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11 하코다테, 니세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켠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태풍 “노루”에 대한 비상 방송을 계속하고 있었다. 일본 본토에 많은 피해를 준 후 오늘 홋카이도 북서 방향으로 비껴가면서 동해 바다에서 소멸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태풍의 영향 때문에 이곳 무로란에도 아침 일찍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오고 있지만, 바람은 강하게 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뉴스처럼 홋카이도를 비껴가는구나. 다행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우리가 여행한 지역들이 태풍 경로의 주변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흐리거나 비가 왔다. 오히려 오후부터 저녁까지 다녔던 지역에서 비가 좀 세차게 내렸다.
“우리가 복을 받아서 태풍도 이렇게 비껴가는 거야……ㅋㅋㅋㅋ”
‘태풍 때문에 걱정하면서 말은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자조적인 말을 하면서 하코다테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원래 계획은 “오오누마 국정공원”을 관광한 후에 “하코다테 전망대” 및 “베이 에어리어”를 둘러보기로 되어있었는데, 변경해서 하코다테에서 나오면서 "오오누마 국정공원”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하코다테로 가는 도로는 계속해서 바다를 왼쪽에 끼고 있었다. 가는 도중 풍광이 좋은 휴게소가 있으면 잠시 쉬면서 구경하며 갔다.
하코다테 시내를 지나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로우프를 탈 수 있는 스테이션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왠지 전망대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에 가서 로우프 탑승권을 끊기 전에 전망대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갈 수 있다고 하였다. 되돌아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태풍이 지나간다는 예보에다가 날씨도 우중충하여서인지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이 약간 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시내의 모습은 본 섬 혼슈와 홋카이도 간 교역의 중심이 되는 항구도시였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항만, 도크, 창고 등의 시설과 정박해 있는 화물선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부산이 떠올랐다. 아마, 항구 도시의 공통된 시설과 분위기의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코다테”의 전망은 야경이 더 유명 하지만 일정상 우리는 볼 수가 없었다. “야경을 못 보는 아쉬움이 크지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시다.” 전망대에서 하코다테 시내를 보면서 아내에게 약간의 위안이 담겨있는 양해를 구했다.
“괜찮아요. 어제 무로란에서 봤던 야경도 훌륭하던데, 뭘…… 그리고 야경을 보려면 여기에서 하루를 숙박하여야 하는데, 그 정도까지야 ……” 아내도 공감하는 대답을 하였다.
여행안내 책자에서 추천하는 하코다테의 유명 관광지들은 전망대가 있는 산 밑의 언덕에 모여 있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로우프웨이 스테이션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하코다테 공원”, “성공회 성당”, “러시아 정교회 성당” 그리고 “예쁜 언덕길” 등을 산책하듯이 천천히 걸으면서 “베이 에어리어”를 향하여 내려갔다.
점심을 “베이 에어리어”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을 계획이었는데 가는 도중 "베이 에어리어"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러키 삐에로”를 발견하였다. 길을 건너 가게로 들어가니 주문을 위하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많았다.
‘흠, 그래도 일본에 왔는데 “러키 삐에로”에서 한 끼니는 먹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햄버거와 카레로 점심 메뉴를 주문하였다. 가게 안에 손님도 많고 좌석도 꽉 찬 거 같아서 테이크 아웃을 해달라고 요청하여 20여 분 기다린 후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 도크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아주 작은 공원과 벤치가 있었다. 그곳에서 배가 정박해 있는 도크와 “베이 에어리어”의 전경을 보면서 점심 식사를 했다.
"러키 삐에로”의 햄버거는 소문대로 다른 인스턴트 햄버거에 비하여 패티가 맛있고 양도 많았다. 카레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카레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먹어 본 후 맛있다고 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옆으로 새 두 마리가 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고개를 돌려 오전에 갔었던 전망대가 있는 산 정상을 보니 구름이 자욱하게 끼어 정상이 하나도 안보였다.
“에긍, 만약 지금 전망대에 갔으면 아무것도 못 보았겠네...... 구름 때문에 시내도 안보이겠는데, 착하게 살아야 돼...”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베이 에어리어”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대형 슈퍼마켓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식품의 종류와 다양성에 입이 쩍 벌어졌다. 바닷가에 있는 도시여서 인지 특히 수산물 제품에 강점이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상품마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손님들의 손길이 저절로 갈 정도였다. 유리 공예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베이 에어리어” 지역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오오누마 국정공원”으로 가면서 하코다테로 올 때 보았던 외곽에 위치해 있는 파워센터를 잠시 들렸다. 처음 들른 매장은 DIY 상품이나 원예품을 파는 매장이었는데, 우리나라 대형마트 정도의 규모였다.
