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빙하가 만든 자연, 밀포드 사운드 Milford sound
피오르드(Fiord)는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U자 모양의 골짜기에 빙하기가 끝난 후 빙하가 녹아 해안선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들어와 생긴 좁고 깊은 만의 지형을 말한다. 이런 지형을 대표하는 곳으로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드 Sogne Fiord’와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 사운드 Milford sound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약 1만 2천 년 전 빙하에 의해 형성된 밀포드 사운드는 남반구의 피오르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이곳은 빙하에 의해 수직으로 깎은 1,200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Fiordland National Park’은 길이 16km에 12,500㎢의 면적을 지닌 뉴질랜드 최대의 국립공원으로 1986년 주변 국립공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마디로 빙하와 온대우림이 만나 비경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1년 중 3분의 2 이상의 날에 비가 오며 년간 6000mm 이상의 강수량을 보인다. 비가 올 때에는 일시적으로 수많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렇게 많은 강우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 위험하기도 하지만 습한 기후로 우림을 형성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우림의 3분의 2가 ‘너도밤나무’와 ‘포도 카프 상록수’의 울창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원시림은 온대우림으로 나무에 이끼가 붙어살고 고사리가 무성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흔하게 보이는 대표적인 뉴질랜드 고사리 ‘은고사리 Silver Fern’는 나무고사리과에 속하는 식물로 마오리어로 ‘퐁가 Ponga’라고 부른다. 고생대부터 번식한 양치식물로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대표적 식물이다. 뉴질랜드 군대의 배지에 그 모양을 사용하기도 하고, 럭비 국가 대표팀의 상징 마크 이기도 하다.
국립공원 내에는 총 500km에 달하는 여러 트랙이 있어 산봉우리, 호수, 이끼 골짜기를 밟아가며 태고의 자연을 체험할 수가 있다. 우리가 반지의 제왕, 아바타, 쥐라기 공원 등과 같은 영화에서 보았던 원시림이 모두 뉴질랜드 원시림에서 촬영한 것이다.
뉴질랜드의 3대 걷기 명소인 ‘케플러 트랙’ ‘루트번 트랙’ ‘밀포드 사운드 트랙’이 모두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 안에 있다. 이중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 트랙’은 ‘Ultimate hikes사’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하루에 90명 만이 트레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이드 워킹 50명, 개별 워킹 40명) 최소한 출발 하루 전에 퀸스타운에 있는 ‘Ultimate hikes사’에 가서 참가 수속을 하여야 한다. 한국인 직원도 있으니 직접 ‘개인 트레킹’이나 ‘가이드 트레킹’ 중에서 선택을 하면 된다.
- www.ultimatehikes.co.nz
밀포드 사운드에서 살고 있는 현지인은 120여 명으로 대부분 관광과 자연 보존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객이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은 호텔 한 곳과 ‘밀포드 사운드 피오피오타히 홀리데이 파크 Milford sound Piopiotahi’ 뿐이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당일치기 여행으로 295km 떨어져 있는 퀸스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5시간 걸리는 밀포드 사운드까지 오거나 혹은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테아나우 Te Anau’에서 와서 크루즈선 관광을 한 후 돌아간다. 테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 올 때 이용하는 94번 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다. 곳곳에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경관들의 명소가 있어서 여행객들은 오고 가는 중에 이 자연경관 명소들을 들른다.
테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까지의 지역에서 캠퍼밴이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은 테아나우로부터 62km 지점에 있는 ‘크놉스 플레트 Knobs Flat’ 와 ‘호머 터널 Homer Tunnel’을 지난 후에 있는 ‘밀포드 사운드 피오피오타히 홀리데이 파크 Milford sound Piopiotai’ 두 곳이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는 곳은 ‘호머 터널 Homer Tunnel’ 전 까지만 여덟 곳이 있다. ‘호머 터널’ 이후에는 야영을 할 수가 없다.
