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
도심을 벗어나 바닷가를 달리는 차 안,
셀프 인테리어로 꾸민 집,
주말 오후, 아이들과 쿠키를 굽는 부엌.
어릴 적 내가 그리던 어른의 삶은 그렇게 그려졌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갖게 되는 것들처럼.
차도, 집도, 삶의 안정도.
그런데 서른이 된 지금, 내게는 집도 차도 없다.
당연할 줄 알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몇 해 전, 중고차를 샀다.
출퇴근이 편해졌고, 잠깐은 어른이 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유지비는 생각보다 컸고,
보험료는 버거웠으며,
도시에선 주차 공간이 늘 없었다.
차는 자유가 아니라 짐에 가까웠다.
결국 팔았다.
집은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 없다.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작은 오피스텔에 살았던 적은 있다.
몸은 누일 수 있었지만, 마음은 머물지 못했다.
언제든 계약이 끝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늘 떠날 준비를 하며 살았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단순했다.
집은 많았고, 돈은 없었다.
버팀목 대출이 가능한 매물은 드물었고,
융자가 없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런 조건을 내세우면
중개인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고,
집주인은 ‘조건이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어디에도 환영받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백만 채의 집이 있는 도시에서
단 한 채도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상실감이었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현실의 수치들은 내 가능성을 지웠고,
앱을 끄고 나면 허공에 걸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엔 구청 사이트에서 청약 순위를 확인했고,
또 어떤 날엔 통장 잔고를 보며 ‘내가 뭘 할 수 있지?’ 되뇌었다.
가끔은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보러 다녔다.
곰팡이 냄새가 배인 벽지, 벽 하나 건너 좁은 골목.
“여기, 2억 초반이면 들어가요. 융자 좀 있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이 집에서 살게 될 미래를 선뜻 그릴 수는 없었다.
도시에선 ‘살 수 있는 집’과 ‘살고 싶은 집’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고, 잔인했다.
가끔 강남이나 한남동을 지날 때면
그 안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는 한 번도 그 창문 너머의 세상에 속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친구 중엔 청약에 당첨된 이도 있고,
부모 도움으로 집을 장만한 이도 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모두가 아닌 것 같은 소수는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닌지
묻고 또 물었다.
슬픔보다는 체념이 가까웠다.
“그건 애초에 나를 위한 세상이 아니었겠지.”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방어였다.
나를 탓하지 않기 위해,
이 세계가 얼마나 불균형한지를 잊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였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집을 사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포기였고, 어쩌면 선택이었다.
빌려 사는 삶을 택했다.
‘내 집 마련’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기엔,
내 삶엔 더 많은 것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유연한 미래를 그려가기 위해
우리는 조금 다른 무게를 선택했다.
가끔은 이 선택이 불안했고,
가끔은 누군가의 ‘집들이 초대장’이 마음에 찰과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차 한 잔을 내리고
창밖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괜찮게 느껴졌다.
2025년 7월, 부동산 대출 규제는 또 한 번 강화되었다.
한도는 줄었고, 조건은 까다로워졌다.
이제는 대출조차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도시는 서로의 집을 짓고, 부수고, 계산하며 굴러간다.
누군가는 두 번째 집의 계약을 앞두고,
누군가는 첫 번째 열쇠조차 쥐지 못한다.
그 간극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타이밍, 배경, 운의 문제다.
나는 오늘도
내가 머물 흑돌 하나의 자리를
조용히, 조심스럽게 찾아가는 중이다.
머무는 일에 실패하지 않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어딘가의 창문 너머에서
이 도시를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