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알게되는 치과괴담
희뿌연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단맛 없는 박하 한 조각이 입 안에서 천천히 녹는 듯한 향.
그 냄새는 늘 정면에서 날아오지 않는다. 기다란 복도를 돌아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제야 슬며시 스며든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긴장한다. 어릴 때처럼 울지는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울고 있다.
플라스틱 장갑을 낀 손이 내 턱을 잡고, 번뜩이는 금속 기구가 내 입안으로 들어올 때면 나는 입을 다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입을 벌리는 순간부터, 고통은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도 치과에 가는 날이면 아침부터 괜히 조용해진다.
마음 한쪽에 불쾌한 두려움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진료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잡지를 들춰보지만, 눈은 글자를 읽지 않고 손은 자꾸 입가로 올라간다.
그날따라 유난히 이가 시린 것도 같고, 턱관절이 삐걱대는 느낌도 든다.
긴장은 과거를 소환한다.
어린 날, 울음을 꾹 참으며 손에 쥔 휴지를 꽉 움켜쥐고 앉아 있었던 기억.
서른을 넘긴 지금, 특별히 아픈 데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치과만은 예외다.
충치, 이시림, 치아 깨짐, 어금니 통증.
그 어떤 병원보다도 자주,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되는 곳.
아무 이상 없어 보여도 진료실에 들어가면 꼭 어딘가 문제가 생겨 있다.
치과 의사는 언제나 조용히 말했다.
“이건 좀 진행이 됐네요.”
“신경까지 갔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은 번역하면 이렇다.
“당신의 통장은 위험합니다.”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진료 후 정산이다.
치료는 아팠지만, 계산은 더 아프다.
치아 하나당 치료비가 10만 원에서 시작해 50만 원, 100만 원까지 뛰어오르고,
잇몸까지 건드리면 200만 원은 기본이다.
성인의 치아는 대략 서른두 개.
모든 치아가 각자의 가격표를 달고 있는 셈이다.
직장 상사 중에는 임플란트를 네다섯 개 한 사람도 있었는데, 치료비만 수천만 원이었다고 했다.
이가 아플 때 짜증이 나는 진짜 이유는 고통도, 귀찮음도 아니다.
돈이다. 그저, 돈.
그래서 나는 치아 하나하나가 말썽 부릴까봐 더 예민해졌다.
밤에 자다가 이를 갈지는 않는지 확인하고,
카페에서 얼음이 씹히는 아메리카노는 피하고,
딱딱한 음식은 조심스럽게 잘라 먹는다.
치아를 아끼는 건 내 건강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치료비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다.
치아는 수명이 40년 남짓이라던데,
정말 40년마다 새로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그런 기술을 개발한다면, 나는 연구비를 월급의 10%까지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유튜브에서 ‘올바른 양치법’을 찾아보고,
‘치실 사용법’, ‘잇몸 관리 루틴’, ‘어금니 전용 칫솔 추천’ 같은 영상을 챙겨본다.
그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양치질할 때 ‘치카치카’ 소리가 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조용해야 한다고 했다. 양치는 고요한 예술이었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세요.”
“보석을 세공하듯, 부드럽게 잇몸을 닦으세요.”
“치아의 가치는 다이아몬드와 같습니다.”
거울 앞에 선 나는 어느새 입을 벌리고 칫솔을 돌리는 유인원이 되어 있었다.
기계적인 손놀림, 어색한 팔꿈치 각도,
30년 가까이 반복해온 습관을 고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피곤했다.
진화는 이렇게 더디고, 생활은 늘 낯설다.
살아가려면 해야 하는 일들 중, 그리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하는 일.
칫솔질 하나 마음 대로 되지 않으니,
세상 살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