퀸스타운을 출발해서 테아나우에 도착한 우리는 계획을 변경해 ‘밀포드 사운드’에 가서 캠핑을 하기로 하였다. 남은 일정을 좀 더 여유 있게 보내고 싶은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 이미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일하게 캠핑을 할 수 있는 ‘밀포드 사운드 피오피오타히 홀리데이 파크’의 사이트는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몇 년 전 친구 가족들과 함께 밀포드 사운드 주차장에서 캠핑을 했다는 처제의 이야기를 듣고, 최악의 경우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하고 밀포드 사운드로 향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94번 도로 곳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접할 수 있었다. ‘테아나우 호수’를 왼쪽에 끼고 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과 산 사이의 U자 지형에 넓게 펼쳐진 초원인 ‘에글린톤 평원 Eglinton’을 만났다. 조금 더 가니 잔잔한 호수의 수면으로 주변 산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유리처럼 맑은 ‘거울 호수 Mirror lake’가 있었다. 거대한 산과 구불구불한 계곡의 대자연을 조망할 수 있는 ‘팝스 뷰 Pop’s view’와 ‘홀리포드 전망대 Hollyford lookout’ ‘게트루드 계곡 전망대 Gertrude valley lookout’. 이런 곳들이 ‘호머 터널 Homer tunnel’ 앞에 도착할 때까지 만날 수 있었던 비경들이었다.
호머 터널은 해발고도 945m의 위치에 깎아지른 바위를 관통하는 터널로 유일하게 차가 밀포드 사운드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1935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219m 길이로 1953년에 완공되었다. 이 터널이 완공된 후 에서야 밀포드 사운드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터널은 편도 1차선으로 운행하며 터널 밖에 있는 신호등으로 터널을 통과하는 교통 흐름을 제어하고 있다. 터널 통과를 위해 최대 20분 정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터널 안은 조명 장치가 없는 암흑 속의 경사도로이다.
터널 입구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 위 빙하가 녹아 여러 줄기의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비라도 내린다면 더 많은 폭포가 만들어져 장관을 연출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맘에 들렸던 ‘피오피오타히 홀리데이 파크’에서는 결국 캠핑을 할 수가 없었다. 밀포드사운드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해안선을 따라 ‘프레쉬워터 베이슨 Freshwater Basin’에 있는 크루즈선 부두까지 걸었다. 이토록 웅장하고 태초의 순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바로 ‘샌드플라이 Sandfly’ 였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인지 그 수가 많아서 마치 우리나라의 산에 갔을 때 날파리가 눈 앞에 윙윙거리며 짜증 나게 하는 것처럼 신경이 예민해지게 했다. 뉴질랜드 서해안과 밀포드 사운드 지역에 아주 많이 서식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많았다. 신이 이 아름답고 청정한 지역만을 좋아하는 인간에게 질투해서 ‘샌드플라이’를 뿌려 놓았다는 마오리족의 전설에 공감이 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샌드플라이는 깨끗한 곳에서만 사는 무공해 곤충이고 병을 옮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물린 후 가려워서 긁으면 흉터와 가려운 정도가 더 심해지는 점이다. 퀸스타운에서 샀던 ‘굿바이 샌드플라이 Goodbye Sandfly’라는 기피제를 발라 어느 정도 예방은 하였지만 절대로 안 물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물렸을 때 절대 긁지 말라는 골든룰을 지켜서 우리 일행은 샌드플라이로 인해서 생기는 후유증은 없었다.
“형부! 여기 캠핑 못하나 봐요. 저쪽 화장실 가는 길에 ‘캠핑 금지’ 표지판이 서 있어요.”
‘헉! 큰일 났다. 그럼 호머 터널을 넘어가야 하는데…… 저녁 6시 이후에는 신호등 작동을 안 하고 운전자들이 서로 양보하면서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지……’
세수를 하러 갔던 처제가 돌아와서 한 한마디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에 있던 다른 몇 대의 캠퍼밴들도 언젠가부터 보이질 않았다. 일단, 이곳 주차장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옆에 있던 아내가 제안을 하였다.
