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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N Oct 20. 2016

무채색 옷장

올 가을은 나에게 색 찾아주기

날씨가 서늘해져서 옷장 정리를 했다.

내년 4월에 이사 예정이라 반팔 옷을 이사 갈 때 바로 가져가도록 박스에 잘 넣어야지.

작은 아이의 반팔 옷 중 작은 옷은 따로 챙겨놓았다. 동내 친구 아들내미한테 물려줄까 해서인데..

우리 아인 여자임에도 옷은 다 남자 옷 같으니... 에혀.

하긴 애 스타일을 존중해서 내가 사줬으니 애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싶다.

내 옷도 꺼내본다. 살이 올라서 점점 작아지는 옷.

이것도 이것도...

하나같이 입을만한 크기가 아닌 옷들...

큰아이를 부른다. 아이에게 쌓인 옷에서 네가 입을 만한걸 고르라 했다.

아이는 후드티와  알록달록 그나마 캐릭터나 밝은 생상 위주로 고른 뒤 자기 옷장에  걸어둔다.

남은 옷을 보고 있자니 참 기분이 묘하다.

작년에 그래도 이쁘다고 샀던 옷들인데 일 년 만에 헌 옷 분리수거함에 버리려니 아깝다.


하나하나 다시 보게 된다.

그래도 예전엔 이런 옷으로 가구나 가전제품 덮개로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했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귀찮아서 하기 싫다.

아깝다고 다른 사람 준다는 것도 옛말이지 요즘은 잘못 줬다간 욕먹기 딱 좋다.

이 옷은 가격이 얼만데... 이 옷은 선물로 받은 건데... 이 옷은 아직 쓸만한데...

아까워서 다시 옷장에 걸린 것도 여러 벌.

그렇게 고민 끝에 빼고도 남은 옷.

애들 옷도 내 옷도 두 박스는 채워진다.

살을 빼야지... 에효~

매 해마다 버려지는 옷을 보면 작년에 어떻게 입구 다녔나 싶다.

그래서 옷을 살 때쯤은 내년에 또 입겠어... 하며 쌈직한 가격에 무난한 디자인 옷을 사게 된다.

그렇게 나만의 색깔이 없어지고 무난한 무채색의 내가 돼가고 있었다.

어릴 때 이건 딱 내 거다! 하며 길을 가다도 눈에 띄던 옷이 걸려있음 샀던 나인데...

지금은 어느 옷장이나 걸려있을 법한 옷들로 가득이다. 그러니 디자인보다 맞냐 안 맞냐로 옷을 쉽게 버리게 되는 것 같다.


무채색이 돼버린 게 옷뿐만이 아니니까...

나도 나 자신도 점점 색이 없어지고 늘어나고 바래져가는 느낌에 버려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나이 들면 또는 엄마들은 다 그렇게 산다고...

오히려 평범치 못하고 튀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색 없이 어우러짐이 편하고 좋은 게 나이 먹으며 자연스러운 게 아니냐고들 한다.


그게 맞는 걸까?

알록달록 자기만의 색으로 모이게 되면 더 재미있기도 독특하기도 그래서 편안하면서도 기대가 되는 그런 사람들이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럼 더 자신을 가꾸고 더 인생을 계획하고 더 기대라는 걸 하면서 나이라는 핑계도 살쪘다는 핑계도 이유가 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버려질 옷이 담긴 박스를 구석에 치우고 가을 겨울 긴 팔 옷도 꺼내보았다.

역시나 작아져있는 옷.

또 큰 애와 작은 애를 불렀다.

일 년 만에 훌쩍 커버린 두 애가 입던 옷들의 반이 버려지고 내 옷에서 몇 벌을 입겠다며 가져갔다.

나도 맞겠다 싶은 옷을 골라 옷장에 걸어두고 옷장문을 닫으려는데 또 한숨이 나온다.

어두운 검정, 먹색, 회색.... 어두침침한 것이 탁한 무채색 옷만 가득이다. 디자인도 정말 어쩜 이리 비슷한 옷들이던지...


점점 나이가 드는 건지...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건지...

점점 무뎌지는 건지...


창 밖의 나무만 봐도 단풍이 든 잎사귀 색상이 수십 가지인데...

올해 유행하는 색은 와인이라든데...

멍하니 걸어둔 옷을 보다가 안 되겠다 싶었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와인색 옷 하나 장만해야지...

올 가을은 나에게 색을 찾아주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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