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고가 말라야 철이 든다

아주 보통의 가난

by 이지은

성인이 되어 집을 나간 뒤, 나는 오랜 시간 가난을 겪었다. 바퀴벌레가 내 몸을 타고 흐른 적도 있었고, 겨울엔 보일러가 얼어붙어 난로를 껴안고 엉엉 울기도 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건 오롯이 ‘젊음’뿐이었던 어린 나에게 사는 것은 매일이 도전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나의 가난은 ‘아주 보통의 가난’이 됐다월세를 전세로 바꾸고, 지하 상가에서 보세 옷을 사며, 저렴해도 따뜻한 밥도 가끔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생에서 직장인이 되자,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2025년 기준, 월급 세후 220만 원 받는 직장인에게 ‘먹고 산다‘는 것은 여전히 구멍 뚫린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일과 같다. 물을 퍼내도, 배는 쉽게 가라앉았다.


서른 살이 넘자, ‘성실한 사람’ 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담아 청약을 넣고, 적금도 붓고, 신용관리도 시작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성실하지만 가난했다.


청년도약계좌 70만 원, 주택청약 10만 원, 적금 60만 원, 주식계좌 20만 원, 보험과 공과금, 교통비 등 고정비 20만 원을 빼면 남는 건 딱 40만 원. 나는 이 40만 원으로 한 달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 안에는 경조사비, 품위 유지비, 사치비, 동창회, 그리고 삶의 체면이라는 이름표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어느 순간 친구 생일에 인사 한 통도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돈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지출이 지금 정말 필요한 걸까?”

“이 돈을 써서 이번 달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월급이 들어오면 신나서 쓰곤 했고,

통장은 금세 텅 비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 돈과 쓸 돈이 다르다는 것을.

통장에 남은 2만 원이 속삭였다.

“지금, 진짜 필요한 게 맞아?‘


어느 날, 휴대전화 요금 납부일이 다가왔다. 잔고는 바닥이었고, 카드 결제일은 코앞이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가장 저렴한 데이터 요금제로 바꿨다.

데이터를 다 쓰면 현저히 느린 속도에, 어딘가 마음 한 구석도 허전했다. 그 순간 알았다. 절약은 이렇게 구석구석, 작고 불편한 선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또 다른 날,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이 있었다.

조촐한 축의금조차 내기 버거웠다.

결국 마음만 담아 카카오톡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정리하게 되었다. 시간과 만남, 그리고 작은 선물조차도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절약하게 된 건, 남편의 영향이 컸다.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와 주말마다 배달을 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물 한 병 사서 마시지 않았다. 절약과 저축, 근검절약이 그에게는 습관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때로 안쓰러웠고, 때로 나에게 무거운 기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시댁식구도 마찬가지였다. 여행갈 때 휴게소에 도시락을 싸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보통은 버터 냄새 솔솔 나는 알감자며, 구수한 호두과자를 기대하고 들어가는 곳인데 말이다. 다른 여행객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 순간, 시댁에서 싸온 김치볶음밥을 꺼냈다. 시어머니는 뒤이어, 싸온 믹스커피를 타며, ‘나는 커피 값이 제일 아깝더라.’ 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날, 김치볶음밥을 씹으며 생각했다.

‘결혼 생활, 쉽지 않겠구나.‘


저축이 늘어나는 만큼, 내 안에서는 ‘불편하다’는 감정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마음 한켠에서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아닌데’라는 불만과 초조함이 자라났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조용히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이 모든 게 우리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다”라고 말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잔고 대신 체면을 내려놓으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 돈이 모이고 모여 정말 필요한 곳에 지출이 되기 위해 현재는 참고 인내하고 있다.


일 년 전, 신혼여행으로 포르투갈에 갔을 때 투어 가이드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대부분이 외식 대신 집에서 만든 집밥을 먹고,

돈이 안드는 취미를 한다고. 주말에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공원에 앉아서 독서를 하고,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삶을 즐긴다고.


그동안 나는 어쩌면 소비에서 너무 많은 행복의 의미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렸을 적 참아왔던 가난에 대한 욕망이자 반발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의 방식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어느 순간 ‘소비되지 않는 행복’을 찾고 있다.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 같은 소리일지는 몰라도, 돈이 많지는 않아도 분명 행복한 길이 있다고 아직까지는 믿고 있다. 가난 때문에 서로를 미워한 부모님과는 다르게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실 어른이 되서 제일 짜릿한 건 돈을 벌고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되는거다. 우리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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