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도, 꿈도 모르겠는데요

그냥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어요

by 이지은


적성이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을 아직도 모르겠다.

무엇을 잘하는지도,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애초에 내 안에 그런 게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다.


돌아보면, 나는 늘 ‘해야 하는 일’에 먼저 반응하며 살아왔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내는 데 익숙했고, 그 안에서 잘하거나 좋아하게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되지 않으면, 재능이 아니다.”

이건 감정보다 결과를 먼저 따지는 내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로 막았던 말이다.


최근 친구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웹소설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하루 열 시간을 글쓰기에 쏟는다고 했다. 흥미를 좇아 용기 있게 방향을 튼 모습은 분명 멋졌지만, 솔직히 나는 축하보다 걱정이 앞섰다.

‘정말 가능할까?’

‘왜 퇴근 후나 주말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예술은, 일정한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생계가 되지 않는다. 수입 없는 시간을 견디는 건 낭만이 아니라 체력이고, 현실이다.



남에게 냉정한 만큼, 나 자신에게도 관대하지 못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잘하고, 뭘 좋아할까.

뾰족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쩌면 너무 오래, 나 아닌 타인의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미술학원조차 다닐 수 없을 만큼 우리 집이 가난하단 걸 알았다.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수학을 포기한 순간 그 꿈은 사라졌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걸 묻기보다, 당장 가능한 선택지를 좁혀온 결과, 나는 무색무취의 어른이 되었다.


지금껏 내가 해온 건 수능 공부, 취업 준비, 그리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일. 그게 다였다.

스스로를 탐색하거나 휘젓는 일은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



굳이 좋아하는 걸 찾아보자면, 나는 잘 먹는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진지하다. 그리고 글쓰기도 좋아한다. 다만 잘하진 않는다. 그럴듯한 문장을 쓰는 것과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무엇인가.

가장 가까운 대답은

“돈 많은 백수.”


10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수영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 빨래를 널고,

네일아트를 받거나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후엔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저녁 무렵엔 강아지와 산책을 나간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렇게 하루를 채운다.


하루에 확실한 스케줄이 두세 개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충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백수라 부르겠지만,

내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내 의지대로 쓰는 삶,

그 자체가 가장 큰 ‘적성’처럼 느껴진다.



나는 살면서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해왔다.

선택의 여지는 좁았고,

대부분은 타인의 기준에 반응하는 방식이었다.

그 안에서 익숙해졌고,

익숙함은 곧 체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요즘 들어 문득,

아직 내 안에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성도, 꿈도 모르겠다는 말은

사실상 “지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다운 것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늦었더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는 적성 없는 삶을 불안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적성은 정답이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 방향을 스스로 그려나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길 어딘가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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