두 번째 들른 매장은 대형 서점이었다. 3층으로 되어있는 매장으로 우리나라 대형 서점의 최근 내부 컨셉과 비슷한 성격으로 꾸며진 복합매장이었다. 우리나라 대형서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천정이나 벽면 인테리어에 비용 투자를 많이 하지 않은 점이었다. 당연하지만 각 카테고리 별 상품 진열 페이싱도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특히 만화 카테고리의 종류와 진열 페이싱이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넓었다.
“오오누마 국정공원”으로 가는 중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공원에 도착해보니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호숫가 주변 길을 둘이서 우산 하나와 함께 호젓하게 걸었다. 호수라고는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였다.
해가 지기 전 숙소에 도착하기 위하여 짧은 거리의 산책을 한 후 “니세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누적된 피로와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운전 중에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가 힘들어서 휴게소에서 10여분 정도 잠을 잔 후 이동을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인지 홋카이도 가운데 중심부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갈수록 산속 깊이깊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해가 지고 주변이 어스름해질 무렵에서야 목적지 부근에 도착하게 되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주변을 보니 스키와 트레킹,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관광 휴양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날 도착한 곳은 스키와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젖소, 멜론이 특산품인 일본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주변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때부터 우리의 당혹스러움이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를 하는데 예약한 숙소인 “Ecology” 간판 등 표식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간판 등을 찾기 위하여 스마트폰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하는 지역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우고 길 옆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갔다.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인듯한 분에게 직접 “Ecology”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주인인듯한 부부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 한참 이야기를 한 후 “여기 위에 있는 큰 도로로 다시 나가서 우회전을 한 후 직진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부부가 알려준 대로 갔지만 “Ecology” 간판이나 표식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시 차를 세운 후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 내비게이션에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내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니 조금 전 왔던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도로 옆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그곳 여주인에게 “Ecology”의 위치를 물어보니 조금 전 “게스트 하우스”의 부부가 알려준 것과 똑같은 방향을 알려 주었다. 단지 신호등을 세 개 지나가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다. 조금 전 갔던 도로를 다시 가면서 신호등 세 개를 지나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가니 아까 갔던 길보다 더 멀리 가게 되었다.
세 번째 신호등을 지나자 바로 도로 오른쪽에 “Ecology” 간판 표식이 보였다. ‘이럴 때 기분이란……’
“Ecology”는 스키를 타려는 사람들이나 등산, 트레킹 등을 하려는 사람들이 공동 식당에서 조리와 식사를 하면서 잠만 개인 방에서 자는 저렴한 비용의 롯지 같은 곳이었다. 프런트 직원에게 전화번호가 안내해주는 주소가 잘못되어 있다고 말하니,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지정받은 방으로 짐을 옮긴 후 프런트 직원에게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온천을 추천해달라고 하여 한 곳을 추천받았다. 직원이 직접 료칸에 전화를 하여 영업시간과 전화번호까지 확인한 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있었다.
“니세코”의 중앙 도로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롯지의 직원이 가리켜준 료칸이 나타났다. 밖에서 본 외관이 오래된 료칸 임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아내와 만날 시간을 정한 후 각자 탈의실로 들어가 보곤 깜짝 놀랐다. 탈의실 내의 옷장 등 시설이 우리나라 80년대 정도의 수준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탕 안에 들어갔을 때 좋은 물의 느낌에 또 한 번 놀랬다. 기본 목적에 충실한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탕 안에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손님이 있었다. 실내 탕에서 몸을 푼 후 노천 탕으로 나갔다. 노천 탕에 있는데 비가 조금씩 또 내리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비를 머리와 얼굴에 맞는 느낌이 “참 후련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의 고민과 번뇌를 다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지 ‘지금 맞고 있는 비가 눈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료칸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탕 내부 바닥 곳곳에 누런 황 성분이 석순처럼 쌓여 있었다. 료칸을 나와 만난 아내도 여기의 물이 정말 좋다고 감탄했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는 현지인에게 소개를 받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야. 가격이나 본래 목적에 가장 충실하고...” 숙소를 찾는 동안 마음을 쫄았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다소나마 풀어줬다는 안도가 들었다.
롯지로 돌아와 우리 둘만의 늦은 저녁 준비와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창문을 열어보니 밖은 컴컴한 어둠에 둘러싸인 채, 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행복했다.
‘날씨가 맑았으면 하늘에 별들이 많이 보였을 텐데…… 은하수도 볼 수 있었을 텐데……’
깊은 산속 청정 지역이기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욕심을 묻고, 비 온 뒤의 풀 향기를 잔뜩 머금은 싱그러운 공기를 들이켜면서 여행 여섯째 날을 마무리 지었다.
<여섯째 날 이동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