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sta Seo Apr 04. 2019

힐링여행 ‘봄에게 길을 묻다’

해남 '달마고도'를 걷다

 #1


 돌을 실은 큰 배를 타고 거친 풍랑을 헤치며 2만 5천 리 바닷길을 헤쳐왔다. 서역에서 출발해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몇 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센 폭풍우와 파도를 헤치며 섬과 육지를 따라오다 보니 드디어 이곳 땅끝 사자 포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우전국(于闐國) 왕의 명을 받들어 화엄경을 널리 전하기 위해 경전과 불상을 가득 싣고 이곳에 왔다. 신라국 ‘의조화상’과 그의 향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가 가지고 온 경전은 서라벌에 있는 ‘황룡사’에 모셔 놓고 강설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함께 배를 타고 온 검은 소의 등에 경전을 싣고 서라벌로 향했다.


 가는 길의 온 산하에서 봄기운이 움트는 소리가 들렸다. 둔덕 같은 산릉을 넘어서자 암릉이 급격하게 모습을 바꾸었다. 암릉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에 검은 소도 감동을 하였던 것 같다. 갑자기 검은 소가 크게 한번 울은 후 앉아서 일어나지를 않았다. 그 자리가 달마산 자락이었다.


 ‘의조화상’의 제안에 따라 검은 소가 앉았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절의 이름은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아름다울 미美’를 따오고, ‘우리들 금인金人의 황금빛 황黃’을 빌려 ‘미황사’라 이름 지었다.

미황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본 풍경

 #2


 미황사 경내 곳곳에서 동백나무가 빨갛게 꽃잎을 피운다. 양지바른 땅에서는 쑥의 향기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절 앞 숲에 있는 초록 잎들은 봄비에 촉촉이 젖은 채 하늘을 가린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달마산은 안개로 자기의 몸뚱이를 숨긴다.


 낮은 구릉에 끝없이 펼쳐진 초록색 청보리 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땅끝마을 해남에 봄의 시작을 알리는 풍경이다. 이렇게 시작된 해남의 봄은 진분홍 철쭉과 노란 유채꽃이 물결칠 때가 되면 절정에 이른다.


 그런데 해남의 봄은 옆에 있는 마을들과 비교해서 약간 늦은 편이다. 이곳의 자연과 사람들의 인심이 그렇다. 오죽했으면 ‘땅의 남쪽 시작’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땅끝’이라고 했을까...... 처음이 아니어서, 시작이 아니어서 더 좋다. 오히려 초월한 듯한 한 차원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해남에는 그렇게 여유롭고 정겨운 사람들이 걷는 길이 있다. 1,300여 년 보다 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왔던 길이다. 그 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인생에 겸손하며, 기다릴 줄 아는 ‘여유의 미학’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미황사의 봄과 달마산 암릉
해남의 봄 청보리밭
해남 봄의 풍경

 #3


 “딱딱 데구루루… 딱딱 데구루루…”

 새벽 고요를 깨는 목탁 소리에 눈이 떠졌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경내를 돌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깨우는 소리를 내기 전에 하는 일종의 워밍업이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땅 속에 있는 생명을 깨우는 소리인 ‘종소리’가 울렸다.


 불교에서는 아침 종성으로 종소리 외에 땅 위의 생명을 깨우는 북(법고) 소리, 날아다니는 생명을 깨우는 운판 소리, 물속에 생물을 깨우는 목어 소리를 합쳐 불가사물로 칭하여 새벽에 소리를 울리는 예불을 지낸다. 미황사에서는 종소리를 울리는 것만으로 아침 종성을 마쳤다.


 툇마루에 앉아 캄캄한 숲과 새벽하늘을 보았다. 오랜만에 혼자서 새벽 시간을 가졌다. 새벽의 싱그러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새벽의 사찰처럼 마음도 고요해졌다. 머리와 가슴속을 비운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한참을 그렇게 그대로 앉아서 여명을 맞이했다.


 절 옆에 있는 숲 길을 걸었다. 숲 속의 청정만큼이나 내 안도 깨끗해져갔다. 걸으면서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상념을 놓아버렸다. 그러자 마음의 자유와 평화가 찾아왔다.

 ‘아! 결국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미황사 풍경
미황사 금강스님과의 차 한잔, 템플 스테이로 묵었던 숙소 모습

 #4


 1300년 전통의 미황사가 자리 잡고 있는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달마산 자락. 년간 1만여 명이 방문하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이곳에서 진정한 힐링을 위한 ‘달마고도 축제’가 지난 3월 30일에 열렸다. 13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불경이 걸었던 길이며, 이 땅의 많은 백성들이 수많은 사연을 지니고 걸었던 길을 미황사의 금강스님이 행정기관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단장하여 세상에 내놓은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축제는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길을 걷는 것 외에도 참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의 마당이었다.

달마고도 힐링 축제 이모저모

 달마고도(達摩古道)는 총 17.74km의 길을 4개 코스로 나누어 만들었다. 이 길의 특징은 인공구조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과 기계가 아닌 순수한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길을 조성하였다는 점이다. 이 길 조성을 위하여 하루에 40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450m씩 길을 닦았다고 한다. 연인원 10,000명이 투입되어 흙과 돌 만을 고집하면서 그야말로 정성을 다하여 만든 길이다.  

달마고도 풍경

 “와, 정말 자연의 기(氣)가 다르네. 편안하고 휴식, 치유가 되는 길이야...... 가족, 연인뿐만 아니라 누구와 걷는다고 해도 정말 좋겠다. 아니 어쩌면 혼자 걷는 게 더 좋을지 모르겠다.” 길을 10여분 정도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십여 년 나름대로 많은 산과 길을 다녀본 내게서 저절로 나온 ‘달마고도’에 대한 느낌이었다.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안한 자연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마치 깨달음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걷다 보면 20여 군데의 크고 작은 돌들이 무리 지어 있는 너덜지대를 만나게 된다. 그때에는 돌 위에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런 후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을 보고, 지나온 길도 보고, 앞으로 갈 길도 살짝 엿보자.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산의 경치와 섬들이 둘러져 있는 호수 같은 바다의 풍경도 둘러보자. 구름도 바람도 바위도 침묵과 함께 만나보자. 이 길을 걸으면 누구라도 저절로 그런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우리들 인생도 이처럼……’

달마고도 길

 사람은 살다가 힘들고 외로울 때면 자기를 놓아줄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인생의 과정이다. 만약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달마고도를 걸어보는 것이 큰 힘이 될 것이다.


 2019년 3월 땅끝 마을 해남에서 봄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달마고도는 나를 찾아가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길의 시작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향기에 취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