 중요한 이 바닥에서 정보원이 몇 명인지, 또 누구인지를 공유한다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장춘자 계장이 나를 무척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할 것까진 없고, 자네도 빨리 자네만의 정보원을 만드는 게 좋을 거야.”

“정보원…….”

실은 나도 정보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발품을 판다고 해도 모든 정보를 혼자서 다 얻을 순 없었다.

아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가진 정보를 취합해서 선별하는 것이야말로 범정 수사관이 가져야 할 자질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더욱더 정보원, 그것도 나만의 정보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디 가서 정보원을 얻을지 좀 막막합니다.”

내 말에 장춘자 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그땐 사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어.”

“아! 계장님도 그러셨군요.”

“범정 일을 처음 하면 누구나 다 같은 어려움을 겪어. 그런데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꽤 쉽게 풀려.”

“그게 뭔가요?”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거!”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인지…….”

“죽은 정보는 쓸모가 없어.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정보가 필요한 거지. 그런데 생각해 봐. 이 정보라는 게 살아있다고 했을 때 어디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살아있는 정보라면…… 살아있다가 가정한다면…… 아마 자기 덩치를 더 불릴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요?”

“맞았어! 역시 젊어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네. 아니면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가? 하하.”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정답을 맞히긴 했지만……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내 정답 속에는 ‘왜’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좋아. 설명해 주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정보는 말이야, 몸피를 불리며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꾸 다른 정보를 흡수해. 그래서 비슷한 정보끼리 모이는 거야.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비슷한 정보가 떠돌아다닐 만한 장소에 가면 되는 거야. 연예계 쪽 정보가 궁금하면 그쪽 세계의 핫플레이스에 가는 거고, 정계 쪽 정보가 필요하면 또 보좌관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주야장천 기다리는 거지. 그러다 보면 생생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어.”

“그래서 발로 뛰면서 찾는 정보가 중요한 거군요.”

나는 일전에 장춘자 계장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그렇지.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정보를 못 얻어.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보원 역시 그 현장에서 찾을 수 있지.”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자, 그러면 내가 임무를 주지. 다음 주까지 내가 모르는 정보 하나를 찾아와 봐. 물론 정보원을 통해서. 오케이?”

장춘자 계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계장님이 모르는 정보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가 모르는 건 바로 ‘내일’ 일어날 일이지.”

“네?”

“아무튼 잘 찾아봐.”

장춘자 계장의 뚱딴지같은 말에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일 일어날 일이라니…… 그건 결국 미래를 예언해야 한다는 뜻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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