“지금 이 시간에 호머 터널을 통과해 넘어가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아요. 호머 터널 전에 ‘캐즘 Chasm’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마 거기에 주차장이 있을 거예요. 일단 거기 주차장에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여기로 오기로 해요.”
사실 ‘캐즘’에서도 캠핑을 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즘’ 주차장에 가니 사람도, 차도 없었다. 주차장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혹시 경찰이나 환경보호부 같은 곳에서 순찰을 하다 적발되게 되면 오히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동하면 되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깊은 산 속이었다. 저녁이 깊어져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 오직 새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태고의 원시 숲 속에서 밤을 보내는 모양이 되었다. 다들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나는 혹시라도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라서 이날은 와인을 마시지 않았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와인을 마시지 않은 날이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밤을 보내고 아침 5시에 눈을 뜬 나는 일행들을 깨운 후 먼저 밀포드 사운드 공영 주차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 후 아침 시간을 여유 있게 보내고 예약해 두었던 크루즈 선을 타기 위해 부두에 있는 크루즈 회사 연합 건물로 갔다. 건물 안에는 여러 회사들이 각각의 안내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었다. 크루즈 관광의 경우 배의 크기와 투어 시간, 요금이 다다르니 비교해본 후 선택하면 된다. 현장에서 구매를 하는 것보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는 것이 일정관리에 더 효율적일 것이다.
- 리얼 저니 www.realjourneys.co.nz
- 크루즈 밀포드 www.cruisemilfordnz.com
- 주시 크루즈 www.jucycruize.co.nz
- 마이터 피크 www.mitrepeak.com
밀포드 사운드 여행의 마무리를 크루즈 관광으로 하면서 여행자들은 평생 잊지 못할 자연을 가슴에 담고 돌아간다. 크루즈 선은 오직 자연의 소리만 들리는 바다를 수직으로 솟아오른 산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과정이다. 만을 나가면서 보이는 수직으로 깎은 단애와 폭포에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16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보엔 폭포 Bowen falls’와 멋진 능선의 ‘마이터 피크 Mutre peak’를 보면서 피오르드에서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인 ‘코퍼포인트 Copper point’로 배는 간다. 망망대해인 테즈먼해의 입구에서 배는 방향을 바꿔 다시 피오르드로 돌아온다. 바다 위 바위에서 햇빛을 쬐고 있는 물개들이 보이고, 폭포 가까이 배가 다가가 여행객들의 온몸을 폭포수로 흠뻑 적시게 한다.
크루즈 관광을 마친 후 우리는 어젯밤을 보냈던 ‘캐즘 Chasm’으로 다시 갔다. 우리가 밤을 보냈던 주차장의 자리에는 우리 대신에 커피와 음료수를 파는 푸드트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벽 일찍 퀸스타운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도 많았다. ‘캐즘’은 옥색 물이 이끼 덮인 바위를 깎아 만든 기암괴석과 함께 많은 수량의 물이 급격한 용틀임으로 굉음을 내는 좁은 폭의 환상적인 폭포였다.
테아나우로 가는 방향의 호머 터널을 통과해 나와서 ‘루트번 트랙 주차장 Routeburn track Parking Area’에 주차를 한 후 짧은 시간 루트번 트랙을 걸었다. ‘아스파이어링 산 Aspiring Mt. 국립공원’에 속하는 트랙으로 울창한 수풀 속에 이끼와 고사리류 등이 가득 차 있어 묘한 신비감이 들었다. 너도밤나무로 울창한 숲은 자연의 싱그러움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상 낙원인 이 대자연의 길을 충분히 걷지 못했다. 트랙을 걷는 중에도 오래된 나뭇가지와 잎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과 초록색 이끼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래, 이번에 못 걸으면 어때! 뉴질랜드에 다시 올 이유가 생겼네! 다음을 위해 남겨놓고 기다리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인 거야……’
숲 속에서의 감동과 여백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어느덧 보름 가량 자연에 묻혀 힐링하는 여행을 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