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인숙은 그야말로 평범한 아줌마였다.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것도 아까워, 늘 믹스커피와 종이컵을 가방에 챙겼고,
시장에서 열무 한 단을 놓고 이백 원을 깎으려 실랑이하곤 했다.
억척스레 버틴 세월이 어느덧 삼십 년.
남편 인섭과 함께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다.
작지만, 인숙에겐 기념비 같은 승리였다.
신혼여행은 꿈도 못 꿨고, 살림은 늘 빠듯했다.
막내였던 인섭은 양복 한 벌 없이 결혼식장에 섰고,
인숙은 남편 대신 빚을 떠안았다.
시어머니 병 수발로 생긴 빚이었다.
큰형이 책임진다던 말은 금세 허공으로 흩어졌고,
채무는 조용히 인섭 몫이 되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인섭은 단 한 번도 형을 원망하지 않았다.
명절이면 고향 대신 삼겹살과 소주로 저녁을 대신했다.
그게 인섭 식의 저항이자, 감정을 감추는 방식이었다.
무뚝뚝했지만, 그는 늘 조용히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둘은 자주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증거는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상처 입을 만큼 예민했고,
다퉈봤자 남는 건 더 깊어진 피로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침묵이 유일한 평화였다.
그 와중에도 인숙은 딸 하나를 무탈히 길러냈다.
아끼고 참으며,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라지 않게.
그것이 인숙의 방식이었다.
인섭은 삼십 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햇볕을 정통으로 맞고, 시멘트 먼지를 들이마시며,
쇠파이프와 욕설이 오가는 곳에 서 있었다.
“나중에 갈게.”
그는 아프다 말하는 걸 유난히 꺼렸다.
병원은 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여긴 듯했다.
그러다 여름 한복판, 모래자루를 들던 중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응급실에서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간암 3기. 수술은 어렵다고.
인숙은 울지 않았다.
그저 병실 창문을 닦았다.
먼지가 끼어 흐릿해진 유리 너머로 공사장 크레인이 느릿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삶이 돌아가는 속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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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안은 점점 비워졌다.
인섭의 체온이 빠져나간 자리에, 침묵이 자리를 채웠다.
손등엔 검푸른 멍이 자주 생겼고, 머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빠졌다.
베개, 수건, 옷깃, 밥숟가락까지 머리카락이 따라붙었다.
며칠 뒤, 인섭은 스스로 머리를 밀었다.
거울은 보지 않았다. 면도기를 손끝으로만 더듬었다.
어느 날, 인숙이 물을 떠오고 병실 문을 밀었을 때,
인섭은 세면대 앞에서 민머리의 자기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어 있는 눈동자, 닫힌 입술.
인숙은 문을 닫지 않은 채,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뒤돌았다.
그 얼굴이 너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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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인숙은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 갔다.
잘게 다진 반찬과 정성껏 끓인 미음.
하지만 인섭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오지 마. 그냥 집에 있어.”
“조금만 있다 갈게.”
“됐어. 귀찮아.”
말은 짧고 건조했다.
인숙은 잠깐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은 국을 다시 데우고, 데운 물로 그의 발을 닦았다.
그의 발목을 감싸쥔 손에, 조심스레 힘이 들어갔다.
손등 위로, 주름진 피부가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의 마음속엔 오래전 병간호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빚까지 떠안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 기억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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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수정은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
병문안을 올 수 있었지만, 인숙은 끝내 부르지 않았다.
“시험 잘 봐. 아빠 곧 괜찮아지셔.”
그렇게만 말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밥을 지었다.
쌀을 씻는 손이 유난히 차가운 날들이었다.
밤이면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자리를 피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다음 날을 무사히 시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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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 인숙은 머리를 길렀다.
까만 생머리 끝을 말아 올리고 인섭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 머리를 예쁘다 말한 적은 없었지만,
인섭은 밤늦게 돌아와 그녀의 무릎에 누웠다.
그런 방식으로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당신은 나랑 왜 결혼했어요?”
어느 날, 인숙이 물었다.
인섭은 담배 연기 사이로 중얼거렸다.
“열 번쯤 선 봤는데, 당신이 제일 예쁘더라.”
그 말 한마디로, 인숙은 삼십 년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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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인숙은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검고 윤기 나던 머리엔 흰 가닥이 제법 섞여 있었고,
염색 자국은 뿌리 부분에 선명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기 바리깡을 들고, 가만히 머리를 눌렀다.
한 올, 두 올,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거울은 마주보지 않았다.
오직 손끝만 믿었다.
천천히, 바리깡을 눌렀다.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조용히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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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인숙은 모자를 눌러쓰고 병실에 들어섰다.
인섭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는 동안, 둘 사이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인숙이 모자를 벗었다.
잠시, 공기가 멎었다.
인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손끝이 덜덜 떨렸다.
“괜찮아. 우리 이제 좀 쉬자.”
인숙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손놀림엔 흔들림이 없었다.
인섭은 울었다.
소리 내는 법도, 눈물 흘리는 법도 몰라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뿐이었다.
작은 병실 안에서, 아무도 울지 않았지만
모두가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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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인섭은 인숙의 손을 자주 잡았다.
말라가는 손가락, 힘 빠진 손바닥.
인숙은 그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딸 수정의 손을 처음 잡았던 날처럼,
따뜻하게, 단단하게.
밤이면 간호사 몰래 얇은 이불을 깔고 그 옆에 누웠다.
등을 맞대고 숨을 나눴다.
그럴 때면 인섭은 낮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인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등을 내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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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병은 깊어졌고 인섭은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식사량은 줄었고, 몸무게는 두 자릿수로 내려갔다.
의사는 항암 치료를 중단하자고 했다.
남은 시간을 덜 고통스럽게 보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인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창문을 닦았다.
이번엔 눈물이 뚝, 떨어졌다.
얼룩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유리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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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나 같은 놈이랑 살아줘서.
당신 아니면, 누가 나 같은 놈이랑 살겄소.”
“고생 말고, 내 걱정은 접고,
수정이랑 여행도 좀 다녀오고…
당신 하늘로 올라오면, 내가 찾으러 갈게.”
그날, 인섭은 마지막으로 인숙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굳은살 박인 손이 이마를 천천히 스쳤다.
그 손이 내려갔을 때, 인숙은 눈을 감았다.
말없이,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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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인숙은 알았다.
인섭은 자신에게 대단한 운명이 아니었다.
수많은 고단한 날들 속에서
기적처럼 도착한, 단 한 사람이었다.
기적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다.
그의 손, 그의 숨, 그의 낮은 말들.
그 모든 날이, 인숙에겐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