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름 렌터카 여행 이야기 #12 오타루
지구 어느 산에서든 아침 공기의 신선함은 하루 시작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어제는 해가 진 후에 도착해서 숙소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아침에 일어나 롯지 앞 주차장에 나가 보니 숙소 앞 뒤로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었다. 앞 산의 스키 슬로프도 구름 밑으로 보였다.
어제 내린 비가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 산마을을 깨끗하게 씻어내 아침 산속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초록들로 하루를 시작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니세코가 유명 관광지 인지 모른 채 좀 더 값싼 숙박시설을 찾다가 우연히 오게 됐는데....' 이른 아침에 받은 맑음과 싱그러움이 너무 행복해서 언젠가는 꼭 다시 한번 이곳에 와 며칠이고 자연과 온천을 맘껏 즐기자고 아내에게 이야기하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는 일찍 숙소를 나와,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향해 치닫는 하루를 시작하였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결코 게으른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활동하다니……’ 나 스스로도 놀랐다.
오늘 일정의 첫 번째 목적지인 “가무이 무사키 전망대”로 가기 위하여 먼저 바닷가 쪽을 향하여 갔다. 몇십 분을 간 후 나타난 바다를 왼편에 끼고 해안도로를 달렸다. 다른 날 여행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우리가 이동하는 도로에는 다니는 차들이 많지 않았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가는 틈틈이 경관이 좋은 휴게소에서는 잠시 쉬면서 갔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그런지 공기도 깨끗하고 날씨도 맑았다.
잠시 쉬기 위하여 들렸던 어느 휴게소에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가진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 있었다. 이상하게 예술작품이라는 느낌이나, 작품을 만든 사람의 생각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삼림 자원이 풍부해서 확실히 목조 문화가 발달한 나라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가무이 무사키”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등대 앞 전망대까지 걸어가며 파란색 수평선과 절벽 밑 발아래에 숨어있는 옥 빛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었다. 등대로 가는 입구에 옛날에 만들어 붙였다는 “신성한 지역으로 여자의 출입을 금지” 한다는 내용의 나무로 된 팻말이 보였다.
‘옛날에는 여자에 대해 왜 저런 편견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결국 남성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작이었을 거야’라고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면서 걸었다.
이렇게 멋진 자연 앞에 인간들의 과거 잘못된 흔적을 보게 된 것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 잡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입맛이 씁쓸했다.
가무이 무사키 등대를 둘러본 후 오늘 일정의 핵심인 오타루로 가는 도중에 있는 “시마무이 카이칸”을 들르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시마무이 카이칸"은 가무이 무사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갈로 된 해변이었다. 아내가 어디에선가 이곳 해변에 노천탕이 있다는 정보를 보았다고 하여 우리는 ‘바닷가 노천탕’을 찾기 위하여 자갈 해변을 끝에서 끝까지 헤매었다. 해변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를 못하여 포기하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바닷가 자갈밭에 앉아 잠시 쉬었다.
밀려오는 파도와 포말을 바라보며 여행 중의 망중한을 즐겼다.
에어비엔비를 통해서 예약한 오타루의 숙소를 찾아갔다. 이곳에 오기 이틀 전 숙소 주인이 자기네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서 숙소 전체를 우리만 사용한다는 사실과 현관 열쇠 있는 곳,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메일을 보내왔었다. 숙소를 우리만 사용하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었다.
스마트폰의 안내에 따라 어렵지 않게 찾아간 숙소는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가정집 모습이었는데 내부가 커서 여러모로 편했다. 간단하게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타루 운하”로 갔다. 오타루 운하는 방송이나 사진에서 보고 느꼈던 것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다른 곳과 차별화된 특징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눈 덮인 겨울에 와서 보았다면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운하의 끝에서 좀 더 올라가면 유리 공예품, 오르골, 과자 등을 전시 판매하는 상업 거리가 나타났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한국과 중국 사람들이었다.
특히 오르골 본점은 3층으로 되어있었는데, 전 층이 사람들로 붐볐다. 예쁘고, 화려하게 만든 수많은 오르골 제품들이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르골과 관련된 오래된 축음기 등 음향 제품들을 2층과 3층에 전시도 하고 있었다.
상가 거리에는 홋카이도의 유명한 과자 판매관도 있었다. 상점 안의 과자들도 일본 특유의 특징인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져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시음하는 과자들을 몇 개 먹어보니 부드럽고 달콤하여 누구라도 하나쯤은 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끔하는 맛이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조잔케이” 온천으로 가서 온천욕을 한 후 오타루로 돌아와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음…… 조잔케이면 삿포로를 지나서인데…… 너무 멀지 않아…… 돌아오는 시간이면 어두워질 것 같고……
일본의 특성상 오타루 근처에도 온천이 있을 거 같은데…… 그냥 가까이에 있는 온천을 찾아 가자” 피곤해서인지 아내가 가까운 곳에 있는 온천으로 가자고 하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오타루 운하에서 15분 거리에 온천이 있었다. 계획을 변경하여 인터넷에서 찾은 “아사리가와 온천”으로 갔다. 이번 여행 동안에 다녔던 온천 중 탕의 규모가 가장 큰 온천탕이었다. 아마, 도시 가까이에 있어서 이렇게 큰 규모의 온천탕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심지어 온천탕 주차장에 버스 정류장도 있었다. 내부 탕에도 노천탕은 물론이고 탕의 종류도 여러 종류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차치하더라도 온천에 관한 한 일본은 축복을 받은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온천욕으로 쌓였던 피로를 풀고 난 뒤 오타루 운하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하여 다시 운하로 돌아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운하에서의 야경 감상이 마무리되어갈 무렵 “일본 만화 중에 '초밥왕'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그 만화의 배경이 된 도시가 여기 “오타루”야…… 여기까지 왔는데 초밥 한번 먹어봐야 되지 않겠어?”라고 아내에게 저녁 식사로 초밥을 먹자는 뜻을 은근히 말하였다. 마침, 아내가 가지고 있던 “관광 안내책”에서 추천하는 초밥집 정보가 있어서 그곳을 찾아갔다. 운하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식당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규모와 시설은 우리나라 중형 규모의 회전 초밥집 정도였다. 여러 종류의 초밥을 주문하니 우리가 앉은 바로 앞에서 요리사가 직접 초밥을 만들어 주었다. 주문한 초밥이 하나하나씩 순서대로 나왔다.
첫 번째 초밥 하나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 혀를 타고 입안 전체로 퍼지는 부드러움과 쌀의 고소함 그리고 회 고유의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릿한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밥알의 온도가 전체적으로 초밥의 풍미를 더 올려 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밥을 먹은 것 같았다.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 밤을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는 초밥을 먹으면서 보내는 호사와 행복으로 마무리한 하루였다.
<일곱째 날 이동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