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2월
강원도 화천, 155마일 휴전선이 동맥처럼 동서로 뻗어 나간 그곳의 겨울은 계절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1993년 12월의 밤바람은 살갗이 아니라 뼈를 파고들었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잠긴 철책선 앞에서 숨을 죽였다. 내 입김마저 적에게 발각될까 두려운 밤이었다.
열상감시장비(TOD)의 녹색 화면 위로 희미한 열점들이 어른거렸다. 또다시 그들이다. 수십 명의 북한군. 그들은 기계적인 정교함으로 남하했다가, 새벽안개가 피어오를 무렵이면 거짓말처럼 북으로 사라졌다. 매일 밤 반복되는 그들의 침묵 도발. 우리는 그것을 자조 섞인 목소리로 ‘전쟁 연습’이라 불렀다.
봄이 오면 전역이었다. 하지만 철책의 공기는 전역 신고서보다 전쟁 개시일에 더 가까워 보였다. 흉흉한 소문은 산안개처럼 부대 전체를 휘감았다. 전역 연기, 혹은 개전. 8명의 분대원 중 최고참인 나, 106mm 무반동총 분대장의 어깨는 무거웠다.
우리의 임무는 단순하고도 잔혹했다. ‘유사시 탄 장전, 적 벙커 파괴. 1km 전방 벙커까지 2분 내 주파.’ 살기 위해, 혹은 죽이기 위해 우리는 뛰었다. 비번인 날에도 폐가 터질 듯이 벙커를 향해 달렸다. 말수가 줄어든 분대원들의 눈동자엔 이미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날 밤이었다. 적막을 찢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때렸다. “웨에에에에엥!” 비상벨. 생각이라는 과정은 생략되었다. 본능이 몸을 일으켰다. 침낭을 박차고 나가는 내 몸엔 군복 대신 한겨울의 냉기만이 감돌았다. 팬티 바람. 수치심 따위는 사치였다. 거친 산비탈을 내달렸다. 얼어붙은 흙바닥이 발바닥을 찔렀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 2분 후, 나는 벙커에 도착했다. 내 뒤로 부사수가 짐승처럼 헐떡이며 따라붙었다.
“개방!”
폐쇄기를 열고 1미터 길이의 육중한 탄두를 약실에 밀어 넣었다. 손끝이 얼어 감각이 없었지만, 이마에선 뜨거운 땀방울이 흘러내려 눈을 찔렀다. 깍지를 낀 손바닥을 격발기에 올렸다. 이제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때였다. 부사수의 무전기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상황 종료. 상황 종료. 상황 종료!”
국방부의 기습적인 실전 대비 태세 점검이었다. 안도의 한숨 대신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 손은 여전히 차가운 쇠붙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155마일 철책선 전역을 통틀어, 실탄을 약실에 밀어 넣고 조준까지 마친 사수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잠시 후, 벙커로 들이닥친 사단장 옆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긴 코트를 입은 그는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지도, 경례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눈빛으로 팬티 바람의 나를, 살기 등등하게 탄을 장전한 나를 유심히 응시했다. 나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차가운 눈빛의 사내를, 5년 뒤인 1998년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20년의 세월은 화천의 눈보라를 서울 도심의 미세먼지로 바꾸어 놓았다. 2014년 어느 오후 4시, 서울중앙지검 조사과 사무실. 나는 이제 총 대신 볼펜을, 106mm 포탄 대신 수사 기록을 다루는 검찰 수사관이 되어 있었다.나른한 오후의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계장님, 사건 배당되었습니다.”
“가져와.”
이영호 수사관이 내려놓은 묵직한 서류 뭉치. 그것은 누군가의 억울함이자, 피 묻은 절규였다. 고발장 맨 앞장에 적힌 이름들을 훑어내렸다.
- 고발인: 유숙자 (60대 여성)
- 피고발인: 모아통신, 우리정보통신, 한국정보통신 (CCTV 설치업체)
단순한 업체 간의 알력 다툼이 아니었다. 기록을 넘기던 내 손이 멈칫했다. 활자들 사이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오는 듯했다.
사건의 시계는 2014년 4월 7일 밤 12시로 되돌아갔다. 우남구의 어두운 골목길. 집으로 향하던 한 여대생이 증발했다. 어머니 유숙자 씨는 돌아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동선을 추적하고, 수십억의 혈세를 들여 설치했다는 최첨단 방범용 CCTV를 확보했다. 범인을 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니터에 뜬 화면은 절망 그 자체였다. 흐릿한 픽셀 덩어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여대생을 낚아채는 장면은 찍혔으나, 그것이 누구인지, 차 번호가 무엇인지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첨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설치된 그 기계들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눈을 감아버린 셈이었다. 기준치 미달의 불량 제품들.
“화질 불량. 신원 확인 불가.”
수사 보고서에 적힌 이 짧은 문장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경찰이 흐릿한 화면 속에서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4월 14일, 강원도의 어느 차가운 저수지 위로 여대생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떠올랐다.
유가족은 경찰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납치 직후 며칠간은 피해자가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어머니 유숙자 씨의 통곡이 고발장 너머로 들리는 듯했다.
‘그 기계만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그 눈들이 범인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더라면, 내 딸은 지금 내 곁에 있었을 텐데.’
20년 전, 철책선에서 내가 장전했던 포탄은 적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울 한복판, 시민을 지켜야 할 ‘전자 눈’들은 먹통이 되어 무고한 죽음을 방관했다. 어머니가 CCTV 업체들을 상대로 고발장을 던진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딸을 죽게 만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피맺힌 복수였다.
나는 핸드폰을 책상 위에 던져두고 기록을 다시 폈다. 1993년 그날 밤, 벙커로 달려가던 그때처럼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터는 검찰청이고, 나의 무기는 이 수사 기록이다.
나는 이영호 수사관을 보며 나직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