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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Nov 16. 2019

백제의 얼굴을 만나다.

공주, 부여, 익산 여행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떠나는 여행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는 백제문화의 특징을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가을이 한창인 지난주에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다녀왔다. 여유를 가지고 백제문화를 처음 제대로 접해 보았다. 사실상 첫 만남이었던 백제문화에서 받았던 느낌은 삼국사기에 표현되어있는 그대로였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프레임의 문화는 아니었다. 무언가가 없어서 혹은 부족해서 그 빈 곳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작은 부분에서도 넘치지 않되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미가 보였다. 그 빈 곳과 절제된 것에 대해 내 마음대로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약 700여 년 간 존속하였다. 백제역사 유적지구는 문화적 발전이 절정에 이른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중국, 인도로부터 건축, 예술, 종교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킨 뒤 일본과 동아시아에 전파한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아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의 왕도와 밀접하게 연관된 공주, 부여, 익산의 고고학적 유적들로 구성되어있다. 

 - 공주: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 익산: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공산성 들어가는 금서루 앞

공주 공산성에서 만난 백제


고구려에 의해 한강 유역을 뺏긴 백제는 475년 웅진(현재의 공주)으로 천도를 하였다. 이때부터 538년 사비(현재의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백제의 왕성은 웅진성으로 지금의 공산성이다. 공산성은 동. 서. 남 삼면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북쪽은 금강이 흐르는 천연의 요새와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2.5km가 넘는 성벽은 토성과 석성으로 나뉘어 쌓여 있다. 

공산성 성곽길 1)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강
만하루 및 연지
왕궁 부속 시설지

토성은 백제 시대에 쌓은 원형이 유지되어 있고, 석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것도 있지만 아래 부분에서는 백제 시대에 쌓았던 성벽의 흔적이 발견된다. 성은 축구장 24배 크기의 20만㎡ 규모로, 전형적인 방어용 산성이다. 성벽 안에는 왕궁지, 왕궁 부속 시설지, 연지와 영은사라는 절이 있다. 성벽을 따라 산성의 둘레를 다 걸으면 6개의 루와 2개의 정, 1개의 각을 만날 수 있다. 

공북루와 얼음창고

가을 햇살을 받으며 공산성 금서루로 올라가는 길에서 겹겹이 쌓아 놓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을 만났다. 하나하나 빼곡하게 쌓인 돌들에 백제 인들의 굵직굵직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성곽 길을 따라 공산정에 오르니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비단결 같은 금강의 절경이 보였다. 두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 흐르듯 멈춘 듯 강물 흐르는 소리, 숲에서 실려 오는 권토중래를 꿈꾸는 백제 인들의 함성 소리가 들렸다. 듣기만 했다. 나 아닌 모든 것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따뜻한 귀를 선물 받은 시간이었다. 

공산성 성곽길 2)
임류각

공산성 길은 단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여행의 길만이 아니었다. 금강에 접한 산 능선을 따라 걷는 고즈넉한 자연의 길이기도 했다. 머나먼 옛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했다. 자연의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막아주었다. 스마트 폰에서 울리는 ‘까톡’ 소리와 알람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가을 햇살과 바람 소리, 새소리에 맞추어 시간을 보내면 되는 길이었다. 이곳의 가을은 늘 나를 덮어주는 누나 같은 얼굴이었다. 

공산성 성곽길 3)

공주 한옥마을 체험


공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참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는, 전통 구들장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한옥마을 숙박촌이 있다. 고풍스러움과 세련미가 함께하는 체험마을로 한국의 전통 난방인 구들장 체험이 가능하다. 개별 숙박동 20실과 단체 숙박동 37실이 있는 대규모이다. 한옥 기와와 초가형 한옥의 두 종류가 있다. 숙박뿐만 아니라 먹거리와 전통문화 체험, 공예공방, 전통놀이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공주 한옥마을 입구
한옥마을을 체험하는 외국인

한옥마을 체험은 단지 문화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의 감정만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옆에 잃어버린 시간이 아직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과거에 대해 존중하며 곱씹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의미 있는 장소야말로 감정을 풍부하게 해 주고 영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참나무 장작 구들장과 내부 시설
한옥마을 내 전통 체험관

백제 무왕과 익산 왕궁리 유적지


백제역사지구의 한 축인 익산의 백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 중심에 백제 무왕이 있다.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은 적국인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했다. 그는 당시 백제가 처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익산 천도와 미륵사 창건을 추진한다. 익산에 있는 왕궁리 유적은 수도 사비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복도(複都 수도와 기능을 나란히 하는 도시)였다. 이곳은 엄청난 크기의 왕궁과 불교 사찰, 수도 방어를 위한 도성의 자리로 확인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왕궁리 유적 전시장 전경

왕궁리 궁성은 발굴 조사 결과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내외의 장방형 석축 성벽을 두르고 대지를 평탄하게 다진 후 대형 건물을 포함하여 부속 건물과 정원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성곽의 북쪽에는 후원, 서북쪽에는 공방, 화장실 등 다양한 공간을 배치하였다. 유적은 전체적으로 2:1 또는 1:1의 비례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왕궁의 구조는 중국과 일본의 고대 왕궁과 비슷해서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왕궁 건설의 원리와 기술을 교류하고 공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수부(首府)’명 기와. 벼루. 연가. 토기. 금 동제품 등은 이곳이 왕궁이었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다.  

왕궁리 오층 석탑은 옥개석이 얇고 네 귀퉁이의 처마 끝이 치켜 올라간 전형적인 백제계 탑의 모양이다.

왕궁리 유적 전시장에 전시되어 잇는 백제 수막새, 기와, 연가 (왼쪽부터)
왕궁리 5층 석탑

백제인과 익산 미륵사지 9층 석탑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 중 하나인 터이다. 이곳에는 본래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이 있었다. 서원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양식의 석탑이다. 동탑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을 복원하였고 중원의 석탑은 완전히 소실되었다. 서 탑을 해체, 조사하는 중에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해 사리호, 은제 관식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미륵사 탑을 지을 때 백제 인들은 국운융성의 간절함으로 모든 역량을 투입해 돌을 한 장씩 얹었다. 연못 건너편에 서서 서 탑과 커다란 여백으로 남아있는 미륵사지 터의 빈자리를 보았다. 백제인 들이 꿈꿨던 세상, 그들이 수 없이 많이 그려 보았을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서 탑의 네 귀퉁이가 연꽃잎처럼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익산 미륵사지

아무것도 없어서 아름다운 장소가 있다. 그런 장소는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해 준다. 때론 빈자리의 의미를 깨닫게도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은 전쟁에서 폭격을 당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고색창연한 폐허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완벽한 공간이 아니어도 된다. 꽉 찬 공간이 아니어도 된다. 비어있는 곳은 비어있는 대로, 부서진 곳은 부서진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음속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미륵사지의 빈 공간과 여백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캔버스였다. 미륵사지의  여백에서 실눈을 뜨고 미소 짓는 미륵이 보였다. 그것은 백제 인의 얼굴이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 공산성: 공주시 웅진로 280. 041-856-7700 

▪ 공주 한옥마을: 공주시 관광단지길 12.  041-840-8900  http://hanok.gonju.go.kr/

▪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063-859-4631~2

▪ 익산 미륵사지: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063-859-3873

▪ 백제세계유산센터: http://www.baekje-heritag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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