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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May 24. 2019

보성에서 먹거리 자랑하지 마라!

전남 보성 여행기

 30여 년 전 겨울 벌교 해안 민박집에서 처음으로 피조개를 먹었다. 일본으로 주로 수출된다는 조갯살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피처럼 새빨간 조개 피를 먹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먼저 조개 피를 먹고 난 뒤 씨익 웃는 친구의 입술과 이빨 사이에 낀 빨간 피를 보니 더 움츠려 들었다. 하지만, 한 모금 이상 모두 다 마셔 보기로 처음에 약속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눈을 질끈 감고 핏물을 마셨다. 그런데……, 웬걸 핏물은 마치 두유처럼 고소했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더 마시려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보성, 벌교는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 지역으로 오래전   내 기억 속에 입력되었다.


 이번 여행으로 보성, 벌교 지방이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오래전 내 기억은 잘못된 입력이었다. 음식의 맛도 훌륭했다. 남도의 음식이 찬의 종류가 많고 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잘못된 오해가 다 깨졌다. 


 - 보성녹차 떡갈비: 보성군 보성읍 흥성로 2541-4

보성 녹차 돼지고기 떡갈비


 - 보성아라낙지: 보성군 회천면 우암길 27-16

보성 아라낙지 전경, 낙지 연포탕, 산낙지 탕탕이, 키조개 무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


 - 만리회관: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 315-3

만리회관 조개탕


 - 수복식당: 보성군 보성읍 중앙로 102-1

수복식당 꼬막 정식

 보성에는 트렌드에 맞춘 짚 라인이 있는 ‘숲 속 모험시설’을 비롯해 편백숲 길을 걷는 트레킹과 숙박시설을 갖춘 ‘제암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특히 5월의 철쭉 군락지는 1km 능선에 걸쳐 있으면서 단위 면적당 꽃의 밀집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아 장관을 연출한다. 철쭉의 화려함과 함께 남해 바다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즈음에 바다에서는 ‘키조개 축제’가 열린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에 있는 시간은 숲의 향기와 맑은 공기를 마시는 최고의 힐링이 되는 여유다. 휴양림 숙박 시설은 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만큼 전국 최고의 시설이다. 


 - 제암산 자연 휴양림: www.jeamsan.go.kr

제암산 자연 휴양림 풍경

 벌교의 문화유산 태백산맥 문학길에 갔다. 소설에서는 남도여관으로 불렸던 보성여관을 중심으로 조성된 거리를 걸었다. 현재도 여관의 기본적인 기능인 숙박을 할 수 있다. 여관 안에는 작은 카페도 있어서 잠시 쉴 수가 있었다. 차 한잔을 마시며 정하섭, 하대치, 염상진, 염상구 등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기억들 한 조각 한 조각을 떠올려 보았다. 소설을 읽은 지 오래돼서 그런지 많은 것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사람 소화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났다. 가슴속 소화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보성여관은 일제 강점기 벌교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문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여관은 전시실, 다다미방, 카페, 자료실, 소극장, 숙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을 담은 공간인 이곳에서는 ‘차 시 쓰기’, ‘전통 다례’ 등 다양한 문화재 행사를 연중 시행하고 있었다. ‘벌교에서 태백산맥 깊이 들어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백산맥 문학길 초입
소설 속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오는 보성여관
보성여관 안 카페
여관안 풍경과 추억의 말표 고무신

 벌교 옆에 있는 동네 고흥의 섬을 들렸다. 섬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우리에게는 역사적 아픔과 편견의 무자비함이 깊이 배어 있는 소록도로 갔다. 여의도 면적의 1.3배인 이곳은 한센인을 진료. 보호하기 위해 1916년에 설립된 국립병원이다.


 일제 강점기에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항하는 환자를 불법적으로 감금한 후 강제로 정관수술까지 했던 감금실도 등록문화재로 남아있다. 두 건물이 당시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이제 소록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제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일제 강점기에 인권이 무시된 환자들의 피와 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단순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린 이유로 강제 입원되고,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방문객이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록도 중앙공원은 10,000평 정도의 규모다. 그곳은 반송, 송솔, 향나무, 편백나무 등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공원의 중심에 현대의학으로 능히 한센병을 무찌르고 정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구라탑’이 있다. 대 천사 ‘미카엘’이 사탄을 밟고 창으로 찌르는 형상을 한 6.1m의 탑이다. 또 소록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조형물인 3M 비도 있다. 국내 TV 방송에서도 소개가 되었던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세 천사 분들의 평생에 걸친 봉사 활동을 기념하는 공적비다. 

 Marianne Stoeger, Margarta Pissarek, Maria Dittrich 

일제 강점기에 사용된 해부실
구라탑
3M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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