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도시 Christchurch, 에메랄드빛 호수 Tekapo
"어! 이상하네…… 뒤에 오는 경찰차가 우리 세우라고 하는 거 같은데……”
몇백 m 전부터 우리 뒤에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따라오는 경찰차가 보였다.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세우지 않고 가는데 계속해서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때야 차를 길옆에 세우니 경찰이 창가로 다가왔다. 과속했다고 한다.
‘아이쿠! 뉴질랜드 과속 벌금 엄청 세다고 했는데…… 몰래카메라도 많으니까 조심해야 하고, 어디에 있다가 쫓아오는지 모르지만 위반하면 바로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럴 리가 없다. 속도위반 안 했는데……”라고 하면서
“80km를 넘지 않으려고 에이티, 에이티…... 를 중얼거리며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경찰 말로는 13km 전 지점에서 시속 100km가 찍혔다고 한다. 차에서 내리니 운전면허증을 달라고 해서 국제운전면허증과 우리나라 운전면허증을 줬다. 면허증을 본 후 경찰이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 일주일 됐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운전면허증을 나에게 돌려주면서 “제한속도 100km의 도로에서 캠퍼 밴은 90km가 제한 속도이니 꼭 지키라”고 하면서 “즐거운 여행하기 바란다.”라고 말하고 갔다. 뉴질랜드 경찰 진짜 최고다.
여행 7일째 북섬의 ‘로투루아 Rotorua’에서 ‘후카 폭포 Fuka falls’로 가던 길에서 생겼던 사건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우리 차의 속도는 90km를 넘긴 일이 없다.
여행 11일 차 남섬 여행의 이틀째가 시작되었다. 남섬은 북섬보다 도로가 더 좁게 느껴지고 공사하는 구간도 많았다. 특히, ‘카이코우라 Kaikorua’를 출발해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해안도로에서는 공사 구간이 자주 나타났다. 공사 구간은 일방통행 도로가 되어 잠시 정차를 한 후 기다렸다가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우리 뒤를 따라오는 차들의 수가 많아졌다. 갑자기 뒤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길옆으로 차를 세워서 뒤따라오던 차들을 다 보낸 후 차에서 내렸다. 이번에 만난 경찰관은 운전면허증과 렌트 서류 등을 다 꼼꼼히 본 후 우리 차에 올라와 인원 확인까지 하였다. 그런 후 “저속 차들은 길옆으로 양보 운전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교통 혼잡 유발로 벌금을 낼 수 있다”는 등 뉴질랜드의 교통규칙에 대해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이야기하고 갔다.
남섬 여행 초반에 현지 운전 요령에 대해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결과가 되었다. 그때부터 뒤따라오는 차들에게 할 수 있는 양보는 다 하면서 다녔다. 지금까지 보다 더 여유롭게 남섬의 자연으로 빠져드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1년 2월 남섬 최대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 Christchurch에 강도 6.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16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도심의 건물들이 심하게 붕괴되었다. 이때 시내에 있는 방송국과 고딕 양식의 대성당도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다. 얼마나 심한 피해였으면 지진이 발생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복구가 완전히 되지 않고 있었다. 나중에 당시 ‘크라이스트처치’ 시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에 통행이 금지되고, 군인들이 동원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런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로 갔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 이민자들이 만든 도시다. 그래서 영국 밖의 가장 영국스러운 도시라고 한다. 도시의 중심에 ‘에이븐 Avon 강’이 흐르고 있다. 에이븐 강은 빙하 물이 내려와 만들었고 이 강으로 인해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강물 위에서는 영국풍의 뱃놀이인 ‘펀팅 Punting’ (납작한 배 위에서 긴 장대로 배를 움직이며 강을 도는 뱃놀이)을 한다. 오래전 영국 케임브리지에 갔을 때 보았던 풍경과 매우 흡사한 풍경이었다. 영국 정통 신사풍의 복장과 모자를 쓴 사공이 배 위에서 긴 장대로 천천히 젓는다.
도시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곳곳에 있다. 그래서 크라이스트처치의 또 다른 별명이 ‘가든시티’이다. 이 가든 시티의 대표 공원이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헤글리 Hagley 공원’이다. 헤글리 공원의 중심을 에이븐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맑은 햇살을 받으며 영국스런 전원 분위기와 차분한 느낌을 주는 공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헤글리 공원 바로 옆에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중심가가 형성되어있다. 공원을 나와 영국풍의 ‘빅토리아 시계탑’을 본 후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예쁜 파스텔톤 건물들이 모여 상가를 형성한 ‘뉴 리젠트 스트리트’, ‘아트 센터’, 지진으로 파괴된 채 그대로인 ‘대성당’, 시내 17곳에 정차하면서 순환을 하는 전차 등.
