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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의 자유 10)

바람의 도시 Wellington, ‘소비뇽 블랑’과 물개 해변 남섬 북부

by Arista Seo

Po - ka- re-ka - re a - na Nga wai o Wa - ia pu

Whi - ti a - tu ko - e hi - ne Ma - rin – no a – na e

……


우리에게 ‘연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본래 마오리족의 구전민요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뉴질랜드 병사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해 70~80년대에 우리나라의 많은 가수들이 번안해 부르면서 인기를 끌었었다.


이 노래 가사에는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로투루아 호’에 사는 서로 다른 부족인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을 허락받지 못한 연인들의 노래인 것이다. 이런 가슴 아픈 애절한 이야기 외에 내가 이 노래를 기억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2013년 4월 17일 뉴질랜드 의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동성결혼 허용’

그때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사랑이 허락된 것이다. 그 순간 회의장 가득 이 노래가 번져갔다. 이때 나에게는 ‘동성결혼 허용’이라는 주제보다 성숙된 정치 문화의 장면으로 더 인상 깊게 노래가 각인되었다.


그토록 내게 인상 깊었던 역사를 가진 원기둥 형태의 건물로 된 국회의사당이 있는 도시가 오늘 우리가 가는 뉴질랜드의 정치, 행정 수도 웰링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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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리로 국립공원 내 '와카파파 홀팍'은 이렇게 숲 속에 캠핑 사이트가 있다

‘왕가누이 국립공원’을 오른편으로 끼고 ‘망가웨로 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서두르지 않고 시속 80km를 제한 속도로 생각하면서 갔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가다가 전망이 좋은 ‘look out’에서는 잠시 멈춰 경관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지며 이동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look out’에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는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가지고 있는 음식 중에 ‘김치라면’이 보였다.

‘외국인이 김치라면을?’ 신기한 생각에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오클랜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그의 필리핀인 부인이었다. ‘김치라면’에 대해 물어보니 오클랜드에서 사 가지고 온 것으로 평소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요즘 방송하는 한국 드라마와 인기 아이돌 가수의 이름을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떡볶이 같은 한국 음식은 물론 부인은 심지어 가볍게 몸을 흔들며 한국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오클랜드에서 평소에도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와 가요를 즐겨 본다고 한다.


한류 드라마, 한류 문화의 인기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매스컴에서만 듣던 한류 열풍을 이렇게 직접 경험해보니 실감이 났다. 한편으론 깊은 곳에서 뿌듯함도 은근히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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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팬인 뉴질랜드 의사와 필리핀인 부인
DSC_0214.jpg '망가웨로 강' 따라가는 길의 어느 Look out

오후에 도착한 웰링턴은 여행하기에 알맞은 맑은 햇살과 바람 한점 없는 좋은 날씨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웰링턴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섬으로 가는 페리의 운항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은 여행을 했는지……


웰링턴에 도착해 뉴질랜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테 파파 국립 박물관 Te Papa Tongrewa’을 제일 먼저 갔다. 마오리족의 유적을 중심으로 한 문화 유적들과 공룡 표본 등 자연 유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특별 전시회로 ‘중국 진시황 병마용’ 전이 열리고 있었다.

DSC_0246.jpg '테 파파 국립 박물관 1층 로비

박물관 앞이 웰링턴 시내 중심가다. 웰링턴 부두와 시내 중심지가 한눈에 내려 다 보이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워터프런트를 따라 걸었다.

부둣가에는 구경꾼을 의식해 멋진 자세로 철제 계단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다이버부터 시작해서 한 손으로는 아빠의 손을 잡은 채 다른 손에 쥐고 있는 솜사탕을 혀로 날름거리며 먹는 어린아이, 또래끼리 장난치며 자지러질 듯 까르르 웃어 대는 십 대 소녀들, 뜨거운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걸어가는 젊은 연인들,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며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중년의 부부, 여러 가지 자세를 잡아가며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느라 바쁜 여행객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다른 사람의 모습들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 시간 그곳에 있는 모두가 마음껏 1월의 맑은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 파란색 바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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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0264.jpg 부둣가 워터 프런트

케이블카를 타고 ‘웰링턴 식물원 Botanic Garden’을 옆에 두고 있는 정상에 올라 시내 중심지와 웰링턴 앞바다 전망을 감상하였다. 정상 옆에 있는 식물원은 크기가 7만 5천 평으로 다 돌아보기에는 너무 넓어서 일부 가든만 둘러본 후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왔다.

