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지 못한 종이비행기
어릴 적,
사과나무에 장래희망을 적어 매다는 날이 있었다.
나는 ‘화가’라고 썼다.
색연필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혼자 잘 놀던 아이였고,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 다음 해엔 ‘수의사’가 되었다.
버려진 강아지를 데리고 온 날,
엄마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너 또 데려왔어?”
나는 울면서 말했다. “안 데려오면 안 될 것 같았어.”
그땐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꿈은 마음만 먹으면 접고, 펼치고, 다시 날릴 수 있는
가벼운 종이비행기 같았다.
어디로 날아갈지는 몰라도,
일단 날려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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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종이비행기 위엔 자꾸만 뭔가가 덧붙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표정, 성적표의 숫자, 입시 설명회의 어조.
어느 순간부터 꿈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더는 자유롭게 접을 수 없었고,
접더라도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 집엔 미술학원에 보낼 여유가 없다는 걸.
친구들과 같이 미술학원 앞을 지나던 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나 미대 안 갈 거야. 그림은 취미로만 할래.”
그게 진심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웃으며 말했을 뿐이다.
수의사가 되는 일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수학 시험지를 볼 때마다 눈앞이 하얘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문과를 택했다.
그 후로는 내가 ‘되고 싶은 것’보다
‘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월급 220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출근길 지하철 안,
어릴 적 접었던 종이비행기가
자꾸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땐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었던 꿈이,
지금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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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한때의 꿈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화가는 아니지만,
때때로 글을 쓴다.
수의사는 아니지만,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매일 말을 건다.
그림은 이제 내 안에서 천천히 잊혀지고 있지만,
무언가를 ‘창작한다’는 감각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어릴 땐 꿈이 내 삶을 데려가 줄 거라 믿었다.
지금은,
내 삶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나면
그 안에 다시 ‘꿈’이 깃들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종이비행기는 이제 더 이상 가볍지 않다.
두꺼운 종이 위에 현실과 조건이 잔뜩 적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비행기를 한 번 더 접어보고 싶다.
어디로 날아갈진 몰라도,
언젠가 다시 멀리 날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
⸻
어릴 땐 뭐든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뭐든 될 순 없지만,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순 있다는 것.
그 믿음 하나만으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또 하나의 종이비행기를 천천히 접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