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인간입니다만

by 이지은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게다가 두부보다 쉽게 부서지는 연두부 멘탈.

인절미처럼 말랑한 마음이라 누군가 조금만 당기면

나는 어느새 그 사람에게로 쭉 끌려가고 만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 오래 있으면 기가 빠진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어울릴 때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말을 잘하고 싶고, 눈을 맞추며 웃고도 싶지만

대부분은 듣는 쪽을 택한다.

말보다는 리액션, 주장보다는 공감.

나는 늘 한 발 뒤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부럽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고,

낯선 상황에서도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들.

회사에선 농담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고,

퇴근 후에는 함께 술 한잔 나눌 상대가 늘 있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세상은 조금 더 쉽게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형 인간으로서 사고형 사람도 부럽다.

나는 파도처럼 부서지기 쉬운 사람인데,

그들은 마치 인간 방파제 같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와도 요동하지 않고,

늘 묵묵하고 단단한 모습이다.

남의 말에 휘청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할 줄 아는 사람.

비난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나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마음이 쓰인다.

표정을 읽고, 눈치를 보고,

상대의 감정에 과하게 반응한다.

그 감정이 내 몫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언제나 내 책임처럼 껴안는다.


어릴 적 나는 더 내성적이고 예민했다.

뚱뚱하고 말 없던 초등학생.

친구도 거의 없었고,

팔에 있는 커다란 점이 콤플렉스였다.

항상 팔을 굽혀 다녔다.

그 점 하나가 내 존재 전체를 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를 부끄러워했고,

그 감정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 안에서 나는 조용한 직원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싫은 말을 잘 못 하고,

할 수 없는 일을 떠맡는 경우도 잦다.

누구와 싸운 것도 아닌데,

하루가 끝나면 이상하게 무기력하다.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쓴 하루가

고스란히 내 안에 쌓인다.


그런 나를 유일하게 풀어주는 존재는 남편이다.

밖에서는 말수가 적은 나지만,

남편 앞에서는 유난히 말이 많다.

하루 종일 삼켜온 말들을

그에게는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는 묵묵히 들어주고,

나는 그의 앞에서 비로소 ‘말하는 사람’이 된다.

그 앞에서는 내 감정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나 자신이 답답하다.

왜 이렇게 소심할까.

좀 더 단호하게 거절하고,

좀 더 내 뜻을 또렷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실은 ‘내향형 인간’이라는 말이

그럴듯한 포장일 뿐,

나는 그냥 ‘눈치 보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상상해본다.

외향형 인간이 된 내 모습을.

자신 있게 말하고,

사람들 앞에서 편하게 웃으며,

내 기분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나.

눈치 대신 자존감을 먼저 챙기는 나.


그 상상은 때로는 멀고,

어쩔 땐 손닿을 듯 가까워진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안다.

모든 외향형이 당당한 것은 아니고,

모든 내향형이 약한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내가 가진 속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나를.

마음에 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한 번 품은 사람은 오래도록 아끼는 나를.


나는 오늘도 내향적인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여전히 외향적인 나를 상상한다.

그건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유연한 내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사실 내가 바꾸고 싶은 건 성격이 아니라,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시선일지 모른다.

그게 사라진다면,

조용히 있어도

나는 나로서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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