주차를 해 둔 곳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웰링턴 최고의 번화가 ‘쿠바 스트리트’를 걷게 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유럽풍 건물들에 둘러싸인 거리 모습에서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늘 예약한 ‘웰링턴 탑 10 홀리데이 파크’로 가기 전 동쪽에 있는 ‘마운트 빅토리아 전망대’를 들렸다. 좁은 골목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웰링턴 시내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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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와 정상에서 본 웰링턴
DSC_0286.jpg 웰링턴 보타닉 가든
부둣가 워터프런트
DSC_0333.jpg 마운트 빅토리아 전망대

웰링턴에서 남섬으로 가는 방법으로 큰 배인 페리를 타거나 작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페리는 ‘인터아일랜더 Interislander’와 ‘블루브리지 Bluebridge’가 있다. 배로는 3시간 정도 걸리며 ‘인터아일랜더’가 선발 업체이고 배도 더 크다. 대신 ‘블루브리지’는 가격이 조금 더 싸다. 작은 비행기는 13인승 세스나를 타고 낮은 고도로 25분 날아가는 방법이다. 페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싸다. 페리가 운항을 못하거나 차량이 없는 사람이라면 고려해 볼만하다.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인터아일랜더’ 페리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7시 30분 정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배가 굉장히 컸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타본 배 중에서 제일 큰 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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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용한 '인터아일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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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아일랜더 내부 레스토랑, 바 등'
DSC_0385.jpg 웰링턴으로 가는 '인터아일랜더'
DSC_0399.jpg 남섬이 가까워지면서의 풍경

지난 8일간 불의 섬인 북섬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얼음의 섬인 남섬에 발을 내디뎠다. 배를 타고 오면서 보니 남섬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더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섬들도 숲으로 울창한 초록색을 띠었다.


우리가 탄 배는 크기가 엄청 컸는데 배가 닿은 ‘픽턴 Picton’은 작은 마을이었다. 바다에 떠있는 요트와 작은 마을이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이 평화로운 한적한 휴양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DSC_0433.jpg 배에서 바라본 픽턴(Picton) 풍경

뉴질랜드는 세계 11위의 와인 생산국으로서 대표하는 와인 품종으로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이 있다.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을 ‘소비뇽 블랑’이라고 할 정도로 이 품종이 뉴질랜드 전체 화이트 품종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소비뇽 블랑’의 본토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남섬의 ‘말보로 Malborough’ 지역이며, ‘말보로’ 지역의 중심이 ‘브렌하임 Blenheim’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지역이다.

DSC_0446.jpg '브렌하임 Blenheim'의 작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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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하임'에 있는 도서관 겸 서점 내부 모습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하루를 빼고 매일 와인을 마셨다. 일단 가격이 싸서 좋았다. 하지만 와인의 종류가 너무 많아 어느 것이 가성비가 좋은 제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을 보고 있는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와인을 선택했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들이 추천해주는 와인이 제일 맛있었다.


뉴질랜드 전체에는 약 500개의 와이너리(Vineyard)가 있다고 한다. ‘브렌하임’에도 곳곳에 와이너리가 있었다. 우리도 그중 한 곳을 찾아가 농장을 둘러보며 시음도 하고, 그날 저녁에 먹을 와인을 사기도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와이너리에 모여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 문화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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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하임'의 와이너리 풍경

신생기에 생겨난 뉴질랜드는 대륙과 격리되어 있어서 토종 포유동물이 3종밖에 되지 않는다.

박쥐, 고래, 물개다. 이 중 물개를 우리는 이날 ‘카이코우라 Kaikoura’의 해안도로에서 원 없이 많이 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물개의 산란기여서 바다 해변을 보니 까맣게 어미 물개와 새끼들이 점점이 모여 있었다. 왜 유독 이곳에 모일까? 그 이유는 ‘카이코우라’ 앞바다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곳으로 심해 생물들을 수면 쪽으로 밀어내 먹잇감이 풍부해서라고 한다.

‘카이코우라’의 인구는 약 2천 명인데 이곳에 사는 물개는 5~6만 마리란다.

DSC_0514.jpg 카이코우라 해변의 물개들

석회석의 해변과 카이코우라 반도의 초록색 트랙을 일몰과 함께 감상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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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0594.jpg 카이코우라 해변과 반도 트랙

이제 본격적인 남섬의 출발이다. 과연 남섬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위대한 자연의 가슴에 안겨줄 것인가?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나 큰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이 날도 어김없이 ‘카이코우라 탑 10 홀리데이 파크’에서의 저녁 식사 시간에 ‘소비뇽 블랑’ 한잔을 하며 우리는 남은 여정에 대한 부푼 가슴들을 함께 나눴다.

DSC_0615.jpg 카이코우라 탑 10 홀리데이파크에서 옆 사이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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