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일의 자유 12)

별 헤는 밤, 대자연 마운트 쿡 Aoraki Mt. Cook

by Arista Seo

뉴질랜드의 북섬은 태평양판 지각이 인도호주판 밑으로 들어가 화산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형성한 섬이다. 반면에 남섬은 두 판이 맞물리면서 서로 밀어 지각이 올라와 형성된 섬이다. 지각이 서로 밀면서 남섬에서 가장 높은 지형인 ‘서던 알프스 산맥’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지질학적 생성과정은 서쪽의 ‘웨스트랜드 국립공원’에 있는 빙하지역에 가면 그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뉴질랜드 남섬 지형과 마운트 쿡 위치 (EBS 화면 캡처)

이 ‘서던 알프스 산맥’에는 3,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모두 18개가 있다. 이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마운트 쿡 Mt.Cook’으로 남섬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마운트 쿡의 본래 이름은 ‘아오라키 Aoraki’이다. 마오리족 언어로 ‘구름을 뚫는 산’이란 뜻이다. 데카포 호수를 출발해 쿡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푸카키 호수 Lake Pukaki’에서 본 풍경에서 마오리족이 산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수긍이 갔다.

'푸카키 호수'에서 바라본 '마운트 쿡'

옥색 호수와 파란 하늘의 대비, 하얀 구름을 뚫고 올라온 흰 설산의 비현실적 풍경을 가지고 있는 ‘푸카키 호수’는 서울시 면적과 크기가 비슷하다. 빙하가 만든 호수로 전체 면적의 40%를 빙하가 차지하고 있다. 물의 발원지는 마운트 쿡과 연결되어 있는 ‘테즈먼 빙하 Tasman Glacier’이다.

‘푸카키 호수’ 옆으로 호수가 내려 다 보이는 얕은 산이 있다. 이 산에 빙하수를 이용해 연어를 양식하는 연어 양식장이 있다. 이곳 양식장의 물은 놀랍게도 전날 우리가 갔었던 ‘데카포 호수’에서 흘러오는 물이다. 양식장에서는 연어 양식과 낚시만 하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어회를 팔았는데 이제는 팔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에 ‘푸카키 호수 전망대 Lake Pukaki viewing point’에 있는 ‘연어 판매점’을 직원이 우리에게 알려줬다.

연어 양식장에서 본 푸카키 호수와 마운트 쿡
연어 양식장에서 내려가면 서 본 푸카키 호수

‘트위젤’로 가는 8번 고속도로에서 마운트 쿡으로 가는 80번 도로와 만나기 전에 ‘호수 전망대와 연어 판매점’이 있었다. 호수의 풍경에 빠져 연어의 맛은 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세상에 그렇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연어회는 처음이었다. 빙하수로 양식하는 ‘트위젤 연어’의 명성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뉴질랜드의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연어들은 절대 이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호수의 풍경과 자연으로부터 받은 시각의 감동도 컸지만 연어의 맛에서 느낀 미각의 황홀함이 우리를 행복한 여행자로 만들어 주었다.

루핀, 푸카키 호수, 마운트 쿡 그리고 하늘
전망대에서 본 푸카키 호수, 마운트 쿡
전망대와 함께 있는 연어 판매점과 연어 사시미

호수를 돌아 마운트 쿡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보라색 꽃밭이 나타났다. 야트막한 언덕을 지고 있는 라벤더 농장이었다. 화려했다. 색의 화려함에 눈이 부셨다. 그래도 언덕을 넘어 서늘한 바람에 실려오는 라벤더 향기가 마음의 평온을 가져왔다. 여행자들의 평화로운 여유였다.

마운트 쿡 가는 길에 있는 라벤더 농장

‘푸카키 호수’를 끼고 마운트 쿡으로 가는 곳곳에 ‘전망대 View point’가 있다. 하나같이 마운트 쿡을 배경으로 호수가 만들어내는 절경이다. 한 곳 한 곳 다 들르면서 쉬엄쉬엄 가다 보니 어느 사이에 ‘아오라키 쿡 산 마을’을 지나 트레킹의 시작점인 ‘캠프 사이트 White Horse Hill Campsite’에 도착하였다.

마운트 쿡 가는 길
화이트 호스 힐 캠프 사이트(White horse hill campsite)

힘들지 않은 트랙을 따라 ‘뮬러호’와 ‘후커호’ 두 개의 빙하호를 감상하는 계곡 (Hooker Valley Track) 트레킹을 했다. 왕복 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코스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식물의 키가 낮아 햇볕이 뜨거웠다. 만년설로 덮인 산들과 빙하가 이동하면서 돌을 깎아 물 색깔이 탁하게 변해버린 개천들을 보면서 걸었다. 이 개천들이 흘러 우리가 지나왔던 ‘푸카키 호수’를 만드는 것이다. 두 개의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마침내 도착한 바람 부는 후커호 전망대에 앉아 호수를 떠도는 유빙들을 보았다. 호숫가에서는 사람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기도 하였다. 갑자기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며 유빙에서 조각난 얼음이 물속에 잠기는 모습이 보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후커 밸리 트래킹 초반
뮬러호 Lake Mueller
트레킹 코스 흔들 다리
후커 호 Lake Hooker

캠프 사이트로 돌아오는 트래킹 코스의 마지막 구간에서 본 마운트 쿡 계곡은 전형적인 빙하가 만든 U자 계곡의 모습이었다.