북적대거나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의 예쁜 도시였다.
마침 우리가 시내를 걸을 때 곳곳에서 ‘2019 World Buskers Festival’이 열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공연하고 공연 후 관객이 모자에 감사 표시를 하는 ‘길거리 공연 축제다. 1994년부터 열렸다고 하니 26년째 하는 역사가 있는 축제다. 매년 1월 중순에 시작해서 약 2주 정도 진행을 한다고 한다.
이날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크라이스트처치 탑 10 홀리데이 파크’에서 숙박을 하였다.
다음날 ‘마운트 쿡산 Mt. Cook’으로 가는 길목인 빙하의 눈물, 영혼의 세탁소 ‘데카포 Tekapo 호수’로 향했다.
남섬은 축이 되는 ‘서던알프스 산맥’이 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중앙과 동쪽으로는 평탄한 지형의 ‘캔터베리 평야’가 형성되어있다. 이러한 지리적 형태가 남섬의 기후와 자연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었다. 뉴질랜드를 향해 호주 대륙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테즈먼 해를 건너오는 동안 습기를 잔뜩 머금게 된다. 습기 가득한 바람은 ‘서던알프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를 만나면서 비를 뿌리게 되며 이때 내린 비들이 ‘서던알프스 산맥’의 빙하와 만년설을 만든다. 비를 내린 후 산맥을 넘어온 바람은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이 되어 ‘캔터베리 평야’의 초원을 형성하는 기후가 된다.
오늘은 캔터베리 평야를 가로질러 ‘서던알프스 산맥’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날이다. 본격적인 장정이 시작되기 전 크라이스트 처치 외곽에 있는 ‘쿠키 타임’에 먼저 들렸다. 초콜릿 쿠키를 만들어 파는 곳으로 유명세만큼 맛과 종류가 다양했다.
서던알프스 산맥의 만년설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탁 트인 넓게 펼쳐진 평야를 달렸다. 얼마인지 모를 한참을 달리고 난 뒤 눈앞에 푸른 에메랄드빛 ‘데 카포 Tekapo 호수’가 나타났다. 빙하가 녹으면서 물이 흘러와 옥색의 호수로 만든 곳이다. 그리고 호수 너머로 멀리 만년설을 이고 있는 ‘마운트 쿡’과 ‘서던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그 풍경에 취해 호숫가에 앉아 한참 동안 멍 때리기를 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기를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했을 때 느껴지는 이 행복. 좋았다. 행복했다.
호숫가 옆에는 1935년에 세워진 작고 소박한 ‘선한 목자 교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으며 가장 아름다운 교회라고 한다. 그 작은 교회의 안으로 들어가 좁은 예배당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에 숨이 막혔다. 교회를 나와 호수를 향해 조금 걸으니 양몰이 개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동상이 여기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꼭 이 자리에 세워야 했는지…… 호숫가 옆 돌 사이로 핀 루핀의 보라색은 호수의 푸른빛과 어울려 얼마나 이국적이고 매력적인지……
마운트 존 천문대로 가는 길 곳곳에 루핀 군락지가 있었다. 이곳 군락지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루핀의 향기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 루핀의 향기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트레킹 코스가 아닌 차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마운트 존 천문대로 올라갔다. 8 달러의 이용료를 내야 한다. 천문대 위에는 ‘아스트로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야외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염없이 데카포 호수와 ‘서던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것도 못하면서 떠난 사랑을 그리워만 하는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그렇게 바라보았다.
천문대를 내려와 조금만 가면 ‘데카포 호’와 ‘알랙산드리나 호 Lake Alexandrina’ 사이에 작은 호수인 ‘멕그리거 Lake McGregor 호’가 있다. 이 호숫가에 뉴질랜드 ‘자연보호부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 관리하는 캠퍼 밴 사이트가 있다. DOC 캠퍼 밴 사이트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보니 가격은 싸고 풍경은 근사한 곳들이 많다. 단, 전기, 샤워 등 편의시설은 사설 시설인 홀리데이파크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숙박비의 경우 기부제로 ‘양심 상자’라는 통에 넣게 되어있었다.
드디어 이번 여행의 첫 DOC 숙박을 하는 날이다. 예상했던 대로 자연에 푹 파묻힌 호젓하고 멋진 풍광을 지닌 곳이었다. 이날 밤늦게까지 차 바깥의 의자에 앉아 별과 은하수를 보며 탄성과 감탄을 하는 아내와 처제의 별 헤는 이야기를 잠자리에 누워서도 들어야만 했다.
에메랄드빛 옥색 호수, 파란 하늘, 보랏빛 분홍빛 루핀의 들녘, 하얀 눈의 설산, 노을 진 검푸른 호수 그리고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은하수.
온전히 자연에 취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