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자의 초상
이십대의 나는, 조금은 뻔하지만 분명한 이상주의자였다.
하고 싶은 게 많았고,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현실의 그림자를 닮아가고 있다.
한때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영화 한 편을 찍는 상상을 밤마다 했다.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아, 세상의 불완전함을 색으로 옮기길 꿈꿨다.
‘복세편살’이라 말하며, 소란한 세상 속 조용한 안식처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서서히, 그리고 은밀하게 나를 바꿔놓았다.
회사의 회색 책상 앞에서 나는 오늘도 숫자와 마주한다.
보고서, 실수, 검토, 마감, 그리고 또 실수.
단 하나의 오차가, 누군가의 손실이 되기도 하니까.
불안은 퇴근과 동시에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밤, 전등을 켜기 전의 어둠처럼
그날의 일은 내 안에 은은하게 번졌다.
귓가에 남은 잡음처럼, 마음 한 켠에서 계속 울렸다.
‘나는 이대로 끝나는 걸까.’
그 문장은 생각보다 자주, 깊고 무겁게 나를 눌렀다.
그리고 어느 날, 조용히 알게 되었다.
일이 나를 견디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하루하루 마주하는 숫자들은 이제 무의미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손끝에서 생명을 얻고,
내 머릿속에서 질서를 만든다.
나는 일에 스며들었고,
그만큼 나도 변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상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을 감추고, 틈 없는 정확함을 좇으며,
삶의 리듬은 점점 ‘효율’이라는 기준으로 잘려나갔다.
이 변화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없었다.
세상은 감정보다 수치에, 여백보다 마감에 더 관대하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알던 나를 천천히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입맛이 바뀌고, 표정이 달라지고,
더는 좋아하지 않던 것들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이제 조금씩 깨닫는다.
꿈이란, 머릿속의 환상이 아니라
현실과 맞부딪히며 나를 단련시키는 ‘무기’라는 걸.
스무 살의 꿈이 하늘을 향한 풍선 같았다면,
서른의 꿈은 땅을 딛고 선 돌처럼 묵직하다.
가볍지 않지만, 쉽게 부서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다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