마운트 쿡의 전형적인 U자 계곡
후커 밸리 트래킹 코스

이날 우리는 푸카키 호수의 상류에 있는 마운트 쿡 비행 관광의 출발점인 ‘글렌테너 공항’ 옆 ‘글렌테너 홀리데이 파크 마운트 쿡’에서 캠핑을 하였다.

글렌테너 홀리데이 파크와 푸카키 호수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Cosmos’를 꼽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의 소감은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는가!’였다. 만약 내가 청소년기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용인에서 있었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았던 장면을 생각했다. 그 별들이 이때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본 가장 많은 별들의 밤하늘이었다.


마운트 쿡 아래 푸카키 호숫가의 홀리데이 파크에서 이날 밤 우리는 수많은 별과 은하수, 유성들을 보았다. 새벽에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면서 보았던 별들보다, 40여 년 전 여름 용인에서 보았던 별들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을 수 있었다. 이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별을 본 밤하늘이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들을 보며 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하계, 항성, 행성, 유성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블랙홀, 평행우주, 영화 ‘인터스텔라’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수많은 별들이 검은 고요 속에 점점이 빛을 내었다. 그 많은 별들 중에는 어린 왕자의 고향 별인 생떽쥐베리의 별도 있었다.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가 끝내 별이 되어버린 시인 윤동주의 별도 보였다. 고갱과 결별 후 요양원에서 창문을 통해 본 기억 속의 별인 고흐의 별도 그곳에 있었다.


늦게까지도 별들은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남기며 산 너머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의 어깨 위에도 잊고 있었던 별이 하나 내려와 앉았다. 순수한 인간의 감성을 가진 양치기 목동 알퐁소 도테의 별이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소중한 추억을 선물 받은 별을 헤는 밤이었다.


전날 밤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 호숫가 길을 걸었다. 쿡 산을 배경으로 낮게 깔린 구름이 떠오르는 태양에 반사되어 붉게 물들었다. 자연이 연출하는 위대한 예술작품이었다.

일출 때 쿡산의 모습

언제 또다시 이곳에 올지 몰라서 호숫가에 있는 전망대마다 들려 쿡 산과 푸카키 호수를 계속 눈에 담으며 ‘크롬웰 Cromwell’로 향했다.

이튿날 푸카키 호수 풍경

어제 먹었던 연어의 맛에 반하여 ‘트위젤 Twizel’에서 ‘연어 양식장 High country salmon’에 들렸다. 그곳에서 횟감과 스테이크용 연어를 사서 이날 저녁에 요리를 해 먹었다. 이전까지는 연어 스테이크가 그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트위젤의 연어 양식장

‘크롬웰’은 남섬에서 생산되는 과일의 40%를 생산하는 도시다. 드넓은 평원에 대형 과일 농장들이 있는 지역이다. 특히, 체리 농장이 많다. 도시 입구에 있는 과일 형상의 대형 조형물이 이 지역의 특징을 짐작하게 했다.

크롬웰 가는 길
크롬웰 도시 입구 풍경

이날 캠핑을 할 ‘크롬웰 탑 10 홀리데이 파크’로 가는 길에 우연히 자동차 경기장을 발견하였다. “하이랜드 모터스포츠 파크 Highlands Motorsport Park.” 나중에 알았지만 호주, 뉴질랜드의 주요 자동차 서킷 경기가 열리는 유명한 곳이다. 자동차 경기만이 아니라 박물관과 전시장도 갖추고 있었다. 경기장의 메인 좌석 외에는 무료라서 자동차 경기를 구경한 후 전시된 각종 차들도 구경을 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폭발할 것 같은 자동차 엔진의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뒤따르던 차가 앞선 차를 추월할 때는 현지인들과 함께 맘껏 소리를 지르며 환호를 하였다.

자동차 경주하는 모습과 자동차 전시장 모습

살면서 가슴속에 쌓아왔던 온갖 화를 차 엔진의 폭발음에 실어 다 날려 보냈다.

그래 결국 인생은 사랑이다.



푸카키 호수
마운트 쿡과 뮬러호 (바람소리 조심)
후커호 (바람소리 조심)
Highlands 자동차 경주 모습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