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여름을 보내는 송별식을 하고 싶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출발해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해발 1051m의 정상에서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발아래로 소양호의 풍경이 펼쳐진다는 정보가 홍천의 가리산을 선택하게 했다.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속하는 가리산 산행은 자연 휴양림 주차장에서 출발해 합수곡, 가삽고개, 산 정상(2봉, 3봉), 무쇠말재를 거쳐 다시 합수곡과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이었다.
가리산은 이미 오래전 홍천군에서 휴양림을 조성해 넓은 주차장과 산림욕장, 통나무집, 캠핑장, 방갈로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2014년에는 이곳에 가리산레포츠파크를 만들어 가족체험 및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훈 작가는 그의 소설 ‘자전거 여행’에서 ‘숲의 어감 속에는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 골짜기를 흔드는 눈보라 소리, 떡갈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이곳의 숲은 어감만이 아니라 산행을 하는 내내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깊은 산중이었다. 그 소리는 숲이 내는 소리이기도 했고, 떠나는 여름이 내는 소리기도 했다.
산행을 시작하자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숲 속을 채웠다. 조금 더 산에 오르니 물소리 대신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방팔방 숲 속에 울려 퍼졌다. 마치 가는 여름을 잡고 싶은 절규로 들렸다. 더 높은 곳에 오르니 매미의 울음소리보다 풀벌레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8부 능선에서는 새들의 합창 소리가 메인으로 숲 속에 퍼졌다. 이렇게 가리산 정상으로 가는 숲 속 길은 자연의 소리와 함께하는 여정이었다.
자연 소리만이 아니었다. 깊은 산 숲 속이 대게 그렇듯이 가리산 역시 길 주변에 야생화가 가득했다. 꽃들은 자칫하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쑥스러워하는 모양새였다. 키 작은 꽃들을 보다 고개를 들면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사방천지 초록이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뭇가지들도 아직은 무성한 초록잎을 걸치고 있었다.
안전 공사를 하고 있는 암릉을 거친 후 도착한 2봉, 3봉의 정상은 산을 올라오는 동안과는 다르게 고요했다. 지난여름에 있었던 아쉬웠던 추억을 가만가만 흔드는 바람만이 멀리 소양강에서 불어왔다. 그 고요는 자연의 청정함이요 소리와 나 사이에서 평화를 느끼게 하는 연결 고리였다. 도시에 살면 거의 누려볼 수 없는 삶의 향락이었다.
고요의 초대를 깨고, 돌아서가는 여름의 뒤편에 대고 한마디 던졌다.
"또 보자..."