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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N Sep 27. 2016

연장선

내 인생의 길이가 조금 늘어난 듯하다.

며칠 전 지인과 백화점에 갔다.

엄마의 칠순잔치 때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서 간다고 하니 흔쾌히 동행해 주겠다 했다.

난 백화점 쇼핑도 십여 년만인 데다 동행을 한 경우는 정말이지 기억도 안 난다.

그동안 난 간단히 필요한 것만 인터넷 쇼핑으로 해결해왔다.

백화점은 여성복은 20대 영캐주얼 40대 미시 브랜드 정도로 나뉘어 있었다. 

잘 모르고 20대 영캐주얼에 두리번거리다 작은 사이즈에 내가 살쪘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내 나이를 실감하고 내 몸을 바로 보고서야 한층 더 올라갔다.

그제야 아 이런 건 맞겠다 싶은 게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브랜드 이름인 데다 익숙한 디자인이 보였다. 

바로 인터넷으로 잘 나간다는 브랜드가 입점되어 있던 것이었다.

 지금 왜 다리 아프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해보게 만들었다.

질감이나 사이즈를 실제로 내 몸에 비교해볼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이런 브랜드가 입점돼있다면 굳이 백화점이라고 찾아와야 할지 모르겠다. 다양한 브랜드를 돌아다녀도 비슷한 디자인 색상들로 똑같은 마네킹에 걸려있는 것이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명품 코너는 아예 쳐다도 안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릴 땐 일명 돈 좀 벌었을 땐 고민 없이 vvip라운지에 매니저가 코디된 옷을 갖다 주면 그냥 그대로 맞고 괜찮다 싶으면 사가지고 집에 갔었다. 지금 난 온 백화점을 가격 비교하느라 질감 보랴 디자인 보랴 돌고 있다.

기분이 다운될 때쯤...

"액세서리를 금밖에 못한다 해서 알아보니 시세가 엄청 비싸더라"

2층 액세서리 코너를 지나 칠 때쯤 작게 흘리듯 한 말이었다.


난 그냥 8층 세 일하는 곳에 가서 블라우스 1+1을 사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냥 옷이고 쇼핑이고 다 귀찮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잡은 손이 좋았다.

내가 알레르기 난다는 것도 기억해주고 내 생각하며 무엇인가 혼자 고민했다는 말 한마디에 눈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쉽게도 모임 때문에 오래 같이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

'뭣이 중한디' 요즘 뜨는 유행어인데... 그 말이 생각났다. 옷이고 쇼핑이고 다 귀찮아졌다.

지금 내 생각해주는 사람.

잡은 손에 체온과 사랑을 느끼고 싶기만 했다. 그게 내가 갈구했던 것이었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마주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 존재만으로... 액세서리고 옷이고  다 필요 없다. 마음만으로 충분하다.


43%란 살 가망성이란 수치 앞에 온 몸을 떨던 시간이 있었다. 곁에 아무도 없고 혼자 수술방을 들어가며 '이렇게 혼자 들어갔다 죽어서 나오면 진짜 내 인생은 끝일 거야...'생각했다.

날 그리워하고 죽어서도 기억해줄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인생의 연장선 같단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살아있을 때도 중요하지만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면 진짜 끝이구나-라고.


이 사람은 내가 죽었을 때 아파하고 기억해주고 그리워해 줄까...

말 한마디에 내 인생이 조금 늘어나고 살만하다 생각하는 이 단순함.


그동안 왜 그리 숨어만 지냈는지...

그 시간이 있었기에 소중함을 알았는지도 모를 테지만 요즘 정말이지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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